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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속에 새긴 마음

김왕식













흙 속에 새긴 마음






이른 새벽, 바람이 스치는 밭고랑 끝에서 달근이는 조용히 숨을 골랐다. 찬 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들었지만, 그 순간에도 그는 감사했다. 밤새 촉촉해진 흙, 붉게 떠오르는 해, 작은 새소리까지도. 그의 감사는 그렇게 흙냄새를 따라 퍼져 나갔다.

모든 날이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흉년이 닥치던 해, 밭은 숨조차 쉬지 못할 만큼 메말라 있었다. 병충해에 시달리던 나무들은 잎 하나 제대로 달지 못했다. 달근이는 밭고랑 끝에 앉아 흙먼지가 묻은 손을 바라보았다. 무겁게 내려앉은 마음에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이 상황에서도 감사를 할 수 있을까?”

하늘은 잔인하게도 맑았다. 끝내 고개를 떨구고 흙바닥을 내려다보던 그는 문득 속삭임 같은 소리를 들었다. “이 고난이 너를 위해 준비된 길이라면 어떠니?” 그 순간, 딱딱하게 굳어 있던 흙 속에 작은 틈이 생기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로 달근이는 매일 밭으로 향했다. 굳은 손으로 흙을 만지며 작게 기도했다. “흙이 나를 가르치게 해 주세요.” 손끝에서 느껴지는 거친 흙, 그 속에 담긴 생명은 그의 마음을 붙잡아 주었다. 밭은 여전히 메말랐지만, 달근이의 걸음은 무겁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찾아와 속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달근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의 말에 귀 기울였다. 그의 손끝이 흙을 만질 때처럼, 그들의 마음에도 조심스럽게 닿았다. 아픔 속에서 피어난 그의 감사는 그렇게 다른 이들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했다.

“감사는 고난에서 배울 때 진짜란다.” 달근이는 이따금 젊은 농부들에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지만, 흙에 뿌리내린 나무처럼 깊었다.

해가 지고 밭에는 어둠이 깔렸다. 달근이는 천천히 일어섰다. 먼지를 털어낸 손끝에서 흙의 냄새가 희미하게 났다. 바람이 불어왔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잠시 멈춰 섰다. 그 어딘가에 눈부시게 빛나는 별 하나가 떠 있었지만, 그가 무엇을 보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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