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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충만을 말하다 ㅡ아이들의 순수한 신앙 고백

김왕식










성령충만을 말하다
ㅡ아이들의 순수한 신앙 고백






대구 하나교회 주일 3부 저녁 예배. 평소처럼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예배가 진행되고 있었다. 성도들은 말씀을 듣기 위해 집중하고 있었고, 부목사님께서는 단에 서서 설교를 이어가셨다. 그날의 주제는 '성령충만'이었다. 부목사님은 설교 중간에 성도들에게 질문을 던지셨다.

“성령충만이 무엇입니까?”

말씀이 끝난 것이 아니었기에, 대부분의 어른들은 가만히 목사님의 다음 말을 기다리며 침묵을 지켰다. 그 순간, 뜻밖의 장소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성도의 시선이 그 소리로 향했다.

부모님의 품에 안겨 있던 여섯 살 난 여자아이. 아이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말했다.

“그리스도예요.”

그 순간, 예배당 전체가 숨을 멈춘 듯 고요해졌다. 모든 어른들이 작은 아이의 입에서 나온 단어를 곱씹으며 깊은 감동에 젖어들었다. 그리스도, 성령충만의 본질을 이렇게 단순하고도 정확히 표현할 수 있을까? 아무리 깊이 있는 설교나 신학적 논문이라도 아이의 이 한마디를 능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성도들은 아이의 말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또다시 한 소리가 울렸다. 이번엔 남자아이였다. 그 아이는 어른들이 머뭇거리는 사이, 용기 있게 손을 들었다. 목사님이 아이를 바라보며 웃으며 물으셨다.

“그래, 네 생각은 뭐니?”

아이의 목소리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확신에 차 있었다. 아이는 큰소리로 외쳤다.

“내가 없어지는 거예요!”

예배당은 또 한 번 충격에 빠졌다. 그 어린아이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어른들도 선뜻 말하기 힘든 깊은 신앙의 진리를, 한 어린아이가 그렇게 간단히 설명한 것이다.

아이의 말은 단순히 들려주는 대답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 아이가 이미 믿음의 중심에서 경험하고 깨달은 진실이었다. 부목사님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한참 후에야 그가 미소를 띠며 성도들에게 말씀하셨다.

“성령충만이란 바로 이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삶 속에서 역사하실 때, 우리의 자아가 점점 줄어들고, 그리스도가 점점 더 크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고, 내 자아를 내려놓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령충만 아닙니까?”

그날의 예배는 평소와 달랐다. 모든 어른들은 두 아이의 순수한 대답에 깊이 감동하며 자신들의 믿음을 돌아보는 계기를 맞았다. 성령충만이란 어쩌면 우리가 복잡하게 생각하고 어려운 말로 풀어내려 했던 신앙의 주제가 아니다. 두 아이의 대답은 단순하고 명확했다. ‘그리스도’와 ‘내가 없어지는 것’, 바로 이것이었다.

예배 후, 성도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묵묵히 미소를 나누었다. 그날 예배당에 있던 모든 사람은 성령충만이 무엇인지 더 깊이 이해하고, 그 의미를 삶 속에 새기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순수한 신앙을 가진 아이들의 모습에서 어른들은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생생한 증거를 본 것이다.

그날의 예배는 그저 한 번의 설교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충만함이 어린아이들을 통해 교회 전체에 흘러들어오는 시간이었고, 모두의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았다.


2025, 1, 23, 목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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