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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때렸으니, 선생 그만두세요!

김왕식









선생님, 이제 때렸으니 선생 그만 두세요!



김왕식





우리 집은 누대累代로 농사를 짓던 집안이었다. 땅을 갈고 씨를 뿌리며 흘린 땀이 밥이 되고 삶이 되던 곳. 어린 내가 본 세상은 가난과 고된 노동뿐이었다. 그런 우리 가족의 중심이던 아버지는 이름 모를 병에 시름시름 앓다가 마흔도 채 못 된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다.

당시 엄마는 겨우 서른셋. 열네 살에 시집 와 열아홉부터 일곱 남매를 낳아 기르며 고단했던 엄마의 삶은 남편 없는 현실 속에서 더 깊은 어둠으로 내몰렸다.

그런 엄마가 바라던 건 단 하나였다. 자식들 중 누구 하나만은 괭이와 삽을 들지 않길. 흙과 땀이 아닌, 책과 펜을 잡는 삶을 살길. 엄마는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기를 간절히 바랐다. 시골에서 펜대를 잡는 직업이라면 면서기가 고작이었겠지만, 서울에서 잉크를 만진 숙부는 내게 더 높은 꿈을 심어 주었다.

“서울법대 가서 판·검사가 되거라.”
어린 나를 보며 숙부는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의 무게를 이해하기엔 아직 철이 없었다.

상경하여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나는 비로소 진지한 고민에 빠졌다. 책 읽기를 좋아하던 나는 국문과에 진학해 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결국 그 꿈을 이루어 서울의 110년 전통을 자랑하는 민족사학 ○○고등학교에 부임하게 되었다.

첫 출근을 앞두고 지도 교수님이 내게 두 가지를 당부했다.


“촌지 받지 마라.

학생들을 체벌하지 마라.”


촌지 문제는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다. 국어, 영어, 수학처럼 주요 과목을 맡으면 담임을 하는 일이 필수였지만, 나는 유독 담임을 맡는 일이 적었다. 20년 동안 네 번밖에 하지 않았으니, 교장이나 부장교사가 나를 담임으로 세우기엔 부족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그 덕에 나는 완벽하게 자유롭지는 않았지만, 촌지와 거리를 둘 수 있었고, 대신 전통 있는 문예반을 십수 년간 맡았다. 당시에는 문예반 담당이 학교 내에서 한직으로 여겨졌지만, 내게 그 시간은 너무나 소중했다. 백석과 소월, 춘원의 후예後裔라는 자부심으로 학생들과 시를 읽고 쓰는 나날은 내 삶의 빛이었다.

또 하나, 나는 교수님의 당부대로 체벌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내 손으로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없도록. 몇 년 동안 그 다짐은 잘 지켜졌다. 어느 날,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한 학생이 나를 시험하듯 도전해 온 것이다.
“선생님, 정말 체벌을 안 하나 보겠습니다.”


그 말엔 당돌함과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그의 태도는 용서하기 어려울 정도로 괘씸했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엉덩이를 서너 대 때리고 말았다.

그 학생은 나를 보며 한마디를 던지고 교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제 체벌했으니, 선생 그만두세요!”

순간,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다. 정신과 육체가 모두 무너져 내렸다. 몇몇 학생들이 다가와 위로했지만, 나는 이미 모든 힘을 잃은 듯 주저앉았다.

그때 문득 엄마가 떠올랐다.
내가 고등학교 국어 선생이 되었을 때, 엄마는 나를 꼭 끌어안으며 눈물을 흘리셨다.
“우리 아들이 양복 입고 펜대 잡는 날이 오다니.”
그때 엄마의 눈물은 기쁨이었지만, 지금 내겐 족쇄처럼 느껴졌다.

“엄마, 왜 나를 선생으로 만들어 이렇게까지 무너지게 하셨어요?”
그날 밤, 나는 한동안 하늘을 바라봤다.

엄마는 내가 결혼하던 그해 늦가을, 아버지를 따라 세상을 떠났다. 겨우 쉰아홉이었다. 삶의 무게를 홀로 견뎌야 했던 엄마의 치열한 시간이 떠오른다. 엄마는 그 힘든 삶 속에서도 나만은 다르게 살기를 바라셨다. 그 소원은 내게 무거운 짐이 되어 돌아왔다.

어느덧 나도 노년의 문턱에 섰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를 절망케 했던 그날의 사건도 어렴풋이 기억 저편으로 밀려났지만, 가슴 한 켠엔 여전히 그날의 상처가 남아 있다.


창 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어린 시절, 추운 겨울날 맨손으로 흙을 고르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모습은 절대 잊을 수 없다.

엄마가 보고 싶다.
엄마의 따스한 손길이 그립다.
어릴 적 내 손을 잡고,

“너는 괭이가 아니라 펜대를 잡아야 한다”고 말하던 엄마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엄마의 소원이 나를 키웠고, 나는 그 소원에 응답했지만, 그 길에서 넘어졌을 때 엄마의 품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엄마, 오늘 밤 당신이 그립습니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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