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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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싶던 차에 뺨을 맞다
시인 김사인
문단 끝자리에 이름 올린 지 20년이 되도록 시집이라고는 하나밖에 없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한심 천만에 별무대책을 겸한 채 말간 콧물만 떨구고 앉아 있는, 요즘 말로 이걸 어따 써! 에나 해당할 중생에게 이 무슨 날벼락인가, 상이라니, 밥상도 술상도 아니고 떼먹고 발길 끊은 단골 술집 외상도 아니고 문학상, 그것도 50년 묵은 아니 김치도 고추장도 5년만 묵으면 삼 동네가 알아주는 것인데. 50 년 된 현대문학상이라니, 그것도 나한테. 하도 시를 안 써 '전 시인으로 호가 난 하필 나한테!
이게 무슨 턱없는 소린가, 요샌 욕을 상으로도 하는가 싶어, 기별해온 양반한테 됩대, 아이구, 안 되는데요, 그러시면 안 되는데요. 아이구, 이거 참, 잘못하시는 일 같은데요. 아이구 이거 참, 한 게 없는데요. 저는. 아이구 참, 그 양반들께서 다시 한번 생각하셔야ᆢ 어쩌구, 혼비백산해서 말인지 막걸린지. 코로 지껄이는지 입으로 지 껄이는지 넋이 반은 나가설랑, 아이고 감사합니다. 우리 우윤공파 집안의 영광이올씨다 한마디면 될 것을 같지도 않은 헛소리를 구시렁구시렁, 어른들 하시는 일을 제가 뭣이관대 되니 안 되니를 해쌀 것이며, 좋으면 곧이곧대로 좋습니다 할 일이지 제가 무슨 춘향이라고 외로 꼬며 쪼를 빼나.
전화 끊고 나니 온몸의 힘이 좌악 빠지고 얼굴로는 열이 몰리고
등에는 식은땀이 나는데. 이거 큰일이 나진 났다 싶고, 쫄쫄 배곯던 끝에 쌀밥에 눈 뒤집혀 실컷 한 번 퍼넣다가 탈기되어 죽을 뻔하는 홍부전 밥타령 대목도 생각나고, 그런 와중에도 다소간 좋진 좋아서 마누라한테 짐짓 퉁명스레 소식 전하고, 그러고는 혼자 배시시 웃으며 가만히 요런 생각도 잠시 해본다, '아이고, 영감님들도 참, 상도 자주 받아버릇한 이들한테나 주시면 되지, 뭐 할라고 나 같은 한뎃 건달을 고르셔설랑 여럿 귀찮게 하시나 그래 ㅡ
상 받는 소감 써내라고 득달같이 독촉 오고. 아무 생각도 나지는 않고, 오만 감회가 지나가고, 허. 이거 참, 큰일인데. 기분은 점점 쑥스럽고 얄궂어지고, 그런 끝에 끄적거려 보기를, 이 상을 어떻게 받나 앞으로 받나 뒤로 받나 덥석 받나 빼며 받나 서서 받나 앉아서 받나 엎어져 받나 자빠져 받나 엉금엉금 기어가서 받나 떼구루루 굴러가서 받나 눈 꾹 감고 받나 눈 딱 부릅뜨고 받나 내려 깔고 받나 역으로 흘기며 받나 얼씨구나 받나 섧디 섧게 받나 쩔쩔매며 받나 시큰둥하게 받나 더질더질, 해본다
쑥스러운 나머지 해보는 어깃장 섞인 글장난일 뿐, 현대문학사와 유종호, 정현종 두 선생님께 올릴 맞춤한 감사의 말을 찾지 못해 머리만 굵적이고 있다. 볼품없는 시들에 오히려 상을 베푸신 그 뜻을 깊고 무겁게 기억하려 한다. 울고 싶던 차에 이렇게 뺨까지 얻어맞았으니. 한번 잘 울어보려 애쓰는 것이 사람의 도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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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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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인 시인의 현대문학상 수상 소감문은 김사인 시인 닮았다.
수더분하다. 꾸밈이 없다. 아니 그는 아예 꾸밀 줄 모른다.
그는 천상 저 충청도 시골 마을 이장이다.
새마을 잠바에 묵은 넥타이 어설프게 동여매고, 부채 하나 삐딱히 들고 팔자로 걷는 바로 그 품새다.
그의 당선 소감문은 단순히 소감의 영역을 넘어, 한 편의 판소리 같은 예술적 향취를 담고 있다. 그의 소감문은 본인의 삶과 문학을 녹여낸 자전적 서사이자, 겸손과 기쁨, 쑥스러움과 감사가 어우러진 깊은 인간미를 드러낸다.
김사인 시인은 스스로를 "볼품없는 시들"을 쓰는 사람이라 자조하면서도, 그 안에 담긴 가치와 철학은 결코 가벼움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의 문장은 진솔하면서도 익살스러워 판소리의 해학과 서정을 닮아 있으며, 이러한 표현 방식은 독자에게 깊은 감동과 웃음을 동시에 선사한다.
특히, '울고 싶던 차에 뺨을 맞다'라는 표현은 인생의 역설과 아이러니를 포착하는 데 탁월한 상징성을 보여준다. 이는 김사인의 삶에 대한 태도이자, 문학을 대하는 그의 철학적 관점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다.
그의 소감문은 겸허함과 수줍음 속에서도 자신이 살아온 문학의 길을 되돌아보는 한 편의 회고록처럼 읽힌다. 상을 받는 데 있어 느끼는 쑥스러움과 부담감, 그리고 이를 둘러싼 사소한 감정들마저 솔직하게 드러낸 대목들은 문학과 삶 사이의 간극을 채우는 김사인의 진솔한 모습이다. 상을 받으며 느낀 복합적인 감정들을 "밥상도 술상도 아닌 문학상"으로 표현하거나, "쌀밥에 눈이 뒤집혀 탈기되어 죽을 뻔한" 홍부전을 떠올리는 대목에서는 그의 글에서 특유의 풍자적 미의식과 삶의 유머가 발현된다.
소감문의 전반에 흐르는 미의식은 '한뎃 건달'과 같은 자신의 위치를 자조하면서도, 이를 통해 문학의 진정성을 역설하는 데 있다. 그는 상을 받은 기쁨을 과도하게 표출하지도, 그렇다고 무겁게 짊어지지도 않는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삶과 문학의 철학을 그대로 투영한다. "어른들 하시는 일을 제가 뭣이관대 되니 안 되니를 해쌀 것이며"와 같은 표현은 그의 세대적 가치관과 공동체 의식을 보여주는 동시에, 문학이란 개인적 성취를 넘어선 공동의 노력과 헌신의 결과임을 암시한다.
소감문이 하나의 판소리가 되는 것은, 단순히 문체나 형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판소리가 지닌 희로애락의 총체성, 그리고 소리꾼의 진심 어린 창법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듯, 김사인 시인의 글 역시 그의 삶과 문학의 태도가 그대로 묻어난다. 그의 소감문에서 느껴지는 문학적 미의식은 '작은 것의 위대함'과 '솔직함의 감동'으로 요약될 수 있다.
요컨대, 김사인 시인의 소감문은 그의 문학과 인생철학을 녹여낸 작품이자, 인간의 도리와 예술적 소명을 깊이 성찰하는 글이다. 울고 싶던 차에 뺨을 맞은 그는 이제 '한 번 잘 울어보려 애쓰는' 사람으로서, 문학이라는 울림을 세상에 전하고 있다.
이 글은 수상 소감문 이상의 울림과 가치를 지니며, 그의 문학과 삶에 대한 미적 태도와 철학을 선명히 드러낸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