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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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露宿
시인 김사인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
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 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 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었으니
어찌하랴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네게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
- 2005 제50회 현대문학상 수상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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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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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인 시인의 '노숙露宿'은 삶의 무게를 묵직하게 담아낸 시이다. 그의 시는 허세나 과장이 없는 담백한 언어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안에는 깊고 날카로운 성찰이 녹아 있다.
삶과 인간의 고단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이 작품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꾼인 김사인 시인의 삶의 태도와 철학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의 글은 소박하지만, 소박함 속에 내재한 강렬한 진실이 독자의 마음을 꿰뚫는다.
이 시는 한 사람의 ‘몸’과의 대화를 통해 삶의 고단함과 존재의 소진을 묘사한다. 시적 화자는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을 벗기며 ‘몸’을 내려다본다. 이 장면은 단순히 육체적 상태를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피로와 고통에 짓눌린 생의 한 단면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시인의 눈에 비친 ‘몸’은 생기를 잃고 지친 모습이다. 이는 단순히 육체를 넘어 삶 자체의 피로와 고단함, 존재의 소진을 상징한다.
“미안하다”라는 고백은 시의 중심을 이루는 정서다. 시적 화자는 ‘몸’에게 빚진 마음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는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라고 고백하며, 생존을 위해 몸을 혹사시키고 가족을 이루었지만,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라는 현실을 담담히 인정한다. 이 대목에서 시인은 개인의 피로를 넘어 사회적 구조와 현실의 무게를 암시하며, 생존과 관계, 노동의 본질을 묵묵히 응시한다.
이 시는 단순히 고통과 피로만을 노래하지 않는다.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는 대목은 삶 속에서도 빛나는 순간이 있었음을 잊지 않는다. 김사인 시인의 시적 미학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삶의 고통 속에서도 따뜻한 희망과 빛을 찾아내고, 이를 조용히 내보인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삶의 가치철학, 즉 꾸밈없는 소박함과 진솔한 삶의 태도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시의 마지막에서 화자는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라며 체념과 결단의 기로에 선다. 하지만 곧 "어떤가 몸이여"라는 질문으로 시를 끝맺는다. 이 질문은 단순히 육체에 대한 물음이 아니다. 이는 삶에 대한 궁극적인 물음이며, 자신과의 대화이자 화해를 시도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태도는 김사인 시인이 삶을 바라보는 방식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그는 절망 속에서도 묻고,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으려는 인간적인 고뇌를 보여준다.
요컨대, '노숙露宿'은 김사인 시인의 삶의 가치와 철학, 그리고 문학적 미학이 모두 응축된 작품이다. 시인의 언어는 거칠고 수더분하지만, 그 안에는 삶의 진정성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꾸밈없이 삶의 본질을 응시하고, 그 안에서 희망과 화해를 찾으려는 태도는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김사인 시인은 ‘소박함의 미학’을 통해 인간과 삶의 고뇌를 묵묵히 노래하며, 우리가 잊고 살았던 질문들을 다시 꺼내어 주는 진정한 시인이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