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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녘의 연기풀이로 ㅡ 장상철 화백

김왕식







들녘의 연기풀이로


장상철 화백




시절인연이 다가와서
향기 가득한 꽃을
피워내고,
무겁고
답답했던 적삼을
갈아입기를
기다렸던
이 겨울이
결코 길지만은
않았다.

시간은
흘러가는
속도감을 분명하게
인지시켜 주었고,
기대와 낙심의 교차점을
서슴없이 풀어내서
들녘의 연기풀이로
소멸시켜 버린다.

무겁게 닫힌
투명한 창이
열리기를
간절하게
기다리는 소망은
봄을 맞으려고
잠이든
숲 속의 물상들의 몫이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장상철 화백의 글 '들녘의 연기풀이'는 투병 중에도 삶과 예술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아내고 있다. 이는 단순한 산문적 기록을 넘어 시적인 언어와 상징으로 채워진 작품으로, 그 속에는 작가의 삶의 철학과 미의식이 깃들어 있다.

글 속에서 드러나는 장 화백의 철학은 기다림과 순환에 대한 깊은 통찰로 요약된다. "겨울이 결코 길지만은 않았다"는 문장은 고통스러운 시간조차도 지나간다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는 작가가 투병을 통해 얻은 삶의 깨달음과, 고난 속에서도 끝내 피어날 희망의 꽃을 기다리는 낙관적인 시각을 나타낸다. 특히 "시간은 흘러가는 속도감을 분명하게 인지시켜 주었고"라는 표현은, 시간의 유한성을 깨달으며 외려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보여준다.
이는 작가의 철학이 단순히 고통의 회피가 아닌, 고난을 삶의 일부분으로 인정하고 이를 통해 스스로를 성숙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작품은 자연의 이미지와 추상적 감정을 절묘하게 결합한다. "들녘의 연기풀이로 소멸시켜 버린다"는 표현은, 인간의 기대와 낙심이 결국 자연의 순환 속에서 무화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그려낸다.
이는 단순한 비관이 아니라, 소멸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자연의 순환과 연결된다. 또한, "봄을 맞으려고 잠이든 숲 속의 물상"이라는 구절은 자연의 침묵 속에 내재된 생명력을 예술적으로 묘사하며, 봄이라는 새로운 시작을 향한 기대를 은유한다.
이러한 미적 감각은 화백의 예술관과도 연결되며,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강조하는 그의 작품 세계를 반영한다.

'들녘의 연기풀이로'는 단순히 개인적 고백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경험과 연결된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다. 작가는 투병이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삶의 한계를 직시하며 자연과 시간의 순환 속에서 의미를 발견한다.
이 글은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며, 끝내 삶을 예술로 승화시키려는 작가의 의지를 보여준다. 더불어 작품 속 자연적 이미지와 감정의 교차는 그의 예술적 미의식을 드러내며, 독자로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장상철 화백의 글은 단순히 투병기를 넘어선 삶의 철학적 시로 자리하며, 그의 예술적 위상을 다시금 확인하게 한다. 이는 독자에게 희망과 치유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장 화백이 남긴 깊은 울림을 준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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