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리면 낙서이고, 화가가 그리면 추상화?

평론가의 양심


길거리에서 폐자전거를 주었다.

자전거의 안장과 핸들을 들고 와서

벽에 두 개를 겹쳐 걸어놓았다.


이것이 피카소의 수억 원을 호가하는

그 유명한

'황소 머리'라는 작품이다.


만약에 어떤 어린아이가 그렇게 벽에 걸었다면

아마도 엄마는


'웬 쓰레기를 지저분하게 벽에 걸어놓았냐'라고


호통을 치며 던져버렸을지도 모른다.



미술의 본질에 대해 묻는다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모여도 완벽한 답변을 내놓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는 미술이라는 것이 주관적인 해석과 표현에 큰 의존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추상화는 그 주관성이 더욱 강조되는 분야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추상화를 그릴 때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는 분명한 대답이 없다.


물론, 미술계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기준을 세우는 노력을 한다. 작품의 획기성, 즉, 작품이 어떤 새로운 아이디어나 방식을 제시하고 있는지, 작품의 영향력, 즉, 작품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또는

그 작품으로 인해 미술계가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살펴본다. 이는 모든 작품에 대한 결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기준은 아니지만, 그 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특히

미술평론가의 역할은 중요하다.

그들은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평가하며, 그 평가는 때때로 미술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이때 중요한 것은 그들의 '양심과 윤리'이다.

그들이 또 다른 목적이 있어

그림의 가치를 왜곡하거나 편향된 평가를 한다면, 그것은 미술계에 치명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미술계는 평론가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그들의 윤리적인 태도를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미술평론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작가 또한 자신의 작품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진실되게 표현하는 것이 요구된다. 이는 미술이라는 분야가 결국에는 진실과 표현의 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추상화를 그릴 때 어떤 기준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다. 누구나 추상화를 그릴 수 있다. 그 그림이 어떤 가치를 가질지는 그림을 통해 표현된 아이디어와 감정, 그리고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해석에 달려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미술평론가의 평가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들의 평가도 결국은 그림에 담긴 내용과 그림을 보는 사람들의 해석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다.


결국 미술, 특히 추상화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그 가치는 그림을 통해 표현된 내용과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추상화는 매우 민주적인 미술 분야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본인의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자신의 주관을 담아 창작한 추상화 미술이야말로 진정한 가치를 가진 작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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