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람학교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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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람 학교에서
학생들과
모더니즘에 관해 정리한 내용을
조금
만지작거려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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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 해체와 창조의 경계
모더니즘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에 걸쳐 문학, 예술, 건축,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난 사조로, 전통적인 형식과 가치관에 도전하며 새로움을 추구했다.
*앙투안 콩파뇽(Antoine Compagnon)은 모더니즘을 "과거의 단절을 통한 새것과 독창적인 것의 숭배"로 정의했는데, 이는 모더니즘의 핵심을 잘 보여준다. 이 사조는 전통적인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개인적이고 혁신적인 표현 방식을 강조하며 등장했다.
모더니즘의 시작은 산업혁명 이후의 급격한 사회적 변화와 깊은 연관이 있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며 인간의 삶과 환경은 빠르게 변했다. 기존의 농업 사회에서는 고정된 전통과 공동체 중심의 가치관이 지배적이었지만, 산업화된 사회에서는 효율성과 개인의 자율성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모더니즘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기존의 전통과 질서를 해체하고, 새로운 예술적 접근을 시도하며 등장했다.
문학에서 모더니즘은 주로 의식의 흐름과 내면세계를 탐구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전통적인 소설의 서사 구조를 깨고 인간의 복잡한 내면세계를 실험적으로 표현했다.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 역시 여성의 내면적 정서와 시간을 독특한 시점에서 묘사하며 모더니즘 문학의 중요한 사례로 꼽힌다. 이들은 모두 독창성과 주체성을 강조하며 기존의 문학적 관습을 탈피했다.
우리나라 문학에서도 1930년대를 기점으로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등장했다. 김기림, 정지용, 이상과 같은 시인들은 전통적인 서정시에서 벗어나 도시적 감수성과 실험적 기법을 시도했다. 특히 정지용의 '유리창'은 투명성과 차가움이라는 이미지로 근대 도시인의 고독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며, 모더니즘 시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상의 작품 역시 기존의 서사적 규범을 깨고, 인간 내면의 복합성과 도시의 이질감을 독창적으로 담아내며 모더니즘의 특징을 보여주었다.
모더니즘은 예술에서도 혁신을 추구했다. 미술에서는 피카소의 입체파가 대표적인 예로, 전통적인 사실주의에서 벗어나 대상을 여러 시점에서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마르셀 뒤샹의 '샘(Fountain)'은 평범한 사물을 예술 작품으로 제시하며 전통적인 미학의 경계를 허물었다.
한국에서는 나혜석, 구본웅과 같은 작가들이 모더니즘 미술에 영향을 받아 전통적 회화에서 벗어나 근대적 감각과 도시적 주제를 작품에 반영했다. 나혜석은 여성의 삶과 자유를, 구본웅은 도시인의 불안을 독창적인 시각으로 표현했다.
음악에서는 쇤베르크가 기존의 조성 체계를 깨고 무조 음악을 제안하며 기존의 화성 구조를 재구성했다. 건축에서는 바우하우스 운동이 단순함과 기능성을 추구하며 전통적인 장식성을 배제했다. 이러한 특징들은 모더니즘이 단순히 '새로움'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규범과 가치 체계에 대해 근본적으로 질문하고 이를 대체할 새로운 질서를 제안하고자 했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도 건축 분야에서 경복궁 옆으로 등장한 서양식 건물들이 모더니즘적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모더니즘이 무조건 전통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존의 전통을 해체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려는 노력이었다.
예를 들어, T.S. 엘리엇의 '황무지'는 모더니즘 시의 대표작으로, 전통적인 시 형식을 탈피하면서도 고전 문학과 신화적 요소를 차용해 현대 사회의 공허함을 드러냈다. 이는 과거를 단절하기보다는 과거의 요소를 재구성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려는 모더니즘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한국에서도 정지용의 작품이 전통적 자연관을 해체하면서 새로운 감각으로 재구성한 점이 이에 해당한다.
모더니즘은 궁극적으로 기존의 전통적 가치와 현대적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며, 새로운 시대정신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었다. 이는 단순히 새로운 것을 쫓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인간의 정체성과 가치를 새롭게 정의하려는 시도였다. 이러한 모더니즘의 정신은 현대 예술과 문학에 깊은 영향을 미치며, 여전히 그 유산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 문학과 예술 역시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세계적 흐름과 교류하며 독자적인 변주를 만들어낸 점에서 그 가치를 논할 수 있다.
*앙투안 콩파뇽(Antoine Compagnon)
1950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나 에꼴 폴리테크니크와 에꼴 퐁 제 쇼세를 졸업하였다.
작가이자 프랑스 한림원 회원이다. 지은 책으로 《현대성의 다섯 가지 역설》 《이론의 악마》 《문학 왜 하는가?》 《수사학 수업》 《몽테뉴와 함께하는 여름》 《보들레르와 함께하는 여름》 《파스칼과 함께하는 여름》 등이 있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