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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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너머, 새 삶을 향해
노태숙 작가
식물협회에 몸담은 지 팔 년여, 처음으로 해외에 나선다.
어린 시절 소풍을 앞둔 전날처럼, 가슴은 콩닥이며 설렘으로 가득하다.
이십오일 동안 독감으로 시달리며도 병원 한 번 가지 않았고, 약 한 알 없이 생으로 앓았다.
아픈 건 차치하고, 입맛이 써서 음식은커녕 물조차 넘기지 못했다. 쪼그라든 뱃살을 움켜쥐고 헉헉거리던 날들.
두 번이나 기절하며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의식이 가물가물 흐려지자, '아, 이제 죽는구나. 아, 이제 가는구나. 이게 죽음의 골짜기인가.' 문득 희미한 어머니의 모습이 눈앞을 스쳤다.
헝클어진 머리, 창백하게 축 늘어진 팔뚝, 그 사이로 펄럭이는 검은 휘장.
그리고 여러 날이 지나고—
툴툴 털고 일어난 것은 고작 일주일 전의 일이다.
진한 삶을 맛보고, 죽음의 문턱도 넘나들었으니, 어지간히 명이 길긴 긴가 보다.
일곱 살 적, 홍역에 걸려 내 머리맡에 놓였던 수의가 떠오른다.
식물협회와의 첫 해외 나들이. 내게 평생 잊지 못할 발걸음이 될 것이다.
새 세상을 보는 듯, 새 삶을 사는 듯, 신기루 같은 눈 내리는 겨울 아침의 출발이다.
지금쯤 비행기는 대한해협과 부산쯤을 지나고 있겠지?
환희로운 성가를 한 번 부르고 싶은 마음이다.
두둥실 두리둥실 배 떠나간다,
물 맑은 봄바다에 배 떠나간다.
이 여정 속에 어떤 길이 펼쳐질까?
2박 3일의 여행, 분명한 것은—어지간히 오래 살려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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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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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숙 작가의 이 글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든 후, 다시 시작되는 삶을 향한 경이와 감격이 담긴 기록이다. 오랜 병마를 견디며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기억, 그리고 다시 일어나 새로운 출발을 앞둔 순간, 이 글은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작가의 내면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작가는 25일간의 독감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고, 두 번이나 기절하며 생사의 기로를 경험했다.
"이게 죽음이라는 골짜기구나"라는 구절에서 그 순간의 체험이 얼마나 생생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죽음의 문턱에서 작가가 얻은 것은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라 삶의 명료한 실감이다. "진한 삶도 맛보고 죽음의 골짜기도 다녀왔으니 어지간히 명이 길긴 긴가 보다"라는 문장에서, 작가는 생과 사를 마주한 후 삶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발견한다.
작가의 미의식은 현실의 고통과 환희를 감각적으로 포착하는 데 있다. 독감으로 인해 물조차 넘기지 못했던 날들, 기절하며 사라져 가는 의식 속에서 보았던 어머니의 모습, 그리고 창백한 팔뚝 사이로 펄럭이던 검은 휘장까지, 이 모든 장면들은 감각적으로 강렬하다. 또한, 작가는 개인적 체험을 통해 삶의 의미를 탐색하면서도, 유년의 기억을 자연스럽게 소환한다. "일곱 살 적 홍역으로 내 머리맡에 놓였던 수의가 기억이 난다"라는 문장은, 죽음의 문턱에서 어린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작가는 병을 극복한 지 일주일 만에 해외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른다. 그리고 이 순간을 그저 여행이 아니라 ‘새 세상을 보는 듯, 새 삶을 사는 듯’한 경험으로 받아들인다. 이는 그의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
질병에서 회복된 것만이 아니라, 새롭게 살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두둥실 두리둥실 배 떠나간다"라는 성가의 가사처럼, 그는 기대와 설렘 속에서 새로운 길을 떠난다.
이 글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철학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극한의 고통을 겪고, 죽음을 마주하며, 다시 일어나 떠나는 여행—이 모든 과정이 하나의 순환으로 엮이며, 결국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된다. 노태숙 작가의 미의식은 감각적인 표현을 통해 삶의 강렬한 순간들을 포착하며, 유년의 기억과 현재의 경험을 연결하는 방식에서 빛난다.
이 글은 단순한 여행 에세이가 아니라, 한 인간이 삶을 바라보는 태도, 그리고 죽음 이후에도 계속되는 생의 흐름에 대한 성찰을 담은 문학적 기록이라 할 수 있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