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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꽃

김왕식







냉이꽃




시인 이찬녕




동그랗게 산다는 건
조심조심 잎을 펼친다는 거다.
딱따구리 나무 쪼는 소리
온 산에 가득하고
냇물도 얼어붙은
칼바람이 스쳐도
땅바닥에 바짝 붙어 있는 어린 잎새는
햇살 한 줌에
살포시 눈을 뜬다.
문풍지 찢는 겨울바람을 견딘다.

이른 봄날,
마른 풀잎과 풀잎 사이로
꽃대 올려
친정집 마당에
핀 꽃.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찬녕 시인의 '냉이꽃'은 작은 들꽃 하나에서 삶의 태도를 발견하는 시다. 시인은 냉이꽃의 생태적 특징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 즉 "동그랗게 산다는 것"을 제시한다. 겉으로는 자연 관찰 시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시인이 견지하는 삶의 가치철학과 미의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의 첫 연에서 "동그랗게 산다는 건 / 조심조심 잎을 펼친다는 거다"라는 구절은 삶의 태도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동그랗게'란 말은 둥글둥글하게 살아가는 태도를 뜻할 수도 있고, 냉이꽃 잎이 땅에 바짝 붙어 동그랗게 펼쳐지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는 겸손하고 신중한 삶의 자세를 내포한다.

두 번째 연에서는 자연의 혹독한 환경이 등장한다. "딱따구리 나무 쪼는 소리", "냇물도 얼어붙은 칼바람" 같은 표현은 냉이꽃이 자라는 환경이 결코 따뜻하거나 온화하지 않음을 강조한다. 그런 거친 현실 속에서도 "땅바닥에 바짝 붙어 있는 어린 잎새"는 결국 "햇살 한 줌에 / 살포시 눈을 뜬다." 작은 햇빛에도 기꺼이 반응하는 냉이꽃의 모습은 인내와 기다림의 미덕을 상징한다.

마지막 연은 봄이 오고 꽃대가 올라오는 순간을 그린다. "마른 풀잎과 풀잎 사이로 / 꽃대 올려"라는 표현은 혹독한 시련을 견딘 후 피어나는 성장을 의미한다.
특히 "친정집 마당에 핀 꽃"이라는 구절은 개인적인 추억과 정서를 담아 시를 마무리한다. 친정집은 따뜻한 기억이 깃든 장소이며, 냉이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고향 같은 삶의 터전에 대한 애정을 암시한다.

이 시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삶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다. 냉이꽃이 땅에 바짝 붙어 겨울을 견디듯, 시인은 삶을 조심스럽고 인내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작은 햇살에도 기꺼이 눈을 뜨는 냉이꽃처럼, 사소한 것에서 희망과 생명의 기운을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찬녕 시인의 미의식은 작은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데 있다. 화려한 꽃이 아니라, 들판의 소박한 냉이꽃을 시의 주제로 삼은 것은 자연의 질서와 인간의 삶을 연결하는 시인의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냉이꽃'은 소박한 시어 속에 깊은 삶의 철학을 담은 작품이다. 시인은 냉이꽃의 작은 몸짓을 통해 견딤과 성장을 이야기하며, 화려하지 않아도 충분히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시인이 바라보는 세상과 삶의 태도를 담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이 시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어떤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가?" 냉이꽃처럼 인내하며, 작은 것에도 감사하며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찬녕 시인의 시는 자연과 삶을 조화롭게 연결하는 섬세한 미의식을 보여주며, 깊은 울림을 남긴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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