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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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형수 최후의 5분
시인 백영호
어느 사형수가
형장의 이슬 맞이에서
최후의 5분을 맞아
다음을 결정하렸다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과
작별인사에 2분
지금까지 28년 간 생명 이어준
하늘에 감사기도 2분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두발 디딘 땅에 감사 1분
주위를 둘려보며
아는 이 들과 작별인사와
기도에 벌써 2분이 흘렀다
이제 최후의 3분 지나면 나는 없다
생각하니
함부로 허비한 시간들
죄스럽고 후회막급 다시 산다면
금쪽같은 시간
정말 금화처럼 살리라
회한의 눈물 뿌리는 순간
마지막 1분을 남기고
기적이 일어나
형집행정지 결정
통보로 풀려났다
이 기적의 주인공이
러시아 대문호
"죄와 벌"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다
그리하여 금쪽시간 활용
금화인생 살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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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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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호 시인의 '어느 사형수 최후의 5분'은 삶의 의미와 시간의 가치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시는 극적인 서사를 기반으로 하여, 죽음의 문턱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순간을 통해 인간이 지녀야 할 근본적인 태도를 조명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실화를 모티프로 삼아, 단순한 감상적 회한이 아닌 실존적 깨달음을 전달하는 점이 돋보인다.
백영호 시인의 작품에서 중심이 되는 철학적 사유는 ‘시간의 가치’와 ‘삶의 태도’에 관한 것이다. 이 시에서 사형수는 단 5분 안에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에 대해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된다.
형장의 순간에 이르러 ‘함부로 허비한 시간들’에 대한 후회가 밀려오고, 만약 다시 삶을 얻는다면 ‘금쪽같은 시간, 금화처럼’ 살겠다는 다짐을 한다.
시인은 극적인 반전을 통해 삶의 의미를 강조한다. 죽음을 앞둔 순간, 사형 집행이 기적적으로 정지되면서, 사형수는 삶의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된다. 이는 단순한 운명의 반전이 아니라, 인간이 ‘삶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인생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도스토예프스키가 이후 '금화 같은 삶'을 살았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단순한 회한을 넘어 실천적 삶의 자세를 설파한다.
백영호 시인의 미의식은 단순한 감상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조망하는 실존적 깨달음에서 비롯된다.
시는 극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사형 집행을 앞둔 절박한 순간부터, 삶의 가치에 대한 깊은 성찰, 그리고 극적인 반전까지 서사가 명확하게 전개된다. 이는 단순한 서정시가 아닌, 극적 요소를 활용한 작품으로서 독자의 몰입도를 높인다.
‘5분’이라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삶의 중요한 요소들이 압축적으로 등장한다. ‘작별 2분, 기도 2분, 감사 1분’이라는 배분은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암시하는 상징적 장치다. 또한 마지막 1분이 남았을 때의 후회는 우리가 일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시는 인간이 필연적으로 맞이할 운명과, 기적처럼 찾아오는 기회를 대비시킨다. ‘형장의 이슬을 맞이하려던 순간’에 내려진 집행 정지는, 인간이 삶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운명이 바뀔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특히 도스토예프스키의 실화를 차용함으로써, 단순한 감상에 그치지 않고 현실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시의 문장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면서도 강한 여운을 남긴다. ‘이제 최후의 3분 지나면 나는 없다’는 직설적인 문장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금쪽같은 시간, 금화처럼’이라는 비유는 삶의 가치를 강조하면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표현으로 설득력을 더한다.
백영호 시인의 '어느 사형수 최후의 5분'은 단순한 회고적 시가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은 작품이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서 비로소 깨닫게 되는 시간의 소중함과, 그것을 놓치고 후회하는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새로운 기회를 통해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을 함께 담아낸다. 이는 시인의 삶에 대한 통찰과 실천적 가치를 반영하는 것이며, 미적 차원에서도 극적인 구성과 상징적 표현을 활용해 강한 인상을 남긴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