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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雨水

김왕식







우수雨水

시인 이길섭




숲 속 후미진 구석구석
배시시 햇살 기웃거리면
묵은 낙엽 사이
요기서 삐쭉
조기서 삐쭉
잠 깨는 소리,

볕 바른 바윗가 까투리
풀숲 헤집는
산허리 타고
구비 도는 바람
잔설 녹이네,
비탈에는 도토리깍지 데구루루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길섭의 시 '우수雨水'는 절기의 변화 속에서 자연의 세밀한 움직임을 포착하며, 물리적 세계를 탐구하는 수학자의 시선과 감성적 통찰이 만나는 지점을 보여준다. 한평생 대학에서 수학을 강의한 시인이지만, 그의 시 세계는 건조한 논리가 아니라 자연의 미세한 변화와 생명력 넘치는 순간들을 섬세한 필치로 포착한다. 이는 그가 숫자와 공식을 넘어 조화와 질서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존재론적 태도를 지니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 시는 절기상 ‘우수(雨水)’를 배경으로, 겨울의 잔설이 녹고 봄의 기운이 움트는 순간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첫 연에서는 숲 속 구석구석 스며드는 햇살과 낙엽 사이에서 깨어나는 생명들이 그려진다. “배시시 햇살 기웃거리면”이라는 표현은 마치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는 듯한 햇빛의 움직임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며, “요기서 삐쭉 조기서 삐쭉”은 생명의 기지개를 감각적으로 표현한다. 이는 수학자의 정밀한 관찰력과 시인의 섬세한 언어 감각이 만나는 부분이다.

둘째 연에서는 자연의 더 큰 흐름이 담긴다. 볕이 드는 바위틈의 까투리, 풀을 헤집는 바람, 구비 도는 바람이 잔설을 녹이는 장면은 자연의 조화로운 이치 속에서 계절의 변화를 암시한다. 특히 “비탈에는 도토리깍지 데구루루”라는 마지막 구절은 생명의 순환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며, 겨울에서 봄으로의 흐름을 상징하는 듯하다.

이길섭의 시 세계는 자연 묘사를 넘어, 질서 속에서 발견하는 아름다움과 조화를 그려낸다. 수학적 사고가 단순한 계산이 아니라 우주의 본질을 탐구하는 과정이라면, 그의 시 역시 자연의 질서와 조화를 발견하려는 철학적 탐구의 연장선에 있다. 섬세한 관찰력과 간결한 언어로 표현된 이 시는, 절기의 변화 속에서 생명의 기운을 감각적으로 담아내며, 한평생 논리와 숫자를 연구한 수학자의 또 다른 미학적 통찰을 보여준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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