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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소연 여사의 추어탕

김왕식







남소연 여사의 추어탕




소엽 박경숙




어머니는 새벽마다 조용히 집을 나섰다. 찬 이슬을 머금은 들길을 따라 작은 도랑으로 향하면, 그곳에는 밤새 물살에 흔들리던 통발이 기다리고 있었다. 매듭 하나 허술함 없는 어머니의 손길로 짠 통발. 그녀가 손을 뻗어 올릴 때마다, 미꾸라지들이 검은 비단처럼 엉켜 들려 올라왔다. 때로는 빈 손으로 돌아오는 날도 있었다. 누군가 통발을 가져가 버린 날이면 어머니는 한숨을 삼키며 말했다.

"통발은 두고 가지, 참말로."

어머니는 그런 날에도 변함없이 고무다라이에 물을 채우고 미꾸라지를 풀었다. 푸른 풋고추 몇 개를 툭툭 잘라 던지면, 미꾸라지들은 거품을 내며 안의 것들을 토해냈다. 간혹 힘이 좋은 놈이 탈출이라도 하려는 듯 펄쩍 뛰어올라 마룻바닥을 꿈틀거리곤 했다. 그때마다 어린 나는 손을 내밀면서도 선뜻 잡지 못했다. 미끈한 촉감과 물컹한 질감이 손끝에서 살아 움직였다.

어머니의 손길은 거침이 없었다. 해금을 한 미꾸라지를 소금으로 깨끗이 씻어 무쇠솥에 참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넣었다. 뚜껑을 닫으면 안에서 미꾸라지들이 튀어 오르다 이내 잠잠해졌다. 물을 한 바가지 부어 푹 끓이면, 살과 뼈가 분리될 때를 기다려 체에 걸러냈다. 그 뒤엔 정구지, 박, 배추시래기, 제철 채소를 가득 넣고 다시 오래 끓였다.

추어탕 냄새가 골목을 타고 번질 즈음, 어머니는 내게 말했다.

"갱숙아, 퍼뜩 가서 소사 아재한테 추어탕 끓인다카고 얘기하고 온나."

나는 신이 나서 학교로 달려갔다. 선생님들도 이미 어머니의 추어탕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우리 집 평상 위에는 예닐곱 명의 선생님들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들은 한 그릇씩 받아 들고 풋고추를 송송 썰어 넣고, 엄마표 장을 풀고, 산초가루를 듬뿍 뿌려 땀을 흘리며 추어탕을 들이켰다.

"니는 아는 쪼깨 만기, 무슨 추어탕을 어른처럼 묵노?"

선생님들의 웃음소리가 바람결에 실려왔다. 그 웃음이, 그 미소가 내 유년의 한가운데를 가만히 밝히고 있었다.

어머니는 가진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손끝에서 끓어오른 국물 한 그릇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정성이었다. 그 사랑이 어린 가슴 속 깊이 스며들었고, 덕분에 막내인 나도 오늘 이렇게 건강히 살아 있다.

어머니의 추어탕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삶이었고, 사랑이었으며, 남루한 현실 속에서도 나누는 기쁨이었다.

그리하여 오늘도 기억 속 어머니는 새벽녘 도랑가를 걸으며 통발을 들춰 본다. 그리고 그날처럼, 변함없이 따뜻한 국물을 내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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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박경숙 작가의 '남소연 여사의 추어탕'은 한 그릇의 음식 속에 깃든 어머니의 삶과 사랑을 깊이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이 글은 단순한 유년의 회상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작가의 가치 철학과 미의식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먼저, 작품은 ‘나눔의 미학’을 중심으로 서술된다. 가진 것이 없던 어머니가 주변을 돕기 위해 끓이던 추어탕은 단순한 음식이 아닌, 공동체적 삶을 구현하는 매개체가 된다. 특히 “갱숙아, 퍼뜩 가서 소사 아재한테 추어탕 끓인다카고 얘기하고 온나.”라는 대목에서 어머니의 삶의 태도가 잘 드러난다. 이는 자신의 몫을 아끼지 않고 타인과 나누는 삶을 살아온 어머니의 모습이자, 작가가 기억하는 인간애의 본질이다. 이는 궁핍 속에서도 온기를 잃지 않으며,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전통적 공동체의 정신을 반영한다.

또한, 글의 미의식은 ‘시간 속에서 형성된 따뜻한 기억’에 있다. 작품은 과거의 경험을 사실 나열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인 묘사와 정서적인 흐름을 통해 독자에게 생생하게 재현한다. “미꾸라지들이 검은 비단처럼 엉켜 들려 올라왔다.”라는 표현은 시각적 이미지가 강렬하며, “미끈한 촉감과 물컹한 질감”은 촉각적 기억을 직접적으로 되살린다. 이러한 감각적 요소는 작가가 과거를 추억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기억을 통해 현재를 되새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음식이 삶의 철학이 되는 과정 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음식은 그저 생존 수단이 아니라, 사람을 이어주고 관계를 맺는 도구로 기능한다. 추어탕을 끓이기 위해 어머니가 새벽마다 도랑을 향하는 과정, 힘든 날에도 묵묵히 삶을 이어가는 태도는, 그 자체로 생의 의지이자 철학이 된다. 또한, 선생님들이 평상에 앉아 땀을 흘리며 추어탕을 먹는 장면에서는, 음식을 매개로 한 관계의 따뜻함이 드러난다. 이처럼 작가는 ‘음식’을 단순한 물질적 소비가 아니라, 기억과 관계를 형성하는 예술적 행위로 승화시키고 있다.

작품의 마지막에서 “그리하여 오늘도 기억 속 어머니는 새벽녘 도랑가를 걸으며 통발을 들춰 본다.”라는 구절은, 어머니의 삶이 여전히 현재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는 ‘기억의 지속성’을 통해 세대 간의 연결을 강조하는 동시에, 작가가 추구하는 인간적인 삶의 방식, 즉 소박하지만 따뜻한 삶의 가치를 대변한다.

요컨대, '남소연 여사의 추어탕'은 단순한 음식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나눔과 공동체, 기억과 지속성, 삶의 태도와 사랑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긴 작품이다.
작가의 문장은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면서도 정서적 울림을 전하며, 한 편의 시처럼 부드럽게 흐른다.
이는 삶과 예술을 하나로 엮어내는 문학적 태도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보편적 인간애’를 담고 있다. 단순한 자전적 회상을 넘어서, 삶의 본질적인 의미를 탐구하고, 그것을 감각적이고 서정적인 언어로 풀어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남소연 여사의 추어탕'은 개인의 기억을 넘어, 많은 이들에게 삶의 아름다움을 되새기게 하는 작품으로 자리할 것이다.






박경숙 어머니께



어머니,
이 편지를 써 내려가면서도 여전히 당신의 따뜻한 손길이 느껴집니다. 세월이 흘러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 기억들, 당신의 정성이 스며든 추어탕 냄새가 마치 지금 이 순간 제 곁을 감싸고 있는 듯합니다.

어머니, 당신은 가진 것이 많지 않으셨지만, 나누는 삶을 사셨습니다. 작은 도랑에서 건져 올린 미꾸라지를 소중히 품고 오던 그 손길, 차디찬 새벽 공기를 가르며 물길을 걸어가던 그 발걸음, 그리고 온 집안을 감싸던 구수한 국물의 향기까지—당신의 삶은 온전히 따뜻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웃을 위해 추어탕을 끓이던 그 모습, 선생님들이 당신의 평상에 둘러앉아 땀을 흘리며 국물을 들이켜던 그 광경이 어찌 잊히겠습니까. 당신이 손수 담아내던 한 그릇 한 그릇이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음을, 그것이 당신의 마음이었고, 사랑이었고, 삶 자체였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 당신은 홀로 아이들을 키우며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견디셨을까요. 그러나 당신의 입가에서 한숨보다 먼저 나온 것은 언제나 미소였습니다. 삶이 힘겨울수록 더 깊이 웃고, 더 넓게 품고, 더 많이 나누셨습니다. 어머니의 삶 자체가 온기였고, 세상을 환하게 밝혀주던 등불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도 바쁘고 각박한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이야기를 읽으며 다시금 깨닫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를 향한 따뜻한 마음이라는 것을요. 당신이 남긴 사랑이 지금도 제 가슴 한구석에서 선명히 빛나고 있습니다.

어머니, 이제는 당신께서 계시던 그 집에도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남긴 정성 어린 추어탕 냄새는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감싸고 있습니다. 그 냄새가 바람을 타고 흘러가듯, 당신이 남긴 사랑도 우리 삶 속에서 조용히 흐르고 있습니다.

이제 당신께서는 천국으로 떠나셨다 하니, 가슴이 저며옵니다. 남겨진 우리는 더 이상 당신의 손길을 직접 느낄 수 없지만, 당신이 우리에게 남긴 따뜻한 기억들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부디 그곳에서도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당신을 기억하는 한, 당신의 사랑이 여전히 세상을 밝히고 있음을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그리운 마음을 담아,
당신을 늘 존경하던 지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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