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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날아간 작은 천사 ㅡ 노영선

김왕식







하늘로 날아간 작은 천사





노영선





바람이 스산하게 불던 어느 날, 작은 동네 안경점에 들렀다. 돋보기안경을 맞추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주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주머니, 바로 옆 가게에 얼마 전에 치킨집이 들어왔어요. 젊은 부부가 하는 곳인데, 안타까운 사정이 있더군요. 아들이 아픈데도 먹고살아야 하니 가게를 운영하는 거라네요. 우리도 가끔 들러서 치킨을 사 먹곤 합니다. 아주머니도 한 번 가보세요."

그날 저녁, 나는 그 치킨집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3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부부가 따뜻한 미소로 맞아주었다. 닭이 튀겨지는 동안, 아이 아빠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저희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어요. 돌 지나면서부터 백혈병을 앓아 6년 넘게 집 밖을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바깥에서 뛰어노는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먹먹해지지요. 장모님이 아이를 돌봐주고 계시지만, 우리 부부는 생계를 위해 가게를 운영해야만 합니다."

말을 잇지 못하는 그를 보며, 나는 더 이상 묻지 못했다. 치킨을 많이 사서 나왔지만 발걸음이 무거웠다. 이후 나는 종종 그 가게를 찾았고, 부부를 응원하며 따뜻한 말을 건넸다.

그러던 어느 날, 가게 창에 ‘점포 정리’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 아빠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리 애 앞으로 취학통지서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학교에 갈 수 없어요. 예비소집일 날, 다른 아이들이 엄마 손을 잡고 학교에 오는 걸 보는데 가슴이 막히더군요. 우리 애도 저들처럼 가방을 메고 가야 하는데…"

그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조용히 속삭였다.

"며칠 전 의사 선생님이 우리 아이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시더군요. 이제 가게를 접고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 합니다."

나는 손에 있던 돈을 그에게 쥐여주며 등을 토닥였다. 말없이 눈물을 흘리는 그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몇 달 후,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드님, 어떻게 지내세요?"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아이 아빠의 낮고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애… 어린이날에 떠났습니다. 축복받은 그날, 신나게 뛰어놀아야 할 아이가… 그런데도 녀석은 너무 급했어요. 우리 곁을 남겨두고 떠나버렸네요."

통화기 너머에서 흐느낌이 들려왔다.

"하늘이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우리 아이여야 했을까요? 취학통지서는 그저 휴지조각에 불과했습니다. 우리 애는 천사였습니다. 자기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았던 걸까요? 마지막 순간까지도 우리를 생각했던 아이였어요."

그는 긴 한숨을 내쉬더니,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 부부는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습니다. 아이의 두 눈은 시각장애인에게 기증되어 세상을 보게 했고, 장기는 여섯 명의 환자들에게 새 생명을 주었습니다. 우리 아이는 떠났지만, 여전히 이 세상 어딘가에서 숨 쉬고 있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가슴이 터질 듯 아팠다.

"하지만, 가장 아쉬운 건요…"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우리는 아이와 단 한 번도 공원에 가보지 못했고, 바닷가에서 발을 적셔 본 적도 없습니다. 놀이터에서 그네를 밀어준 적도 없어요. 아이는 소풍을 가본 적도 없고,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뛰어본 적도 없습니다. 펑펑 내리는 눈을 맞으며 눈사람을 만든 적도 없어요. 그저… 방 안에서만 지내다 떠나버렸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힘없이 주저앉아 울었다.

며칠 후, 나는 어린이날이 되면 한 번쯤 그 아이가 잠든 곳을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하늘을 향해 조용히 기도할 것이다.

‘잘 가거라, 작은 천사야. 이제 아프지 말고, 하늘에서 실컷 뛰어놀아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노영선 작가는 한평생 교육자로서 후학을 정성껏 지도하며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아왔다. 그의 삶은 단순한 가르침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의 내면과 삶의 가치에 대한 깊은 사유를 바탕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품는 데 있었다. 교육자로서 그는 학생들에게 단순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가치관을 심어주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의 작품에서도 이러한 인생관이 그대로 드러난다.

'하늘로 날아간 작은 천사'는 한 가정의 비극을 담담하게 서술하면서도, 읽는 이의 가슴을 깊이 울리는 작품이다. 작가는 불행한 운명을 타고난 아이와 그 가족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감상적 연민이 아니라 깊은 공감으로 독자를 이끈다. 그는 사건을 극적으로 부풀리거나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외려 담백한 어조 속에서, 삶의 부조리와 아픔을 정직하게 담아낸다.

이 작품에서 가장 돋보이는 점은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현실적인 정서를 세밀하게 포착했다는 점이다. 특히 아이의 아버지가 털어놓는 절망과 애끊는 그리움,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내린 결정은 독자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러나 그 무거움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인간이 지닌 선의와 희망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힘이 된다.

노영선 작가는 ‘희생’을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나눔을 통한 또 다른 존재의 의미로 풀어낸다. 아이의 죽음이 절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장기 기증을 통해 누군가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깊은 메시지를 던진다. 아이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일부는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남아 그들을 살리고 있다.

작가는 이 과정을 통해 ‘인간은 타인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삶의 철학을 자연스럽게 전달한다. 이는 그가 평생 교육자로서 학생들에게 전했던 가르침과도 맞닿아 있다. 진정한 가치는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누고 베풀 때 완성된다는 것. 이러한 인식이야말로 그의 문학적 미의식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노영선 작가의 문체는 과장되지 않으며, 절제된 감정을 유지하면서도 독자의 마음을 강하게 두드린다. 지나치게 감성적인 표현을 지양하면서도, 인물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세심한 문장들은 독자에게 오히려 더 큰 감동을 준다.
특히, 마지막 대목에서 아버지가 아이와 함께하지 못한 순간들을 하나하나 회상하는 장면은 단순한 슬픔을 넘어,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결말 또한 인위적인 위로나 희망으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독자가 자연스럽게 작품 속 인물들의 감정을 공유하고, 그 여운을 오래도록 가슴에 남길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점에서 노영선 작가의 글은 이야기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노영선 작가는 교육자로서 후학을 가르치며,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품는 법을 배웠고, 그것을 문학을 통해 형상화했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삶의 근본적인 의미를 탐구하는 진지한 시선이 담겨 있다.

그는 가르치는 일도, 글을 쓰는 일도 한결같이 ‘사람’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에서 출발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배움을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따뜻한 인간애를 전했고, 작품에서도 그 정신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하늘로 날아간 작은 천사'는 그저 한 가족의 슬픈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한 인간이 남긴 마지막 선물, 그리고 그것을 지켜본 사람들의 삶 속에 스며든 희망과 사랑의 기록이다. 노영선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묻는다. 그가 평생 동안 품어온 교육자로서의 철학과 문학적 신념이 완벽하게 녹아든 작품이라 할 수 있다.


ㅡ 청람






작은 천사를 떠나보낸 부모님께




노영선 선생님의 글 '하늘로 날아간 작은 천사'를 읽고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묵직한 울림이 퍼졌습니다.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슬픔이 있지만,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야 하는 부모의 슬픔보다 더 큰 것이 있을까 싶습니다.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고, 끝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가엾은 아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집니다. 한 살 때부터 병상에 누워 바깥세상을 제대로 보지도 못한 채 지내야 했던 아이, 친구들과 뛰어놀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던 아이,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학교에 가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아이.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을지도 모를 그 아이가, 어린이날에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하늘도 참 야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떠나는 순간까지도 너무나 큰 선물을 세상에 남겼습니다. 아이의 작은 손길이 미치지 못한 세상 곳곳에서, 그 아이의 두 눈이 새로운 빛을 찾았고, 그의 장기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새 생명을 주었습니다. 아이가 살아생전 꿈꾸었던 바깥세상은, 이제 그의 일부가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이어지고 있겠지요. 어쩌면 그 아이는 이제 더 이상 병상에 갇혀 있지 않고, 그가 도와준 사람들의 눈과 가슴속에서 세상을 함께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의 부모님께서는 얼마나 힘드실까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존재를 떠나보내고 나서의 시간들은, 숨을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웠을 겁니다. 문득문득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학교 앞을 지날 때마다 여전히 그 빈자리가 아리게 남아 있을 테지요. "우리 아이도 저기 있었어야 하는데…" 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어찌 눈물이 마를 수 있겠습니까.

노영선 선생님의 글은 그런 부모님의 절규를 있는 그대로 담아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그 슬픔을 함께 나누고, 기억하게 했습니다. 그저 안타까운 사연으로 흘려보낼 수 없게끔, 우리 가슴속에 깊은 울림을 남겨 주었습니다.

사실 저는 예전부터 노영선 선생님을 존경해 왔습니다. 평생 교육자로서 제자들에게 삶의 본질을 가르쳐 주셨고, 언제나 사람을 먼저 생각하시는 분이셨습니다. 단순한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를 스스로 깨닫게 하는 그런 스승이셨습니다. 선생님이 글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늘 따뜻하면서도 깊었습니다. 사람의 아픔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것을 함께 짊어지려 하는 그 마음이 글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하늘로 날아간 작은 천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선생님은 단순히 한 가족의 불행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사랑과 희생,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고, 사람의 삶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남기며 살아가야 하는가를 다시금 곱씹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부모님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부모님께서 결코 혼자가 아니시라는 것을 꼭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이가 세상에 남긴 선물은, 그를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살아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을 읽고 아이를 떠올리는 사람들, 그리고 그 아이 덕분에 다시 삶의 기회를 얻은 사람들 모두가 그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괴로워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물론 그리움이야 평생 사라지지 않겠지요. 하지만 아이는 결코 헛된 삶을 산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부모님 또한, 그 누구보다 아이를 위해 헌신한 분들입니다. 아이는 부모님의 그 사랑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간 작은 천사에게도 한마디 전하고 싶습니다.

"너는 너무나 소중한 아이였단다. 네가 살아온 시간이 비록 짧았지만, 그 시간 동안 너는 세상에 큰 사랑을 남기고 떠났어. 네가 준 그 사랑이 네 부모님을 지켜 줄 거야. 그리고 우리가 너를 기억할 거야. 그러니 이제 아프지 말고, 하늘에서 마음껏 뛰어놀기를 바란다."

노영선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이 글을 통해 우리는 한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달았고, 남겨진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노 선생님의 글이 없었다면, 이 아이의 이야기는 그저 한 가족의 슬픈 사연으로만 남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모두 그 아이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우리를 조금 더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부디 부모님께서도, 슬픔 속에서도 아이가 남긴 의미를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아이가 바랐던 것은 부모님의 끝없는 눈물이 아니라,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었을 테니까요.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의 작은 천사에게도 기도를 전하겠습니다.

그가 남긴 사랑이, 언젠가 부모님께 따뜻한 위로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아이를 기억하는 이웃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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