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장아장 걸어오는 봄 ㅡ 청민 박철언 시인

김왕식












아장아장 걸어오는 봄




시인 청민 박철언




빈 가지에 고운 바람이 잠을 깨우고
벗은 나무가 물기를 빨아올려
움틀 준비를 한다

밭두렁 냉이는 파릇한 새싹 내밀며
방긋방긋 인사하고
버들강아지 실눈 뜨고
실개천 졸졸졸

닫힌 창가에 부드러운 바람이 감돌고
살랑살랑 피어나는 오후 햇살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봄은 꽃바람 타고 보슬비 뿌리며
나무와 숲에 봄기운을 불어넣는다

우리 가슴을 설레게 하며
아장아장 걸어오는 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제목이 앙증맞다.
청민 박철언 시인은 공직자로서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삶 속에서도 자연을 섬세하게 포착하는 감수성을 간직해 왔다.
이 시는 봄의 서정적 아름다움을 담아내면서도, 따뜻한 시선과 정갈한 표현으로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특히, 자연의 변화와 생명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방식은 김영랑의 서정미를 떠올리게 한다.

첫 연에서 빈 가지와 벗은 나무의 움직임을 통해 봄의 생동감을 서서히 끌어올린다. 봄이 오는 과정은 마치 유년기의 걸음마를 배우듯 서툴지만 확고한 생명력을 지닌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아장아장"이라는 표현은 봄이 급작스럽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도래함을 보여준다.

둘째 연에서는 봄을 맞이하는 자연의 움직임이 더욱 구체화된다. 냉이가 새싹을 내밀며 인사하고, 버들강아지가 눈을 뜨며, 실개천이 졸졸 흐르는 모습은 봄의 생동감을 시각적, 청각적으로 생생하게 전달한다. 특히, "방긋방긋 인사하고"라는 의인화는 시 전체의 따뜻한 정서를 강화하며, 독자로 봄을 살아 숨 쉬는 존재로 느끼게 만든다.

셋째 연에서는 창가로 스며드는 부드러운 바람과 살랑이는 햇살을 통해 봄의 감각적 요소를 극대화한다. 봄바람과 보슬비가 자연을 깨우고 숲에 기운을 불어넣는 장면은 마치 생명의 축복을 내리는 신비로운 순간처럼 그려진다. 이를 통해 봄은 단순한 계절의 변화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감성을 어루만지는 존재로 자리한다.

마지막 연에서는 이러한 봄의 움직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시의 제목과 연결되는 "아장아장 걸어오는 봄"을 반복하여 마무리한다. 이 표현은 봄의 온화한 도래를 형상화하는 동시에, 독자가 시의 여운을 깊이 느끼도록 유도한다.

청민 시인은 오랜 공직 생활을 통해 단단한 현실 감각을 지니면서도, 자연을 향한 부드러운 시선을 잃지 않았다. 그의 시에서는 이러한 감성이 정제된 언어로 구현되며, 섬세한 조탁과 절제미가 돋보인다. 김영랑의 시가 고운 서정미와 정련된 언어로 사랑받았듯, 박철언 시인의 작품 역시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따뜻한 언어로 녹여내며, 독자에게 위안을 준다.

이 시는 자연과 인간이 함께 호흡하는 순간을 감각적으로 포착한 작품이다. 박철언 시인의 시 세계는 한편으로는 단아하고 섬세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깊이 있는 성찰을 담고 있다.
그의 시가 전하는 따스한 감성과 서정적 아름다움은 앞으로도 독자들의 마음을 오래도록 감싸줄 것이다.




ㅡ 청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별을 싣고 달리는 밤 ㅡ 자연인 최호 안길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