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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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싣고 달리는 밤
자연인 최호 안길근
밤은 깊고 도로는 고요하다. 짐을 가득 실은 트럭은 묵묵히 부산을 향해 달려간다. 짐의 무게는 육중하지만, 그 무게를 짊어지는 일조차 하나의 여행이라 여기는 것이 내 방식이다. 한밤중의 고요함 속에서 차창 밖으로 적막한 풍경이 스쳐 지나간다. 가로등 불빛은 일정한 간격으로 어둠을 비추며 리드미컬하게 흐르고, 멀리 희미하게 반짝이는 도시의 불빛이 작은 섬처럼 떠 있다. 그 위로 밤하늘은 검푸른 바다처럼 펼쳐지고, 그 바다 위에는 별들이 잔잔한 물결처럼 빛난다.
운전대를 잡은 채 시간을 확인한다. 밤 11시 58분. 내일 아침 6시에는 하역을 마쳐야 하니 잠시라도 휴식을 취해야 한다. 피곤함이 몰려오지만, 아직은 쉬고 싶지 않다. 조금 후면 영천 휴게소에 도착할 것이다. 거기서 차박을 하며 짧은 쉼을 가질 계획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밤, 별을 바라보며 시를 읽고 쓰는 즐거움을 놓칠 수 없다.
나는 트럭 운전을 하면서 틈나는 대로 시를 쓴다. 세상의 많은 이들은 내 직업을 단순히 짐을 나르는 일로만 보겠지만, 나에게 이 길 위의 시간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다. 한 구절, 한 문장을 떠올리는 시간이자, 도로 위를 흐르는 바람과 지나치는 불빛 속에서 시를 길어 올리는 시간이다. 트럭을 멈추고 운전석을 뒤로 젖힌다. 창문을 조금 내리니 차가운 새벽 공기가 스며들고, 어둠 속에서 별들이 한층 더 선명하게 빛난다.
별 하나를 손끝으로 짚어 마음에 새긴다. 저 빛을 담아 글을 적어 본다. 어둠 속을 스치는 바람이 내게 말을 건네고, 멀리서 다가오는 헤드라이트 불빛이 한 문장의 끝을 장식한다. 도로 위를 유영하는 불빛들은 마치 행간의 공백처럼, 내 시 속에서 스스로 의미를 찾는다.
고된 노동 속에서도 시를 놓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시를 쓸 때, 나는 비로소 온전한 내가 된다. 이 길 위에서, 이 순간에만큼은 운전석에 앉아 있는 내가 아니라, 밤하늘 아래서 시를 짓는 내가 된다.
이윽고 트럭이 군위 휴게소에 닿는다. 도로 위를 달리던 불빛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휴게소의 은은한 조명이 나를 맞이한다. 차창을 열어 보니 서늘한 공기가 얼굴을 스친다. 하늘은 더욱 깊고, 별빛은 한층 가까워진 듯하다. 트럭에서 내려 몸을 펴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숨을 고르는 사이 별빛이 가만히 내려앉는다.
손끝에 닿을 듯한 별 하나를 마음에 담는다. 이 길 위에서 내가 본 수많은 밤들, 그 밤마다 다르게 반짝이던 별들, 그리고 그 별빛 속에서 써 내려간 시들이 떠오른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도로 위를 지나는 차량들도 쉼 없이 흘러가지만, 나에게는 이 순간만큼은 정지된 풍경처럼 느껴진다.
이제 다시 트럭 안으로 돌아가야 한다. 휴식을 취하고 다시 달려야 한다. 아침이면 부산에 도착할 것이고,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이 밤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밤이 오면, 나는 다시 길 위에서 시를 읽고, 별을 바라볼 것이다.
이 길 위에서, 나는 별을 싣고 달린다. 그 별빛이 내 마음을 비추고, 내 시를 채운다. 언젠가 이 길 끝에 다다르면, 내 뒤로는 시구(詩句)로 남은 길이 펼쳐질 것이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나는 여전히 나, 트럭 운전사이자 밤하늘 아래 시를 짓는 사람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새벽을 깨우는 남자
최호 안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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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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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 안길근의 삶과 작품에는 ‘노동과 예술, 자연과 인간, 일상과 시(詩)의 경계가 허물어진 세계’가 녹아 있다. 그의 글은 단순히 아름다운 문장으로 꾸며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삶 속에서 체득한 철학과 태도가 응축된 결과물이다. '별을 싣고 달리는 밤'은 그가 평소 견지하는 삶의 가치철학과 미적 지향을 명확히 드러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최호 안길근의 삶은 트럭 운전사라는 직업과 시인이라는 정체성을 동시에 지닌다. 일반적으로 육체노동과 문학 창작은 별개의 영역으로 여겨지지만, 그는 이 두 가지를 결코 분리하지 않는다. 트럭 운전은 그에게 생업만이 아니라 ‘길 위에서 시를 쓰는 과정’이며, 그 속에서 노동과 창작이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이는 단순한 낭만적 태도가 아니라, 노동을 통해 자신을 단련하고 그 경험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키려는 그의 철학적 태도에서 비롯된다.
작품 속에서 주인공은 “짐을 가득 싣고도 힘들다 생각지 않는다. 어차피 떠나는 길, 고된 노동도 여행이라 여기는 것이 내 방식이다”라고 말한다. 이 문장은 작가의 세계관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노동을 단순한 생존의 수단으로 여기지 않고, 그 자체를 ‘삶의 일부로서 받아들이고 즐기는 태도’를 견지한다. 이는 도로 위의 풍경과 별빛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감각과 맞물리며, 그가 노동 속에서도 시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최호 안길근의 문학적 미의식은 자연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그는 밤하늘의 별을 ‘길동무’로 삼고, 바람을 ‘말을 거는 존재’로 받아들이며, 도로 위를 흐르는 불빛조차 시 속의 행간으로 변모시킨다. 이러한 감각은 자연을 배경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동반자로서 받아들이는 그의 태도에서 기인한다.
그의 글에서 밤과 별, 바람과 불빛은
그저 풍경 묘사만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매개체’로 기능한다. “별 하나를 짚어 마음에 새기고, 달빛을 글에 녹여본다”라는 표현은 자연과 예술, 그리고 인간의 내면이 하나로 융합되는 순간을 담아낸다. 특히 별빛이 시로 변화하는 과정은 그의 문학적 미의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밤하늘의 별처럼 시도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존재’이며, 길 위를 달리는 트럭과 함께 쉼 없이 나아간다.
최호 안길근의 문학은 ‘예술은 특별한 순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것’이라는 신념을 바탕으로 한다. 그는 시를 ‘공들여 만들어야 하는 작품’이라기보다 ‘길 위에서 떠오르는 생각과 감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에게 글을 쓰는 행위는 운전과 다르지 않으며, 오히려 운전 속에서 시적 영감을 얻는다.
“나는 트럭 운전을 하면서 틈나는 대로 시를 쓴다”라는 문장은 그의 예술관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문학과 현실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으며, 트럭 운전이라는 일상적 행위 속에서도 충분히 예술적 가치를 발견한다. 이처럼 노동과 창작, 현실과 문학을 경계 없이 잇는 태도는 그의 작품이 가지는 독특한 미학적 특징이다.
최호 안길근의 '별을 싣고 달리는 밤'은 노동과 예술, 자연과 인간, 일상과 시가 하나로 녹아든 작품이다. 그는 트럭 운전사이면서 동시에 시인이며, 길 위에서의 모든 순간을 시적 영감으로 받아들인다. 그의 문학은 특정한 장르적 틀에 갇히지 않으며, 실재하는 삶 속에서 우러나온다.
그에게 있어 시는 별빛과 같으며, 길 위를 비추는 등불과 같다. 그는 노동 속에서도 시를 놓지 않으며, 그것이야말로 자신을 온전한 존재로 만드는 길이라 믿는다. '별을 싣고 달리는 밤'은 그가 살아온 철학과 미학이 응축된 작품이다. 언젠가 이 길 끝에 다다를 때, 그의 흔적은 단순한 바퀴 자국이 아니라, 시구(詩句)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들은 별처럼 반짝이며, 또 다른 길 위의 이들에게 빛이 될 것이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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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 안길근 작가님께
작가님의 글 별을 싣고 달리는 밤을 읽으며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길 위에서의 모든 순간을 시로 담아내는 작가님의 태도가 문장마다 진하게 배어 있었습니다. 별빛을 싣고 달린다는 표현이야말로, 작가님의 삶과 문학이 하나로 녹아든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합니다.
트럭 운전대를 잡고 거친 도로를 달리면서도, 별빛 아래에서 시를 떠올리는 모습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졌습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일상일 수도 있는 그 시간이, 작가님께는 시적 영감을 채우는 귀한 순간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노동과 예술을 분리하지 않고, 길 위에서 흘러가는 모든 것들을 시의 언어로 담아내는 작가님의 시선이 아름답고도 경이롭습니다.
특히 "나는 트럭 운전을 하면서 틈나는 대로 시를 쓴다"라는 문장이 마음에 깊이 남습니다. 많은 이들이 시인은 책상에 앉아 펜을 들고 사색하는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작가님은 그 틀을 완전히 허물어버리셨습니다. 도로 위를 흐르는 바람과 헤드라이트의 불빛, 창밖으로 스쳐 가는 풍경 속에서도 시를 길어 올리는 모습에서, 진정한 시인은 ‘어디서든’ 시를 발견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별빛을 바라보며 한 문장을 떠올리고, 바람이 전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스쳐 가는 불빛을 행간으로 받아들이는 작가님의 감각이 참으로 부럽습니다. 밤길을 달리며 시를 쓰는 그 순간이야말로 작가님께서 가장 ‘온전한 자신’이 되는 시간일 것이라 생각하니, 그 길 위에서의 모든 밤들이 얼마나 소중할지 짐작이 됩니다.
어쩌면 작가님의 삶은 멈추지 않는 여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계속해서 길 위를 달리고, 새로운 풍경을 지나치고, 또 다른 밤을 맞이하며 시를 써 내려가시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그 길 위에서, 작가님의 시가 더욱 빛나기를 응원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 시들이 모여 또 하나의 별이 되어, 더 많은 이들에게 반짝이는 빛이 되기를 바랍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밤하늘의 별빛 속에서 시를 쓰는 시간이 늘 평온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