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자갈치 시장 기타 치는 할배

김왕식

부산 자갈치 시장 기타치는 할아버지











부산 자갈치 시장의 로맨티시스트, 기타 할배의 노래





청람 김왕식






부산 자갈치 시장 후미진 뒷골목.

생선 비린내와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음 속에서도, 그 한구석에는 언제나 묵묵히 기타를 연주하는 한 노인이 있다. 낡아 삭아버린 기타, 갈라진 틈새마다 덕지덕지 붙여진 반창고.

그 손길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는 시간이 멈춘 듯한 낭만을 품고 있다.


그가 연주하는 곡은 언제나 ‘돌아와요 부산항에’. 마치 시간이 멈춘 듯, 혹은 바다가 밀려오듯 변함없이 흐르는 선율이다. 바다를 바라보며 저 먼 곳을 떠올리는 듯한 음률 속에서, 사람들은 그의 기타 소리에 잠시 발길을 멈춘다.

연주자는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는다. 묵묵히 기타 줄을 튕기며, 한 곡이 끝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같은 곡을 연주한다.


그의 옆에는 낡은 작은 종이 상자가 놓여 있다. ‘모금함’이라 쓰여 있지만, 그것은 마치 장식물처럼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동전을 넣고 가도, 그는 그것을 헤아리지 않는다. 돈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거리의 악사, 그의 삶의 무대는 단순한 생계를 넘어선 곳에 있다.


그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삶의 무게가 짓누르듯 깊게 눌러쓴 빛바랜 털벙거지 아래로, 무표정한 얼굴이 드러난다. 그 얼굴이 무심한 것이 아니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연주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에게 기타는 삶이고, 음악은 철학이며, 부산항은 그의 영원한 무대다.


자세히 보면, 그도 무심한 듯이 리듬을 타고 있다. 기타 줄을 튕길 때마다 왼쪽 다리를 길게 들어 박자를 맞춘다. 어쩌면 그의 감정을 드러내는 유일한 제스처일지도 모른다. 감정 없이 무미건조하게 연주하는 것 같지만, 그의 발끝에는 삶의 리듬이 있고, 음악을 향한 사랑이 있다.


누군가 다가와 그에게 말을 걸어도, 그는 연주를 멈추지 않는다. 그의 언어는 음악이고, 기타 소리는 그의 목소리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앞을 스쳐 지나가지만, 그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지 않는다. 오직 기타 소리로만, 그리고 높이 들리는 왼쪽 다리로만 자신을 표현할 뿐이다.


누군가는 그를 그저 거리의 악사로 볼지도 모른다. 그를 오래 지켜본 사람들은 안다. 그는 단순한 악사가 아니다. 그는 부산항의 낭만객이며, 뮤지션이며, 거리의 철학자다.


그의 음악에는 시간이 녹아 있다. 떠나간 사람들, 남겨진 사람들, 그리고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사람들. 그가 기타를 연주하는 순간, 부산항은 단순한 항구가 아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담긴 무대가 되고, 바다가 건너온 수많은 사연들이 노래가 되어 흐른다.


그는 언젠가부터 ‘돌아와요 부산항에’만을 연주한다.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없다. 그 곡이야말로 부산을 가장 잘 표현하는 노래이며, 바다를 바라보는 이들의 심정을 가장 잘 대변하는 곡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는 물을 수도 있다.

왜 항상 같은 노래만을 연주하느냐고. 그에게 그 노래는 단순한 한 곡이 아니다. 그것은 그의 시간, 그의 인생, 그리고 그의 부산이다.


그의 기타는 낡고 닳았다. 한때는 반짝이는 나뭇결이 아름다웠을 그 기타는, 이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는 기타를 교체하지 않는다. 부서질 듯한 몸통을 반창고로 붙여가며, 그 기타를 끝까지 안고 간다.


고집이 아니다. 그것은 철학이다. 낡고 해진 것들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간직하며 함께하는 삶. 오래된 기타에서 흐르는 소리는 세월이 묻어난 소리다. 그에게 기타는 단순한 악기가 아니라, 삶의 일부다.


그의 연주는 결코 화려하지 않다. 기교를 부리지 않고, 과장된 퍼포먼스도 없다. 그의 손끝에서 울려 퍼지는 기타 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을 울린다.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진심의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는 거리에서 연주하지만, 그는 부산의 문화 전도사다. 한 곡의 노래 속에 담긴 시간과 정서, 바닷바람과 석양의 빛을 담아내며, 지나가는 이들에게 조용한 감동을 전한다.


언젠가 그가 사라지면, 아무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의 기타 소리는 여전히 부산항의 바람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는 위대한 예술가도, 유명한 음악가도 아니다. 그는 길 위의 철학자이며, 부산항이 품은 마지막 낭만객이다.


돈도, 명성도 아니다. 그가 남긴 것은 음악으로 전하는 위로, 그리고 오랜 시간 속에서도 변치 않는 부산의 낭만이다.


어느 날, 누군가가 그의 연주를 기억하며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때, 부산 자갈치 시장 후미진 곳에서 기타를 치던 할배가 있었지."


그 기억 하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청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모든 게 다 나 때문이라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