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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향한 선율 – 홍난파의 ‘고향생각’

김왕식











고향을 향한 선율 – 홍난파의 ‘고향생각’






어린 시절의 추억은 시간이 흘러도 잔잔한 멜로디처럼 가슴 한편에 남아 있다. 그리운 고향의 풍경과 그곳에 깃든 따스한 정서는 먼 곳에서도 우리의 마음을 감싸 안는다.
홍난파(洪蘭坡, 1898-1941) 선생의 '고향생각’은 그러한 정서를 선율에 담아낸 명곡으로, 단순한 회상의 차원을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적 귀속처인 ‘고향’을 깊이 있게 노래하고 있다.

이 곡은 서정적인 선율과 함께 한국인의 정서를 대표하는 곡으로 손꼽힌다. 홍난파 선생은 당시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적 아픔 속에서도 민족의 감정을 아름다운 음악으로 승화시키려 했다.
특히 ‘고향생각’은 애잔한 바이올린 선율로 시작하여 점점 절정을 향해 나아가는 흐름을 지닌다. 마치 멀리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처럼, 혹은 깊은 그리움을 담은 시인의 읊조림처럼 곡은 한없이 다정하고 부드럽다.

이 곡의 주된 정서는 ‘회귀(回歸)’와 ‘동경(憧憬)’이다. 단순한 고향의 모습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사랑, 그리고 잃어버린 시간 속으로 돌아가고 싶은 열망이 담겨 있다. 하지만 그리움은 곧 애틋함으로 변한다. 현실에서 돌아갈 수 없는 곳, 이제는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고향이기에 곡의 선율은 더욱 쓸쓸하고 애잔하다.

홍난파 선생의 음악 세계는 ‘서정성(抒情性)’과 ‘조화(調和)’에 기초한다. 서정성은 그의 곡이 한 편의 시처럼 감성을 자극하는 요소이며, 조화는 동양적 감수성과 서양적 음악 기법을 융합하는 방식에서 드러난다. ‘고향생각’에서도 이러한 두 요소는 명확히 나타난다. 한국적인 정서를 품으면서도 서양 음악의 형식을 절묘하게 조화시켜, 단순한 향토적 노래가 아닌 시대를 초월한 명곡으로 자리 잡았다.

홍난파 선생의 삶을 돌아보면, 그의 음악 철학은 단순한 미학적 아름다움을 넘어 민족과 예술을 연결하는 데 있었다. 그는 예술이 단순한 오락이나 개인적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민족의 감정을 담아내고 시대를 반영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의 대표곡들이 모두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의 음악 속에는 아픈 시대를 살아가며 한없이 그리운 곳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야 했던 이들의 정서가 녹아 있다. 단순한 슬픔이나 좌절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통한 승화의 과정이 들어 있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미의식은 ‘순수한 감정의 표출’과 ‘예술의 치유적 기능’이라는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그의 음악은 어쩌면 하나의 기도와도 같다. 전쟁과 식민지 시대의 고통 속에서도, 그는 음악으로 마음의 안식을 찾고자 했으며, 동시에 그의 선율을 듣는 이들도 그 안에서 위로받기를 바랐다. ‘고향생각’은 단순한 개인적 향수가 아니라, 시대를 살았던 모든 이들의 공통된 감정을 대신 울려주는 곡이었다.

홍난파 선생은 짧은 생을 살았지만, 그의 음악은 시대를 넘어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그의 선율 속에는 우리가 잊고 지냈던 감정들, 그리고 언젠가 돌아가고 싶은 마음의 고향이 담겨 있다. ‘고향생각’을 들을 때면, 우리 모두는 한 순간 어린 시절로 돌아가 순수했던 그때를 떠올린다. 그리고 비록 현실에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더라도, 음악을 통해 마음속 고향을 다시 찾을 수 있다.

그의 음악은 단순히 들리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가 남긴 유산은 우리의 감정을 어루만지는 하나의 따뜻한 손길이다. '고향생각’은 영원히 변치 않을 마음속의 고향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선율이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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