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
차 주전자
시인 백영호
주전자는 겸손을 담아
겸손을 따르고 있다
제 몸에 담긴
따뜻한 차 한 잔
고개를 숙이고
몸을 낮추어
기울어야 하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낮아져서 나눔이다
차 주전자에서
낮추어야 나오는 차 한 잔
겸손의 차, 주전자의 가치다.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ㅡ
백영호 시인의 시 '차 주전자'는 사물의 형상을 통해 삶의 본질을 되짚는 서정적 철학 시다. 시인은 차 주전자의 동작을 단순히 물리적 행위로 보지 않고, 그 안에 담긴 '겸손'과 '나눔'의 정신을 섬세히 포착한다. 주전자가 차를 따르기 위해 스스로 낮추는 자세는 타인을 위한 자기 비움이며, 마지막 한 방울까지 기울이는 행위는 끝까지 나눔을 실천하려는 존재의지다. 이러한 묘사는 백 시인의 삶의 태도와 철학, 즉 자연에 대한 깊은 사랑과 대상에 대한 존중에서 비롯된 것으로 읽힌다.
시의 전개는 간결하면서도 명확하다. "겸손을 담아 / 겸손을 따르고 있다"는 시적 화두를 통해 시의 주제를 제시하고, 주전자의 동작을 구체적인 이미지로 형상화함으로써 그 철학적 상징성을 부각한다. 독자는 시인의 시선을 따라가며, 사소해 보이는 일상 속 사물 하나에도 인간 삶의 도리가 스며 있음을 깨닫게 된다.
백영호 시인은 자연과 사물을 단순히 관찰하는 것을 넘어, 그 대상과 내면의 대화를 나누는 자세를 지닌 시인이다. 그의 시에는 강요 없는 교훈, 말없이 다가오는 울림이 있다.
이는 시인이 자연과 하나 되어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서 비롯된 미의식이자, 시의 깊이를 이루는 원천이다. '차 주전자'는 겸손한 삶의 모범이자, '낮춤'의 미학을 통해 진정한 나눔의 가치를 일깨우는 시적 문장으로 기억될 것이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