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
천사들이 머무는 시간
빙글빙글,
시간은 소용돌이치는 원무(圓舞)의 가장자리에서
발끝으로 세상을 밀어낸다.
작은 회전 하나에
생이, 꿈이, 내일이
사뿐히 실려 돌아간다.
두 팔을 하늘에 내미는 순간,
몸은 새의 기도를 닮아간다.
날개는 없지만,
의지 하나로 충분하다 믿는 이들—
폴짝, 땅과의 인연을 잠시 접고
공중으로 오르는 찰나,
그곳은 무중력의 성역.
찐찐 짠짠
현의 떨림 위로
꿈들이 튕겨 오른다.
바이올린은 공중에 꽃잎을 흩뿌리고,
그 꽃을 밟으며
소녀는 셋을 세고,
허공에 사뿐히 자국을 남긴다.
그녀는 묻지 않는다.
누가 보는지, 어디로 가는지.
그저 움직인다—
선율에 실려, 감정의 파도에 이끌려,
자신이 하나의 음표가 되기를 바라며.
드가의 화폭 속,
그 무희들은 빛의 조각이었다.
색으로 숨 쉬고, 붓질로 춤췄다.
그들의 움직임은 선이었고,
그 선은 곧 하늘로 향하는 사다리.
어쩌면 발레는
하늘을 닮고 싶은 땅의 욕망이다.
소녀는 그 욕망을 등에 지고,
천사들을 향해 도약한다.
땀으로 적신 날개라도 괜찮다.
단 한순간, 바람과 눈이 맞는다면.
춤은 기도다.
몸으로 짓는 언어,
마음이 하늘을 부르는 몸짓.
그렇게 오늘도
어느 무대 한켠,
작은 몸짓 하나가
천상의 문을 두드린다.
그리고 천사들은—
잠시, 그 문을 열어둔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