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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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채를 잡혀서라도
사랑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세상을 물들인다.
동틀 무렵의 햇살처럼, 빗방울에 젖은 흙내음처럼, 사랑은 다양한 존재 속에서 피어난다. 인간의 사랑, 동물의 사랑, 식물의 사랑, 심지어 말이 없는 돌의 사랑까지도. 강아지는 주인의 손길에 꼬리를 흔들고, 해바라기는 해를 따라 고개를 돌린다. 벼랑 끝에 선 바위는 말없이 바람을 맞으며 제자리를 지킨다.
그 모든 것 중에서도 인간의 사랑은 특별하다. 말로 표현되고, 눈빛으로 건네지며, 때로는 침묵 속에서도 진하게 스며드는 그것. 쌍방의 감정이 부딪히고, 포개지고, 때론 비틀리는 인간의 사랑은 향기를 낸다. 향기란, 사랑이 피워내는 가장 아름다운 증거다.
향기는 언제나 꽃에서만 나는 것이 아니다.
부패도, 지나침도 제 나름의 냄새를 낸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그 끝은 향기와 악취 어름을 오간다. 어떤 이는 그 사랑을 비장하게도, 해학적으로도 받아들인다. 한 작가는 이런 고백을 남겼다.
“유부남을 사랑하다가 본 부인에게 들켜 머리채를 잡혀 길바닥에 질질 끌려 다닌다 해도, 그런 사랑 한번 원 없이 해보고 싶다.”
그 말 한마디에 담긴 웃음과 눈물, 허세와 진심은, 우리 모두가 피하지 못하는 사랑의 단면을 보여준다. 사랑은 논리보다 앞서고, 도덕보다 깊으며, 이성보다 강한 감정이다. 그 감정이 낭떠러지를 향한다 해도, 그 끝에 선 사람은 결코 돌아서지 못한다.
이쯤 되면 묻게 된다.
이런 사랑은 위대한가, 아니면 질척한 불륜에 불과한가.
답은 없다.
사랑은 때로 정의를 초월하고, 평판을 무너뜨리며, 그저 존재 자체로 살아 숨 쉰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머리채 한 번쯤 잡혀보고 싶은 사랑을
가슴 어딘가에 숨기고 사는지도 모른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