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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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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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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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는 일제강점기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자유를 위해 온몸으로 저항한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다. 본명은 이원록이며, 1904년 안동에서 태어나 조선과 만주, 중국 등을 오가며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17차례의 투옥이라는 고난 속에서도 굴하지 않았으며, 1944년 베이징 일본 헌병대에서 고문 끝에 순국했다. 그의 시는 단순한 언어유희를 넘어서, 조국의 운명과 민족의 정신, 인간 존재의 숭고함을 진중하게 담고 있다.
그는 시를 통해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민족의 혼을 일깨우는 도구로 삼았다.
「광야」는 이육사의 삶과 철학, 그리고 미학이 집약된 불멸의 작품이다. 시인은 ‘하늘이 처음 열린 날’이라는 태초의 시공에서부터 출발하여, 대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민족과 인간의 운명을 노래한다. ‘닭 우는 소리’, ‘산맥’, ‘큰 강물’ 등 상징은 문명의 시작, 민족의 역동성, 그리고 미래로의 흐름을 암시한다. 시인의 시선은 개인의 고난을 넘어서 민족의 운명을 껴안고 있으며, 이는 그가 추구한 ‘시인의 존재론’이자 ‘역사의 주체로서의 삶’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라는 구절은, 자신의 시가 당장은 작고 미미할지라도 미래를 위한 초석임을 인식하고 있는 의지의 표현이다. 여기서 그의 가치철학은 명확해진다. 시는 삶의 장식이 아니라, 삶을 견디게 하는 정신의 뿌리이자 민족을 일깨우는 선구적 힘이다. 또한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은 단순한 영웅의 상징이 아니라, 민족의 구원과 회복을 알리는 메시아적 존재로, 시인은 그를 기다리며 ‘광야’에서 노래하는 자로 남는다.
이육사의 시 세계는 단단하고 깊다. 외형적으로는 함축적이지만, 그 내면에는 역사의식과 존재철학, 그리고 미래지향적 미의식이 녹아 있다. 그는 시를 통해 죽음을 초월하고, 사후에도 민족의 영혼을 깨우는 노래를 남겼다. 이육사의 시는 곧, 살기 위한 시가 아니라 살아 있음 그 자체로서의 시이며, 그 미학은 고통 속에서 피어난 절정의 순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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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를 걷는 자
ㅡ 이육사를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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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은 오늘도 해 질 무렵 달삼을 불러 앉혔다. 따스한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그들 사이엔 늘 한 사람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달삼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스승님, 오늘은 누구를 데려오셨나요? 또 한 시인을 불러냈죠?”
스승은 빙긋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래, 오늘은 이육사다.”
달삼은 익숙한 이름에 눈을 반짝였다.
“아, 그 ‘광야’ 쓴 사람! 백마 타고 오는 초인! 스승님도 그 초인 기다리시는 거 아니에요?”
“하하, 나야 이미 초인을 만났지. 네가 바로 그놈 아닌가?” 스승은 능청을 부리며 웃었고, 달삼은 손사래를 치며 붉어진 귀를 감췄다.
그렇게 그들은 시 ‘광야’의 첫 구절을 꺼내었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스승은 되뇌듯 읊었다. 그러자 달삼은 감탄을 흘렸다.
“무슨 창세기 같아요. 태초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 속에 내던져진 인간의 외침. 시작부터 범상치 않네요.”
스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육사의 시는 단순히 아름다움이나 슬픔을 말하는 게 아니란다. 그는 시를 통해 민족의 근원을 묻고, 인간 존재의 의미를 던졌다. 민족의 운명에 자신을 던졌던 시인이지.”
달삼은 이윽고 조금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그런데 스승님, 이육사… 좀 무서운 사람이기도 해요. 독립운동하다 감옥만 열일곱 번 갔고, 중국까지 넘어가다 결국 베이징에서 고문받고 죽었잖아요.”
스승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본명이 이원록.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기골도 장대하고 문무를 겸비했던 인물이었지. 조선의 현실을 뼛속까지 꿰뚫은 사람이기도 했고.”
“시 쓰는 무장투사네요. 멋지지만 살벌해요.”
“그에게 시는 무기였다. *‘절정’*에서는 죽음을 노래하면서도 생의 경이로움을 놓지 않았고, *‘청포도’*에서는 따뜻한 희망을 품었지.”
달삼은 고개를 끄덕이며 읊조렸다.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에 흰 옷 입은 그 사람 오신다 했으니…’ 그 구절 정말 좋아요. 뭔가 간절하면서도 정갈한 기다림이 느껴져요.”
“그는 날카롭되 따뜻했고, 투쟁하되 기다릴 줄 알았다. 칼과 꽃이 함께 피어난 시를 썼지.”
그러다 문득 달삼은 눈썹을 찌푸렸다.
“근데 스승님, 이육사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겠죠? 무정부주의 활동에, 조선일보에 글도 썼던데… 시대의 언행치고는 아이러니 아닌가요?”
스승은 그 질문을 들으며 미소를 지었다.
“날카로운 질문이구나, 달삼아. 시대를 살아간다는 건 늘 선택의 연속이지. 이육사도 젊은 시절엔 무정부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지만, 점차 민족주의와 문학적 실천의 길로 옮겨갔다. 언론 활동은 때로는 현실을 비틀어 진실을 말하는 방편이기도 하지. 그는 불의 속에서도 진실을 지키려 애쓴 사람이었단다.”
“그럼 ‘광야’에서 말하는 초인은 그런 혼란을 넘어서 피어난 이상 같은 거예요?”
“맞다. 그 초인은 단지 혁명가나 구세주가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타인을 구원할 수 있는 깨어 있는 인간이지. 이육사는 그 씨앗을 뿌리며 죽어갔다.”
“스승님, 저도 그런 씨앗이 될 수 있을까요?”
스승은 웃으며 말했다.
“달삼, 너는 이미 밤하늘에서 가장 밝은 달이 되어 있다. 오늘도 나를 흔들어 깨우는 질문을 던졌으니.”
달삼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떨구며 중얼거렸다.
“내일은 질문 안 할지도 몰라요. 또 그러다 칭찬받을까 봐.”
그러자 스승은 웃으며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럼 내가 다시 묻겠다. 달삼아,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렸을 때, 너는 어디 있었느냐?”
달삼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저는요… 광야에서 스승님을 찾고 있었어요.”
스승은 말없이 웃었다.
광야의 끝자락에서,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시는 오늘도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지금, 어떤 씨를 뿌리고 있느냐?”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