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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 서시(序詩)

김왕식







윤동주 - 서시(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서시」는 윤동주의 내면세계와 시세계 전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일제 강점기라는 억압의 시대 속에서도 그는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는 단지 윤리적 도덕성을 넘어서, 존재의 근본을 정직하게 응시하고자 한 실존적 결단이다. 외부의 강요에 굴하지 않고 내면의 양심을 붙잡고자 한 시인의 삶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저항이었다.

시의 중심에는 ‘자기 성찰’과 ‘순수 지향’이 자리 잡고 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는 고백은 일상의 미세한 떨림에도 윤리적 감각이 반응하는 섬세한 자아를 드러낸다. 이처럼 그의 시는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사랑으로 감싸 안으려는 태도를 유지한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구절은 생명에 대한 전일적인 긍정을,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의 길을 걸어가겠다는 결의는 순명(順命)의 정신을 반영한다.

윤동주의 미의식은 소박하면서도 숭고하다. 화려한 수사나 기교 없이, 투명하고 정갈한 언어로 깊은 고뇌를 드러낸다. 특히 “별”과 “바람”이라는 이미지가 반복되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는 시적 자아의 태도를 상징하는데, 이는 곧 동양적 무위의 미학과도 통한다. 시는 현실의 무게를 넘어선 자리에서 침묵과 사유로 승화되며, 고요한 울림을 남긴다.

요컨대, 「서시」는 윤동주의 존재 철학, 즉 순수한 양심에 충실하며 고통받는 세계를 향한 사랑을 실천하고자 하는 삶의 태도와, 이러한 정신을 담아낸 절제된 미학이 정수로 드러나는 시이다. 윤동주의 모든 시편은 이 첫 시의 다짐을 반복하고 확장해 나간 여정이었으며, 그가 짧은 생애 동안 일관되게 지켜낸 '부끄러움 없는 시인의 길'이었다.




■□

스승과 달삼의 문학 산책
– 윤동주 「서시」 편




늦은 봄날, 달삼은 평소보다 진지한 얼굴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펼쳐 들었다. 연두색 잎새가 바람에 살랑이고, 멀리서 뻐꾸기 울음이 들려왔다. 그는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기며 말했다.

“스승님,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읽으면요… 무릎 꿇고 시를 읽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스승은 슬며시 눈썹을 추켜올렸다. “무릎 꿇고 싶다니, 진심이구나. 그런데 말입니다… 라니, 뭔가 걸리는 게 있나 보구나?”

달삼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이 구절요. 어디서 많이 본 느낌이 들었는데, 혹시 맹자의 군자삼락에서 따온 건 아닐까요? 군자가 세 가지 즐거움 중 하나가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음’이라 하잖아요?”

스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날카롭구나. 맞다, 그런 지적이 있지. 일부 평론가들은 이 대목이 맹자의 사상을 변형한 것이고, 창의성 면에서 의문을 제기하기도 해. 하지만 중요한 건 그 말을 자기 시대의 말로 얼마나 절실하게 새긴 것이냐는 거야. 윤동주는 맹자의 말을 빌렸을지언정, 그 말에 자기 피를 섞었지.”

달삼은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입을 다물지 않았다. “그런데요, 스승님. 윤동주 시인은 조국을 사랑했는데, 정작 적국인 일본으로 유학을 갔잖아요. 교토 도시샤 대학… 게다가 일본인 교수에게 배웠다면서요. 일제에 맞서 싸운 시인이라면, 그건 좀 이상하지 않나요?”

스승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런 의문, 충분히 가질 수 있다. 실제로 이육사 같은 시인은 옥고를 치르며 항일운동에 몸을 던졌지. 하지만 윤동주는 내면의 저항을 택했단다. 그는 폭력 앞에 폭력으로 맞서기보다, 말과 양심으로 저항하고자 했어. 일본 땅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꺾지 않고, 끝까지 조선어로 시를 썼다는 점을 기억해야지.”

달삼은 턱을 괴며 중얼거렸다. “겉으론 조용히 살았지만, 안쪽에선 끓고 있었던 거군요.”

스승은 이어 말했다. “그래서 윤동주의 ‘자화상’을 보면, 그 깊은 자책과 고독이 느껴지지. ‘우물 속의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누구를 향하여 나는 이렇게도 외롭고 쓸쓸하냐’는 고백은, 자기를 향한 가차 없는 응시야.”

“음… 그런데 서정주의 ‘자화상’은 또 다른 느낌이던데요. 자기를 꽤나 멋있게 그리더라고요. 마치 전통의 한가운데 서 있는 기품 있는 사내처럼.”

스승은 웃었다. “정확히 보았구나. 서정주는 자기를 역사와 전통 속에 위치시키는 반면, 윤동주는 철저히 고독한 현대인의 얼굴을 그리고 있지. 그래서 윤동주의 자화상은 더 아프고, 더 진실하게 다가오는 거야.”

달삼은 조금 더 책장을 넘기다 ‘쉽게 씌어진 시’를 가리켰다. “이 시는 제목부터 너무 솔직해요. 실제로도 쉽게 썼을까요?”

스승은 조용히 말했다. “아니란다. ‘쉽게 씌어진 시’는 오히려 가장 쓰기 어려운 시였지. 자기 언어로 시를 쓰며, 조국의 말이 아닌 일본어를 써야 하는 현실에서 그는 죄의식을 느꼈어. 그래서 ‘쉽게 씌어졌다고 생각하는 이 시가 부끄럽다’고 고백하지. 윤동주는 늘 자신을 먼저 반성했단다.”

달삼은 책을 덮으며 말했다. “스승님, 윤동주 시는 그냥 ‘좋다’가 아니라… ‘살아야겠다’는 느낌이 들어요. 말이 너무 조용한데, 마음을 흔들어요.”

스승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 그는 외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크게 들린 사람이지. 그러니 너도 시를 쓸 때, 세상에 외치려 하기보다, 자신에게 먼저 속삭여보렴. 그 작은 속삭임이 세상을 흔드는 노래가 될 테니까.”

달삼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음, 저는 이제부터 별을 노래하되… 괜히 바람에 괴로워도 할 말 없는 사람이 되어야겠어요. 윤동주 따라 하려면, 한참 괴로워야겠네요!”

스승은 웃으며 말했다. “달삼답다. 괴로움도 노래도 진심이면, 그건 이미 윤동주적 시의 시작이지.”

그리고 그날 밤, 달삼의 창문을 스쳐간 바람 속에는 한 점 부끄러움 없는 별 하나가 조용히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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