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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등짝, 그 따뜻한 교과서

김왕식








어머니의 등짝, 그 따뜻한 교과서


김왕식


요즘 아이들은 회초리를 모른다.

맞으면 상처가 될까, 마음이 다칠까, 우리는 조심스럽다.

우리의 어머니는 달랐다. 말보다 손이 먼저 나갔고, 그 손끝에 밥 짓던 온기가 남아 있었다. 그 등짝 스매싱엔 미움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장 사랑이 깊었던 교과서 한 페이지였다.

등짝보다 마음이 먼저 아팠던 그 사랑을 오늘 꺼내 본다.



“맞을 짓을 했으니까 맞았지.” 어린 시절,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무릎 꿇고 있는 자식 앞에서 눈물 흘리던 어머니. 그리고 뒤돌아 나가며 가슴을 쓸어내리던 아버지. 그 모습은 꾸중이 아닌 눈물 섞인 기도였다.

우리는 그렇게 자랐다. 매질은 있었지만 폭력은 없었다. 감정이 아닌, 인생을 일깨우는 훈육이었다. 옆집 아이가 더 좋은 장난감을 가졌다고 떼를 썼을 때, 어머니는 회초리를 들며 말씀하셨다. “남의 물건 부러워 마라. 우리 것에도 정을 담아라.”
그 순간, 회초리는 철학책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의 등짝은 정의로웠다. 싸움을 했을 때는 잘잘못을 먼저 따졌고, 이유 없이 울기만 하면 어깨를 먼저 안아주셨다. 그리고 뒷산에 올라가 나무 가지 하나 꺾어오게 하셨다.
그 한 줄기 나뭇가지에 담긴 뜻은 단순한 징계가 아니었다. 스스로 책임을 지는 법, 잘못을 돌아보는 자세, 그리고 사랑을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회초리를 맞고 자라난 세대는 정직했다. 아픔으로 배운 건 고통이 아니라, 참을성과 배려였다. 우리 어머니들은 학문은 몰라도 삶의 지혜에선 누구보다 뛰어났다. 국어책에 없는 말, 도덕책에 나오지 않는 마음을 행동으로 가르쳤다.

“말 잘 듣거라”는 짧은 말 뒤엔 온 삶이 있었다. 그것이 인문학이었다. 아플 때마다 끓여주신 미역국, 새벽마다 김을 매다 굽은 허리, 그리고 묵묵히 나를 바라보던 뒷모습. 그 모든 것이 우리 세대의 ‘등짝 교과서’였다.


그 시절 어머니의 등짝에는 삶의 정의가 있었고, 그 손에는 사랑이 머물렀다. 지금은 그런 훈육이 사라졌지만, 그 가르침의 온기는 마음 깊숙이 남아 있다. 우리는 그 사랑 덕분에 사람으로 자랐고, 세상을 살아냈다. 오늘도 그 손길이 그립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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