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삼국지 노숙
삼국지 4ㅡ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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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과 함께 떠나는 삼국지 여행
제4ㅡ4회.
강동 손권과 유비의 밀약
― 적을 함께 막은 뒤, 친구가 되어야 할까, 경쟁자가 되어야 할까
적벽대전 이후 조조는 북으로 퇴각했고, 장강 이남은 일시적인 평화를 되찾았다. 그러나 승전의 기쁨도 잠시, 유비와 손권 사이에 미묘한 긴장이 감돌기 시작했다. 공동의 적 앞에서 힘을 합쳤던 두 세력은, 조조가 물러난 자리를 두고 각자의 명분을 꺼내 들기 시작한 것이다.
형주는 그 갈등의 중심에 있었다. 원래 유표의 땅이었으나 조조가 점령했다가 적벽 패배로 물러서며, 이젠 사실상 주인이 사라진 땅이 되었다. 손권은 형주가 오나라의 방패라고 주장했고, 유비는 자신이 유표의 의지를 잇는 황실 후손이자 백성들과 함께 이 땅을 지켰다며 소유권을 주장했다.
두 진영은 전면 충돌을 피했지만, 긴장감은 깊어졌다. 이때 제갈량과 노숙은 각각 유비와 손권의 사자로서 ‘전쟁 없는 공존’을 위한 접촉을 시도한다. 그 접점에서 나온 것이 바로 ‘형주 분할’과 ‘전략적 동맹’이라는 밀약이다.
손권은 형주 일부를 유비에게 양도하고, 유비는 그 대가로 익주 공략 이후 형주를 반환하겠다고 약속한다. 제갈량은 이를 “적은 아직 건재하고, 지금은 국경선이 아니라 대의를 볼 때”라며 설득했고, 노숙 역시 손권에게 “형주는 일시적 유예일 뿐, 촉과 오가 살아남는 길”이라 조언했다.
그 결과, 유비는 형주 일부를 얻고, 손권은 전면 충돌을 피한다. 이 ‘형주 밀약’은 삼국이 나란히 서게 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된다. 이후 유비는 형주를 기반으로 익주 정벌을 준비하고, 손권은 내정을 다지며 장강 동쪽의 방어를 굳힌다.
표면적으론 협력, 내면적으론 견제. 그들의 관계는 불안한 우정이었다. 그러나 이 불안한 동맹이야말로, 조조라는 거대한 위협을 상대로 버틸 수 있었던 현실적 지혜였다.
이날 이후 유비는 손권과 ‘사이좋은 경쟁자’가 되었고, 삼국은 명확한 구도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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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ㅡ4회 삼국지 평
ㅡ강동 손권과 유비의 밀약
■ 등장인물 특징
손권(孫權)
어린 시절부터 정치를 익힌 강동의 후계자. 겉으론 젊지만 결단과 유연성을 겸비한 리더. 형주의 주도권을 놓고 유비와 갈등했지만, 전면전 대신 타협을 택한다. 강한 척하지만 내면은 현실을 보는 지혜로 채워져 있다.
유비(劉備)
형주의 백성과 함께 도망치고 다시 돌아와 자리를 잡은 황실 후손. 그는 명분을 기반으로 손권을 설득했고, 실리를 추구하되 신의를 잃지 않으려 했다. 이 회차에서 유비는 단지 착한 리더가 아니라, 전략적 균형을 읽는 정치가로 그려진다.
노숙(魯肅)
손권 진영의 문사이자 중재자. 전쟁이 아닌 동맹을 선택하도록 손권을 설득한 실질적 중재자. 그는 단순한 책사가 아니라, 전후를 내다보는 정무의 브레인으로, 유비와 손권의 균형점을 만들어낸 숨은 영웅이다.
■ 현대 우리에게 주는 긍정적 교훈
이 회는 ‘공동의 위협 앞에서 경쟁자와 협력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유비와 손권은 결코 같은 꿈을 꾸지 않았지만, 조조라는 위협 앞에서 잠시 손을 잡는다. 그리고 그 손을 오래 잡기 위해, 서로의 신뢰와 이익을 맞추는 협상을 시도한다. 오늘날 조직, 국가, 사회 모두 경쟁과 협력이 혼재하는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중요한 건 전면전이 아니라, 동반 가능성이다. 형주 밀약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지금 필요한 건 완전한 우정이 아니라, 불완전하지만 현실적인 균형이다. 손권의 유연함, 유비의 명분, 노숙의 설득—이 셋이 만들어낸 협력의 형식은 오늘날 협상의 예술이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 삼국지 내용에서 아쉬운 점
형주 밀약은 삼국 균형의 출발점이지만, 삼국지 원전에서는 이 사건이 정치적 갈등보다 단순한 사정 교섭으로 축소되어 있다. 손권의 복잡한 심리, 유비의 현실적 고민, 제갈량과 노숙 간의 철학적 대화 등은 간결하게 흐른다. 문학적으로 보자면, 이 장면은 외교 드라마의 정점이 될 수 있었으나, 실제론 전략적 타협의 장면으로만 그려진다. 또한 유비와 손권 사이의 우정과 경계가 뒤섞인 묘사는 정서적 설득력이 부족하고, 협상 이후의 여운—즉 밀약의 유효성이나 파기의 암시 등도 문학적으로 심화되지 못했다. 삼국의 갈림길에 선 이 장면이 더 입체적으로 구성되었더라면, 협상이라는 정치의 예술이 보다 긴 여운으로 남았을 것이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