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삼국지 주유
삼국지 4ㅡ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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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과 함께 떠나는 삼국지 여행
제4ㅡ3회
적벽대전, 불길에 무너진 천하의 야망
― 바람과 불, 그리고 사람의 마음이 만든 승리
조조는 북방을 통일하고, 형주를 단숨에 평정한 기세로 남하해 장강을 앞에 두고 섰다. 손권과 유비의 연합군은 그 장강 남쪽, 적벽에 진을 친다. 한편 조조는 수십만 대군을 앞세우고도 자신만만했다. 수전에 익숙하지 않은 병사들과 전염병으로 전열은 흐트러지고 있었지만, 그는 이를 가볍게 여겼다.
“수전에 능한 자가 따로 있겠는가? 물도 내 군의 앞에서는 길이 될 뿐이다.” 조조는 그렇게 말했지만, 실제 병사들의 사기는 낮았고, 낯선 지형과 기후는 북방군의 약점이었다.
이 와중에 주유는 제갈량과 함께 결정적 전략을 구상한다. 바로 ‘화공(火攻)’이었다. 조조군은 장강 위에 수백 척의 전선을 서로 쇠사슬로 묶어 진영을 구축해 놓았다. 이는 강풍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였으나, 동시에 불이 붙었을 때는 연쇄 화재로 번지기 쉬운 구조였다.
바람은 북서풍이 아닌 동남풍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는 제갈량이 천문을 읽고 예견한 변화였다. 그는 주유에게 “불은 바람이 도우면 창공을 타고 적의 심장까지 들어갑니다. 이제 하늘이 우리 편입니다”라며 결정적인 순간을 알린다.
주유는 가짜 항복서를 조조에게 보내고, 화공선을 은밀히 준비한다. 황개의 항복을 받아들인 조조는 오히려 내심 기뻐했다. 그는 적이 흔들리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 배에는 불이 숨겨져 있었다. 그날 밤, 동남풍이 강하게 불기 시작하자, 황개의 배는 조조의 선단 깊숙이 진입했고, 곧이어 불을 질렀다.
불길은 묶여 있던 조조의 전함 전체로 순식간에 번졌고, 화염과 함께 포성이 울렸다. 조조의 대군은 불바다 속에서 허둥댔고, 병사들은 강물에 몸을 던졌다. 혼란 속에서 수많은 장수가 전사하거나 퇴각했다.
조조는 간신히 살아남아 도주한다. 그가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왔지만, 단 하나의 실책—자만과 수전에 대한 무지—그리고 바람을 읽은 적의 지략 앞에서 무너졌다.
그리하여 적벽대전은 단순한 전투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지혜와 하늘의 뜻, 그리고 불타는 열망이 만들어낸 전설이었다.
조조는 처음으로, ‘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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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ㅡ3회 삼국지 평
ㅡ적벽대전, 불길에 무너진 천하의 야망
■ 등장인물 특징
주유(周瑜)
젊고 패기 있는 장군. 군사적 결단력과 전략적 통찰을 함께 지녔으며, 제갈량과 협력하면서도 자존을 지켰다. 감정은 있었지만 공과 사를 구분했고, 불이라는 자연을 병법 안에 꿰뚫어 넣은 인물. 전장의 예술가라 할 만하다.
제갈량(諸葛亮)
천문을 읽고, 바람을 기다린 자. 싸우지 않고 이기는 길을 찾는 자로서, 적벽의 승리를 단지 전략이 아닌 ‘운명과 예지의 합’으로 이끈다. 그는 사람의 싸움에 자연을 더해, 전장을 철학의 장으로 바꾼다.
조조(曹操)
수많은 승리로 자신을 믿게 되었으나, 그 믿음이 자만으로 변하며 패배를 불렀다. 그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늘과 사람, 자연의 균형을 잃었기에 무너졌다. 천재였지만, 때로 천재는 가장 큰 실수를 한다.
■ 현대 우리에게 주는 긍정적 교훈
적벽대전은 힘과 자원의 싸움이 아니라, 오만과 겸손의 싸움이었다. 조조는 모든 것을 가졌지만, 하늘과 사람의 마음을 잃었다. 반면 주유와 제갈량은 물리적 열세 속에서도 자연과 민심, 그리고 전략을 하나로 엮었다. 오늘날의 조직과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타이밍과 환경을 무시하면 무너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적을 얕보지 않는 마음’이다. 조조는 조롱했고, 주유는 예측했고, 제갈량은 기다렸다. 리더는 돌파보다 읽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 회는 묻는다. 당신은 바람을 기다릴 줄 아는가? 불을 피우기보다, 불을 움직일 줄 아는가?
■ 삼국지 내용에서 아쉬운 점
적벽대전은 삼국지에서 가장 극적인 승부 중 하나지만, 서사 구조는 전투의 결과 중심으로 흘러가며 그 과정의 섬세함이 부족하다. 조조의 수군 훈련 미숙, 전염병으로 인한 병사의 불안, 내부 장수들의 불만 등이 사건 묘사보다 사실 전달에 치우쳐 있어 긴장감이 약화된다. 또한 제갈량과 주유의 관계도 협력인가 경쟁인가에 대한 심리 묘사가 부족해 입체성이 떨어진다. 불 하나로 승부가 결정되었지만, 그 불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심리적·지정학적 복합성이 문학적으로 더 살아났더라면, 단순한 전승이 아닌, 숙성된 운명으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