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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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운전사의 목소리로 본 서민경제의 현주소
안최호
나는 트럭운전사다.
도로 위를 달리며 공장으로, 물류센터로, 시장 골목으로 생필품과 산업자재를 실어 나른다. 그런데 요즘은 그 길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목적지가 사라지고 있어서다. 일이 없다. 물건이 없다. 거래가 끊겼다. 공장은 멈췄고, 물류센터는 한산하며, 소규모 자영업자는 문을 닫았다. 굳게 닫힌 셔터 너머에는 무언가가 고요하게 무너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불경기의 현상이 아니다. 산업의 흐름이 아니라 민생의 숨소리가 멎는 현장이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은 실업이 아니라 ‘무직의 연쇄’, 곧 연쇄부도다. 원청이 멈추면 협력업체는 문을 닫고, 그 여파는 또 다른 하청으로 번진다. 그렇게 한 줄기 거래의 끈이 풀리면, 그 끝에 있는 노동자는 일거리를 잃는다. 그 노동자 중 하나가 나다.
원인은 많다. 국제경기 불황, 물가 상승, 고금리, 인플레이션, 수출 둔화 등 경제의 사정은 복잡하다. 하지만 나 같은 서민이 가장 실감하는 건 정치의 혼란이다. 온 나라가 정쟁에 몰두해 있고, 뉴스에 나오는 건 다 여야의 싸움뿐이다. 민생은 늘 “나중”이다. 선거철만 되면 “경제를 살리겠다”며 외치는 공약이 넘치지만, 선거가 끝나면 그 공약은 스스로도 기억하지 못하는 공허한 약속이 된다.
지도자들의 얼굴이 매번 바뀌어도, 실상은 하나도 나아지지 않는다. 바뀐 건 얼굴뿐이고, 경제에 대한 철학도, 실력도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도대체 이 사람들 중 누구 하나라도 경제를 진짜 아는가?”라는 의문마저 든다. 세금은 오르고 규제는 복잡해지는데,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다. 전문가랍시고 앉아 있는 이들은 숫자놀음에만 능할 뿐, 서민의 삶을 단 한 번이라도 체험해 본 이가 없다.
차라리 운전석 위에서 보는 세상이 더 정확하다. 국도 위에서 본 불 꺼진 공장의 굴뚝, 비어 있는 컨테이너, 밤에도 켜지지 않는 물류창고의 불빛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게 바로 현실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정치인의 말과는 정반대의 진실이다.
서민의 삶이 무너지고 있다. 혼자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줄줄이 도미노처럼 무너진다. 그 속도를 막을 수 있는 이는 누구인가. 정치란 국민을 대신해 말하고 움직이는 일인데, 지금의 정치가 우리를 대신하고 있는가? 나 같은 사람의 목소리를 듣기나 하는가?
이 나라를 달리는 건 고속철도만이 아니다. 내 트럭도 달려야, 공장도, 상인도, 국민도 함께 굴러간다. 그 바퀴가 멈추면, 대한민국도 멈춘다. 정치인은 말 대신, 발로 현장을 뛰고, 책상이 아닌 땀냄새 속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다시 시동을 걸 수 있다.
다시 출발할 수 있다.
그날이 어서 오기를, 이 운전사는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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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운전사 안최호의 ‘도로 위 철학’에 담긴 서민의 진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 글은 단순한 하소연이 아니다. 그것은 한 명의 트럭운전사가, 조국의 산업과 정치를 통찰한 고요한 선언문이자, 굴뚝 없는 민심 보고서다. 작가 안최호는 ‘도로’라는 은유 위에 무너지는 경제의 실체를 실감 나게 펼쳐낸다. 이 글에서 도로는 단순한 길이 아니라, 민생의 혈관이며 국가 시스템의 생명선이다. “이 나라를 달리는 건 고속철도만이 아니다. 내 트럭도 달려야 한다”는 한 문장은 탁월한 메타포이자, 오늘날 대한민국이 놓치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품고 있다.
그는 조용히 말하지만, 그 속엔 분노와 절망이 동시에 흐른다. 단어마다 묻어나는 고단한 삶의 질감은, 통계로는 절대 잡히지 않는 '현장의 목소리'다. 불 꺼진 공장의 굴뚝과 켜지지 않는 물류센터의 불빛은 오늘날 서민경제가 처한 ‘빛의 부재’를 상징한다. 이보다 명확한 메타포가 또 있을까. 그가 말하듯 지금 정치의 언어는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정치란 국민을 대신해 움직이는 일”이라는 문장은, 이 글 전체의 윤리적 중심축으로 기능한다.
이 글이 지닌 가장 강력한 미덕은 진실의 방향을 ‘운전석’에서 본다는 점이다. 그의 눈높이는 낮고, 그 낮음은 곧 가장 높은 곳을 꿰뚫는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정책이 아니라, 아래에서 밀어 올리는 생존의 언어는 다르다. 안최호는 말한다. “정치는 현장에 있어야 한다.” 그것은 한 트럭운전사가 품은 단순한 외침이 아니라, 시대의 양심이 던지는 질문이다.
“민생이 멈추면 국정도 멈춘다.”
이 한 줄은 그 어떤 공약보다 묵직하며, 메마른 경제 담론을 꿰뚫는 살아 있는 어록이다.
그리하여 이 글은 단지 한 사람의 절규가 아니다.
그것은 길 위에서 쓴 국가 보고서이며,
쇠붙이 페달 위에서 적어 내려간 철학서다.
기억하라. 대한민국은 여전히, 트럭이 달릴 때 살아 있는 나라다.
그리고 그 바퀴를 멈추게 한 것은 결코 서민이 아니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