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얻어먹으며 ㅡ 시인 정순영

김왕식






밥을 얻어먹으며



시인 정순영




복지회관 강당에서
흑보기 눈을 뜬 자가 단상을 치니
팔/자 입을 한 군중이 박수를 친다.


짐이 법이다
짐에 박수를 치는지
법에 박수를 치는지


나는 바담 풍風 해도
너는 바담 풍風 해라


짐이 물러가라만 배워서 아는 게 물러가라 뿐이니
거짓말하다가 거짓말이 참말인출 알고
백성에게 참말을 하니
하늘이 찌푸려 백성의 허리가 아프고
양심에 억제받지 않는 위대한 지도자 짐은 법이니
법을 어기는 자는 복지를 받지 못하는 나라의
복지회관에서 밥을 얻어먹는다




정순영 시인

1974년 <풀과 별> 등단. 시집 <침묵보다 더 낮은 목소리> 등 8권. 부산문학상, 봉생문화상 문학부문, 여산문학상, 현대문학 100주년 기념문학상, 한국시학상 등 수상. 부산시인협회 회장, 국제 pen한국본부 부이사장,
동명대 총장, 세종대학교 석좌교수 역임






눈칫밥의 시대, 시가 말하는 진실의 용기
— 정순영의 「밥을 얻어먹으며」를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정순영 시인의 시 「밥을 얻어먹으며」는 시를 가장 날카로운 무기로 삼아 시대의 부끄러움을 찌르는 ‘공공의 언어’다. 밥상 앞에서조차 눈치를 보아야 하는 시대, 세금으로 지어진 복지회관에서 국민이 국민의 밥을 먹는 것이 ‘감사’가 아닌 ‘굴욕’이 되는 아이러니를, 시인은 ‘눈 흘김’이라는 하나의 행위로 묘사하며 치열한 현실 인식을 드러낸다.

첫 연에서 “흑보기 눈을 뜬 자가 단상을 치니”라는 구절은 이미 시의 전반적 분위기를 결정짓는다. ‘흑보기’는 단순한 ‘편시’가 아니라 권력자가 민중을 향해 흘겨보는 뉘앙스를 지닌 상징어다.
거기서 ‘단상’은 권력을 의미하고, ‘팔자 입을 한 군중’은 복종에 익숙해진 무기력한 대중을 암시한다. 시인은 여기서 ‘박수’라는 행위가 자발성이 아닌 강요된 환호임을 강조하며, 집단의 왜곡된 감정이 권력의 압력 속에서 어떻게 연출되는지를 통렬히 비판한다.

“짐이 법이다”라는 선언은 단순한 말놀이가 아니라, 권력자의 정신적 구조를 압축한 문장이다. 이 짧은 한 줄에 담긴 어조는 독재적 권위의 허위를, 동시에 그 허위를 향해 복종을 강요받는 민중의 모순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나는 바담 풍 해도 너는 바담 풍 해라”는 문장은 혀 짧은 권력자의 언어가 진실로 둔갑하고, 그 언어를 곧이곧대로 따르도록 세뇌당한 백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풍자적 문장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보다 익숙한 왜곡에 순응하는 현실을 절묘하게 담아낸다.

시인의 가장 날카로운 비수는 3연에서 드러난다. “거짓말하다가 거짓말이 참말인 줄 알고 / 백성에게 참말을 하니 / 하늘이 찌푸려 백성의 허리가 아프고”라는 진술은, 현실과 진실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깊은지를 말한다.
허위가 반복되면 진실이 되고, 그 진실을 마침내 백성에게 강요하는 순간, 공동체 전체가 왜곡된 윤리 속에 파묻힌다. 하늘이 찌푸린다는 구절은 더 이상 자연이 편안하지 않음을 상징한다. 윤리가 흐려진 사회는 하늘조차 등을 돌린다는 경고다.

“법을 어기는 자는 복지를 받지 못하는 나라의 / 복지회관에서 밥을 얻어먹는다”는 종결부는, 우리 사회의 가장 깊은 모순을 적시한다. 복지는 권력의 선심이 아니라 국민의 권리다. 시인은 이 권리가 왜곡된 구조 속에서 통제되고 있음을 비판한다. 복지는 특정한 가치나 충성의 대가가 아니라, 모든 국민이 마땅히 누려야 할 몫이어야 한다.
허나 권력의 시선은 그것조차 정치화시키고, 그 위에서 ‘눈칫밥’이라는 굴욕의 식탁을 차린다.

정순영 작가 시의 미학은 단지 현실의 묘사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시는 불의 앞에서 침묵하지 않는 정직한 문장, 그리고 권력 앞에서 시를 무기로 드는 양심의 언어다. ‘밥을 얻어먹는’ 일상에서조차 이토록 많은 메시지를 담아낼 수 있는 이유는, 시인이 밥보다 언어를 믿고, 생존보다 존엄을 먼저 보는 사람의 시선을 지녔기 때문이다.

“짐이 법이다”라는 한 문장 앞에서, 시인은 조용히 ‘진실이 밥이 되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바담’이라 말하더라도, 그것이 ‘바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아는 이들이 아직 남아 있기에, 시인은 쓴다. 눈 흘김 받으며 밥을 먹는 이들이 아닌, 당당히 밥상 앞에 앉아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의 시대를 위해.

정순영 시인의 이 시는 오늘, 그리고 내일 우리에게 묻는다.
“그대는 지금, 어떤 밥을 먹고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시는 결코 침묵하지 않는다.



ㅡ 청람 김왕식

정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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