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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에르토 리코에서 이안수 작가님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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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람 선생님,
어쩌면 이리도 삶의 고봉과 깊은 계곡의 모든 결들을 아울러 나아갈 좌표를 속삭임으로 전해주시는지요.
선생님의 정화된 시적 행간들 속에서 계류에 마음을 씻는 상쾌함이 전해집니다.
저희는 도미니카공화국에서 푸에르토 리코로 넘어와 길 위의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며칠간 인터넷이 되지 않는 구간을 통과하느라 노트북을 열지 못했습니다. 오늘에야 와이파이가 가능한 곳에 당도해 노트북을 여니 청람선생님의 시리도록 마음을 깨우는 글을 읽는 호사를 누립니다.
저희는 남루한 차림으로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며 청람선생님의 성찰을 길잡이 삼겠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_Puerto Rico, Mayagüez에서 사랑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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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바다를 넘는 이에게
― 푸에르토리코에서 전해온 안부에 부쳐
김왕식
이안수 작가님,
푸에르토리코 마야궤스의 바람을 타고 날아든 귀한 소식, 조심스레 펼쳐 읽으며 마음이 가만히 물결처럼 흔들립니다. 낯선 대륙을 떠돌며도 문장 하나에 마음을 놓고, 인터넷이 닿지 않는 구간에서도 말 없는 침묵으로 삶을 수련하시는 여정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는 그 길이란 얼마나 내면의 중심을 단단히 붙잡아야 가능한 걸음일까요.
그런 노정 속에서도 저의 짧은 문장 몇 줄에 숨을 고르고, 마음을 씻고, 다시 길을 이어가시겠다는 말씀에, 외려 제가 더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말씀대로 삶이란 결코 평탄하거나 단순하지 않으며, 때론 고봉을 만나 땀을 쏟고, 때론 계곡에 멈춰 흐르는 물에 마음을 헹구어야 하는 여정이겠지요.
그러나 그 노정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남루할지라도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발걸음 그 자체라고 저는 믿습니다.
도미니카에서 푸에르토리코로 이어진 그 노정은 단지 지리의 이동이 아니라, 존재의 갱신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이안수 작가님은 ‘쓰는 사람’이기 이전에, ‘살아내는 사람’으로서, 문장 이전에 몸과 마음으로 인생을 짓고 계십니다. 제가 그 앞에서 차마 감히 가르칠 수 있는 이는 아니오나, 멀리서 마음을 보탤 수는 있겠습니다.
길 위의 삶은 매 순간 선택의 연속이지만, 동시에 ‘놓아버림’의 훈련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자주 떠올립니다. 짐을 줄이고, 목적을 가볍게 하고, 말조차 덜어내는 과정 속에서 오히려 내면은 더 깊어지고 단단해지는 법이지요.
아마 작가님도 그 순례의 무게와 해방을 동시에 체감하고 계시리라 여겨집니다.
혹 이따금 거센 바람에 피곤해질 때, 낯선 곳의 그림자 앞에 마음이 움츠러들 때,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누군가는 여전히 당신의 발자취를 마음으로 따라가며, 그 여정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요. 그 믿음 하나가 먼 이국의 해안에도 조용한 등불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야궤스의 밤이 따뜻하길, 작가님의 마음이 더욱 자유롭길, 이 여행이 단지 지나침이 아닌 내면에 기록되는 오래된 한 장의 시가 되길 기도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쓰고 계시다는 것만으로 이미 이 세상은 조금 더 아름다워집니다.
지금 그곳의 하늘빛과 파도 소리를 상상하며,
서울의 한 귀퉁이에서 조용히 응원의 문장을 전합니다.
― 청람 김왕식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