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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 『변신』에 대한 총평 ㅡ 청람 김왕식

김왕식


카프카 변신


■ 문장의 어둠 속에서, 인간의 형상을 보다
― 프란츠 카프카 『변신』에 대한 총평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는 해충이 되어 있었다. 세상이 가장 짧게 요약한 비극이자, 가장 길게 이어지는 인간의 질문이다. 카프카의 『변신』은 소설이라기보다 문학이라는 형식의 경계를 시험한 철학적 사건이며, 그 어둠 속에서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윤곽을 거꾸로 더 또렷이 보게 된다.

그러나 이 작품을 두고 세상은 너무도 많은 해석을 덧입혀왔다. 실존주의, 자본주의, 가족 윤리, 현대인의 소외… 수많은 이름과 정의가 그레고르의 등에 달라붙은 또 하나의 껍질이 되었지만, 정작 아무도 그의 ‘몸’에 다가서려 하지 않았다. 나는 이 작품을, 하나의 생물로, 하나의 존재로, 하나의 고요한 질문으로 다시 마주하려 한다.

『변신』은 단지 인간이 벌레가 되는 이야기, 즉 비인간화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갈 수 없게 되는 조건에 대한 탐색이며, 침묵의 언어로 써진 가장 서글픈 가족 보고서다.

그레고르는 ‘가장’이었고 ‘아들’이었다. 그는 늘 출근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초조했으며, 가족의 빚을 갚기 위해 침묵했고, 부모의 불편함을 먼저 살폈다. 그는 사회가 요구하는 ‘착한 존재’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더 이상 출근할 수 없고, 돈을 벌 수 없는 벌레가 되었을 때, 진짜 변신은 그제야 시작된다.

가족은 점점 그를 짐으로 여긴다. 그레고르가 벌레가 되었다고 해서 그들의 사랑이 사라진 게 아니다. 애초에 그 사랑은 기능에 대한 대가였다는 사실이 드러났을 뿐이다. 그것이 카프카가 말하고자 한 ‘변신’의 본질이다. 인간이 벌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조건이 되며, 관계가 기능이 되는 그 역전의 순간. 그레고르의 등껍질보다 더 두꺼운 것은 바로 인간이라는 이름이 씌워놓은 기대와 효용의 껍질이었다.

작품 내내 카프카는 극도로 건조한 문장으로 서사를 진행한다. 감정의 과잉도, 눈물의 서술도 없다. 그 건조함 속에서 우리는 더 깊은 메아리를 듣는다. 이 소설은 우는 소리가 없다. 그러나 읽는 이의 마음에는 어딘가 오래 앓은 듯한 통증이 맴돈다. 언어가 침묵을 밀어내는 대신, 침묵이 언어의 자리를 채운다.

나는 이 작품을 읽을 때마다 ‘문학은 무엇을 말하는가’가 아니라, ‘문학은 어디까지 침묵할 수 있는가’를 묻게 된다. 말하지 않는 문장, 그러나 읽는 이의 심연을 건드리는 울림. 그것이 카프카가 우리에게 남긴 고요한 진술이다.

그레고르의 방은 곧 인간의 내면이다. 창은 있지만 열리지 않고, 문은 있지만 닫혀 있다. 가족은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 단지 문 밖에서 소리만 지르고, 음식만 들여놓는다. 여기서 우리는 가장 날카로운 인간관계의 역설을 본다. 가장 가까운 이들이 가장 멀리 서서, 가장 큰 침묵으로 응답하는 순간. 그레고르가 인간일 때보다 벌레가 되었을 때 더 많은 진실이 드러난다. 그 진실은 불쾌하고 차갑고, 무엇보다 ‘현실적’이다.

이 작품을 통해 나는 자주 내 자신을 비춰본다. 우리는 모두 조금씩 ‘그레고르’이고, 때로는 그의 가족이기도 하다. 우리는 언제든 ‘기능이 끝난 존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시험받는다. 사회는 언제나 능력을 사랑하고, 사랑은 쉽게 혜택이 되고, 존재는 점점 자리를 잃는다. 카프카는 이 모든 것을 벌레 한 마리의 뒷모습에 담아냈다. 그리고 말없이, 그러나 결코 사라지지 않는 질문 하나를 남겼다.

“인간이란, 무엇이 제거되었을 때에도 여전히 인간인가?”

나는 김왕식이라는 이름으로 문학을 사유하는 동안, 이 질문에 종종 부딪혔다. 『변신』은 그 질문을 우리 모두의 일상에 심는다. 사무실의 풍경, 가정의 대화, 사회의 판단. 그 어디에도 그레고르는 없지만, 우리는 모두가 또 다른 ‘그레고르’를 잠재적으로 살고 있는 존재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 소설의 마지막, 그레고르의 죽음은 해방이 아니다. 그것은 무게 없는 죽음이며, 말소다. 가족은 안도하며 새로운 삶을 꿈꾸고, 아침은 다시 밝아온다. 그러나 그 빛은 눈부시지 않다. 그레고르의 부재는 그토록 가벼웠기에 오히려 그 무게는 오래 남는다. 카프카는 이 장면에서조차 감정의 언어를 쓰지 않는다. 그는 단지 무심한 아침을 보여주고, 말없이 퇴장한다.

나는 그 퇴장의 품격에 경의를 보낸다. 거기엔 문학의 윤리, 언어의 품위, 인간에 대한 근원적 사유가 깃들어 있다. 『변신』은 짧은 이야기다. 그러나 결코 닫히지 않는 이야기다. 문장은 끝났지만, 질문은 계속된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사랑한다. 그것은 인간을 증명하지도, 구원하지도 않지만,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흔들리기 쉬운 외줄 위에 놓여 있는지를 명징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카프카는 침묵했고, 그 침묵 속에서 가장 크고 오래 남는 문학을 만들어냈다.

나는 오늘도 묻는다. 나는 여전히 사람인가. 내 옆의 사람은 지금도 ‘사람’인가. 그리고 그 질문을 나에게 남겨준 카프카에게, 그리고 그 질문을 언어로 다시 숨결처럼 되살리는 문학에게,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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