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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숨 쉬는 언어의 마을_청람 문학촌의 지향과 마음

김왕식




청람문학회



함께 숨 쉬는 언어의 마을
― 청람 문학촌의 지향과 마음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서로를 알아보는 마을이 있다면, 그곳은 언어로 숨을 쉬는 이들이 조용히 걸어가는 길목일 것입니다. 청람 문학촌은 그런 마을이 되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 없이,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안도 속에서, 쓰고 싶을 때 쓰고, 듣고 싶을 때 듣고, 그저 머물고 싶을 때는 조용히 앉아 바람 소리나 한 줄의 문장을 느낄 수 있는 공간. 그것이 바로 청람 문학촌이 지향하는 풍경입니다.

청람 문학촌에는 직급이 없습니다. 작가도 독자도, 선배도 후배도, 유명인도 무명도 따로 있지 않습니다. 이곳에서는 모든 존재가 ‘하나의 글을 쓰는 사람’으로 만나게 됩니다. 누군가는 매일 써 내려가고, 누군가는 오래 바라보다가 조용히 한 줄을 남깁니다. 또 누군가는 단지 남겨진 글들을 천천히 읽기만 합니다. 그 모두가 똑같이 존중받고, 환영받는 마을이 바로 청람 문학촌입니다.

저희는 압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조심스럽고도 내밀한 일인지요. 그래서 강요하지 않습니다. 단 한 편의 글도 쓰지 않아도, 단 한 줄의 감상도 남기지 않아도, 함께 숨 쉬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이 마을에서는 무언이 가장 깊은 언어일 수 있음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글을 쓰지 않는 분도, 침묵하는 분도, 모두 청람 문학촌의 아름다운 가족입니다.

그러나 이곳은 단지 ‘조용한 방’이 아닙니다. 이곳은 ‘말이 자유롭게 태어나는 들판’입니다. 누군가의 문장이 누군가의 상처에 바람이 되고, 누군가의 시선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길이 됩니다. 저희는 서로의 글을 통해 연결되고, 그 연결 속에서 삶의 온도를 함께 나눕니다. 때로는 웃음으로, 때로는 울컥하는 기억으로, 때로는 한 편의 시로.

청람 문학촌은 정제된 문장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화려한 수사도, 엄숙한 철학도 강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희는 ‘진솔한 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정직한 말, 삶에서 직접 길어낸 말, 부끄럽더라도 내 안에서 우러난 말. 그러한 언어는, 비록 서툴지라도 가장 순결한 문학이라 믿고 있습니다. 저희는 그 진심을 무엇보다 귀하게 여깁니다.

이곳은 타인의 언어를 빌려 화려한 외피를 걸치는 공간이 아닙니다. 타인의 글을 옮겨 적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이제는 자신의 목소리로 ‘처음부터 시작하는 글쓰기’를 시도해 보는 공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단 한 줄이라 해도 좋습니다. 짧은 문장이라도 그 속에 담긴 정체성과 사유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청람 문학촌은 패밀리십(familyship)을 지향합니다. 저희는 문학이라는 느슨하지만 끈끈한 인연으로 이어진 가족입니다. 따뜻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누군가의 침묵에도 귀 기울이고, 누군가의 문장에 마음을 얹을 수 있는 그런 공동체입니다. 겸손함은 저희 모두의 시작점이고, 존중은 모두의 약속이며, 창의성은 저희가 함께 갈망하는 기쁨입니다.

때때로 저희는 삶에 지쳐 글을 쓰는 손마저 놓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시간에도 이곳은 문을 닫지 않습니다. 누구도 재촉하지 않고, 누구도 평가하지 않습니다. 이곳은 그저 ‘기다리는 공간’입니다. 다시 말하고 싶어질 때까지, 다시 문장을 꿈꾸고 싶어질 때까지, 청람 문학촌은 조용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겠습니다.

문학은 거창한 이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결국 “사람을 이해하고, 삶을 견디는 힘”입니다. 청람 문학촌은 바로 그 힘을 믿고 있습니다. 당신의 글이 저희에게 위로가 되고, 또 저희의 글이 당신에게 숨이 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청람 문학촌은 문학의 가능성보다 인간의 가능성을 더 믿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작은 공동체가 지닌 가장 큰 확신입니다. 오늘도, 아무 글도 쓰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마음이 움직일 때, 당신이 문장을 꺼내 들게 되시기를 조용히 응원합니다. 그때 저희는 알게 될 것입니다. 이곳이 단지 문학의 공간이 아니라, ‘삶을 함께 건너는 사람들’의 공간이었다는 것을요.

당신이 머무는 그 자리에서부터, 청람 문학촌은 이미 시작되고 있습니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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