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범수 교수, 김보일 선생, 김왕식 평론가
□ 한범수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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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광의 자유를 위하여
ㅡ서울시민의 절박한 외출기와 방뇨복지 제안서
김보일 ㅡ 전 배문고 국어교사
방광이 부풀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마음으로 잠가질 방광이 아니었다.
몇 명의 식당 주인에게
문전박대의 고난을 받으사
가톨릭청년회관 앞에 이르렀다.
가톨릭은 ‘보편적’이란 뜻—
이곳이면 되겠구나, 했다.
그런데 사람을 낚는 어부,
베드로를 닮은 험한 인상의 경비가
내 뒷덜미를 잡았다.
눈물과 치욕엔 용량이 없으나
저의 방광에는 용량이 있으니
저를 긍휼히 여기사,
한 질금만 허락하소서.
이 무거운 짐을 진 자를
부디 환란 중에서 구하소서.
허리 아래에서
눈물이 똑똑 떨어져 내렸다.
지금은 교리문답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엉기정기,
지하철까지 달려갔지만
남자 형제칸은 만석이고
여자 형제칸은 텅 비어 있었다.
절박함이여, 나를 비호하라.
나는 여자 형제칸으로 들어가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다.
아, 세상의 칸막이들이여.
정신이 돌아오자
가톨릭청년회관의 베드로(?)가 떠올랐다.
오줌 하나 못 누게 하면서
하나님의 은총이라니—
그 말이 입가까지 올라왔으나
밑이 조금 젖어 있는 걸 보고
그냥 귀가를 서둘렀다.
가슴속에서
목소리 하나가 들렸다.
너는 서울을 택했다.
서울의 문화적 편의를 택했다.
그것을 포기하고 산골 마가리로 갔다면
너는 방광의 자유를 누렸을 것이다.
어둑한 들판과 논두렁, 밭두렁 위에
기름진 너의 배설물을
올려놓아도 좋았을 것이다.
거주 선택의 자유가
너의 방광의 부자유를 불렀으니
더 무엇을 탓하겠느냐.
아파트의 선택에는
층간소음이 필수옵션이거늘,
어찌 너만이 그 소음에서 자유롭고자 하느냐.
어찌하여 너의 책임은 말하지 않느냐.
탈수를 부르는 차와 커피를
스스로 들이붓지 않았느냐.
너의 방광은, 국가가 관여하기 전에,
너의 것이었다.
요단강 건너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
만민의 요강이 아니다.
나사렛 동산과 갈릴리 강변에서 놀던
어린 예수는
방광이 부풀면 어디서든 바지를 내렸을 것이다.
방뇨는 육신의 한계를 고백하는 일.
가톨릭청년회관의 베드로는
방광의 고백을 듣지 못했다.
경황없는 자들의 아픔을 읽지 못했다.
사람의 뒷덜미를 낚는 사도.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얼마나 쥐어짜야,
그게 아버지의 뜻이란 말인가.
서울시청 민원실에 접수한 문건
서울시 공공복지정책 관련 건의서
제목: 고령자와 급뇨 환자를 위한 ‘방뇨복지’ 인프라 확대에 대한 건의
서울시의 눈부신 발전상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특히 대중교통 인프라와 공원 조성, 디자인 서울 프로젝트 등은
세계 어느 대도시와 견주어도 손색없는 품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한 가지,
작지만 절박한 영역이 여전히 간과되고 있는 듯하여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저는 올해 6월부터 지하철을 공짜로 탈 자격을 얻은 시민입니다. 대한민국 수도서울의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수도서울 이용후기라 생각하고 이 글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당뇨와 전립선 질환, 그리고 약한 방광 탓에 외출할 때마다 늘 화장실 위치를 먼저 검색합니다.
카페나 상점의 화장실은 대부분 외부인 출입이 제한되어 있어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도 마땅한 화장실을 찾느라 마음을 졸인 일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비단 저뿐만이 아닙니다.
서울은 이미 초고령사회로 진입했습니다.
2024년 기준, 서울시 인구의 18.3%가 65세 이상이며,
2030년에는 25% 이상, 2040년에는 32%에 이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말은 곧, 3명 중 1명이 ‘급뇨의 불안’을 안고 살아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노화와 함께 찾아오는 방광 기능 저하, 지병에 의한 배뇨장애는
더 이상 일부 시민의 문제가 아닌, 서울 전체의 공공복지 과제입니다.
고령의 부모님과 함께 다닐 때면 더욱 절실해집니다.
노인, 여성, 장애인, 만성질환자 등
도움이 필요한 시민일수록 ‘급뇨’는 외출의 두려움이 됩니다.
‘불의의 실수’가 모멸로 이어지지 않도록,
공공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서울시는 공공화장실 설치에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그 밀도와 접근성, 개방성은 아직 체감하기 어렵습니다.
지하철역 밖 300m 이내, 공원·시장·버스터미널 인근 등은 일정 부분 충족되었지만,
그 외의 일반 상업지대, 골목 상권, 복합문화공간 등에서는
여전히 ‘방광 사막’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인프라가 부족합니다.
OECD 주요 도시의 사례를 보면,
스톡홀름은 200m 간격으로 공공화장실을 설치하고,
도쿄도는 ‘누구나 쓸 수 있는 화장실’ 프로젝트로 건물과 업소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서울도 충분히 이러한 글로벌 모범 사례를 도입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고 믿습니다.
이에 다음과 같은 ‘방뇨복지’ 개선책을 제안드립니다:
1. 도보 200m 이내 공공화장실 설치 목표제 도입
2. 개방 가능한 민간건물 화장실 지도화 및 인센티브 제공
3. 급뇨질환자, 고령자, 임산부 대상 ‘비가시적 장애’ 배려 캠페인 전개
4. 서울시 공공앱(내 손안에 서울 등)에 화장실 실시간 위치·개방 여부 정보 연동
5. 구청·동사무소 및 민원실 인근 고정화장실 확보 및 야간 개방 확대
서울은 이제 단지 편리한 도시가 아니라
‘품격과 배려의 도시’가 되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시작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바로 모든 시민이 급할 때 당황하지 않아도 되는 도시,
‘오줌 앞에 평등한 서울’에서 출발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주제일 수 있으나,
이 문제가 웃고 넘길 일이 아니라는 점을,
서울시 공무원 여러분께서도 진심으로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서울시의 더 큰 도약을 늘 응원하며,
이 건의가 정책적으로 검토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25년 6월 17일. 오줌 참느라 혼줄이 나가 기진맥진 외출에서 돌아온
서울시 시민 김 보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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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광의 자유’와 문명의 품격에 대하여 ― 김보일 시민의 ‘배설문학’ 선언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문명의 진보는 인간의 고귀한 정신이 남긴 위대한 성취인 동시에, 육신의 욕구를 얼마나 정직하게 수용했는가의 역사이기도 하다. 김보일 시민의 이 글은 배설의 문제, 그중에서도 급박한 생리적 한계와 도심 공간의 부조리를 고통의 육성으로 폭로하면서도, 웃음을 넘어 공감과 제안으로 이끄는 보기 드문 시민문학의 명작이다.
“방광이 부풀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이 고백은 종교적 어휘를 빌려온 동시에, 한 도시인의 ‘육체적 인간성’이 얼마나 자주 무시당하는지를 울림 있게 드러낸다. 가톨릭은 보편을 뜻하지만, 정작 그 앞에서 화장실조차 허락받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총”을 말하는 자들의 배제된 이웃이 되어버린다. 거룩한 이름 아래 세워진 공간이, 지극히 인간적인 고통 앞에서 얼마나 무심할 수 있는지를 이 글은 신랄하면서도 품격 있게 드러낸다.
김보일의 글은 단지 ‘오줌 참기’의 민원서가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우리가 망각한 도시의 배설 윤리를 되묻는 풍자적 고백서이며, 세련된 시민철학의 선언이다. 도심 한복판에서 방광이 터지기 직전의 상황은, 단순한 에피소드가 아니라 우리가 설계한 ‘문명’의 맹점을 가리킨다. 사람은 자연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오히려 더 많은 질서를 필요로 하며, 그 질서에는 ‘급뇨’라는 절박함도 포함되어야 한다. “너는 서울을 택했다… 거주 선택의 자유가 너의 방광의 부자유를 불렀으니”라는 문장은, 현대인의 자유가 얼마나 많은 조건을 품고 있는지를 자조적으로 비튼다.
“요단강 건너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만민의 요강이 아니다”라는 진술은 그야말로 시대적 명문장이다. 이는 종교적 숭엄과 육체의 절박함이 충돌하는 현장을 해학으로 승화시킨다. 어린 예수가 갈릴리 들판에서 바지를 내렸을 것이라는 상상은 웃음을 넘어, 한 인간의 자연스러움이 어떻게 문명의 경계에서 부정되는지를 선명하게 비춘다. 문명은 기도를 허용하지만, 배뇨는 눈치 보게 만든다. 인간은 신 앞에서 무릎 꿇을 수는 있어도, 방광 앞에서는 고개를 들 수 없는 존재다.
그러나 이 글의 진가는 후반부 건의문에서 폭발한다. 철저한 시민의식, 통계 기반의 분석, 타 도시의 선례 비교, 실천 가능한 제안까지 갖춘 이 민원서는, 단순한 풍자를 넘어서 도시 행정의 각성을 요구하는 고품격 제안서다. ‘도보 200m 이내 화장실 설치 목표제’와 ‘비가시적 장애 인식 캠페인’은 단지 ‘노인을 위한 배려’가 아닌, 모두가 언젠가 경험할 일상의 불안을 위한 보편적 복지로 확장된다.
“오줌 앞에 평등한 서울.” 이 한 줄은 시민이 지닌 권리의 본질이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중요한지를 천명하는 현대 도시정의의 선언이다. 고령사회, 만성질환자 증가, 장애와 성별을 초월한 생리적 위기 속에서 이 구절은 단순한 풍자 이상의 울림을 지닌다. 진정한 ‘서울의 품격’이란, 바로 이처럼 급박하고 부끄러운 인간적 순간을 품을 수 있을 때 완성된다.
결국 김보일 시민은 ‘배설문학’이라는 신개념 장르를 열었다. 웃음으로 시작해 연민으로 감싸고, 제안으로 마무리하는 이 글은 유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이것은 육신의 방광으로 시작된 인권의 진혼곡이며, 동시에 ‘배려의 서울’을 향한 찬가다. 정치가 외면한 사소함에서 가장 큰 정의를 길어 올리는 것—그것이 시민이며, 그것이 문학이다.
김보일은 이 글 한 편으로, 서울의 심장에 진짜 ‘불편한 진실’을 담갔다. 그리고 그 진실은 지금도, 누군가의 방광에서 부풀어 오르고 있다.
ㅡ 청람 김왕식
■□
김보일 선생님의 글을 읽고, 하루가 지난 뒤 다시 펼쳐 들었습니다.
한범수 경기대 명예교수
소변을 참아야 하는 심정을 이토록 생생하고 절절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참으려 해도 도무지 참을 수 없는 생리적 절박함을 안절부절못하며 견뎌야 했던 ‘지공거사’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그 불편한 상황이 눈앞에 선연히 펼쳐졌습니다.
김왕식 선생님께서 이 글을 “배설문학”이라 명명하며 평하신 글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생리적으로 소변을 참기 어려운 시기에 접어든 연령대라면, 누구나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스톡홀름은 200미터 간격으로 공공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는 구절을 읽는 순간, 북유럽을 한 달간 여행하던 시절, 화장실 문제로 큰 불편 없이 지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반면, 지난달 파리·암스테르담·브뤼셀·룩셈부르크·쾰른·베를린을 여행하며 화장실을 찾아 헤맸던 순간들도 함께 떠올랐습니다.
스타벅스나 맥도널드 같은 곳을 찾아가면 생리적 욕구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여겼지만, 대부분 1.5유로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유료 화장실이었고, 그마저도 긴 줄을 서야 했습니다. 역 안에 있는 화장실조차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특히 파리의 지하철역에는 아예 화장실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더욱 곤혹스러웠습니다.
그런 엄혹한 현실 속에서 화장실을 찾아 헤매다 보니, 서울의 공공화장실이 얼마나 편리하고도 관대한 공간인지 절로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배뇨감을 느낄 때,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공화장실이 곳곳에 더욱 많아지기를 바란다는 김보일 선생님의 말씀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과연 현실적으로 더 많은 개방이 가능할까 하는 우려도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습니다.
아득한 시절, “화장실을 깨끗이 정비하고 누구나 쓸 수 있게 하자”는 뜻에서 발족한 ‘화장실시민연대’에 이름을 올렸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 무렵, 자전거로 전국을 순회하던 학생들이 연대의 지원을 받아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며 지역사회에 기여하도록 연계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어언 25년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의 공공화장실은 EU 어느 국가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습니다. 단언컨대, 세계 최고 수준이라 자부할 만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보일 선생님께서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의 불편함을 겪으셨다니, 서울시의 보다 적극적이고 세심한 행정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리적 현상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기본적인 인권”이라는 김왕식 선생님의 말씀도 다시금 떠올랐습니다.
매슬로의 욕구 단계 이론에 따르면, 가장 기초에 위치한 생리적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그 위의 욕구들—안전, 소속감, 존중, 자아실현—역시 성립될 수 없습니다.
인간다운 품위는 가장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의 존중에서 비롯됩니다. 그 당연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순간, 인간다움은 위태로워집니다. 나이 들어가는 동년배의 한 사람으로서, 이 소중한 경험과 공감을 글로 옮겼습니다. 부디 우리 모두가 ‘행복한 배설’을 누릴 수 있는 도시에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ㅡ 한범수 경기대 명예교수
■ ‘배설의 인문학’을 통찰한 문화비평의 백미
― 한범수 명예교수의 「행복한 배설을 위한 도시」를 읽고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김철삼 객원교수
한범수 교수의 이번 글은 단순한 감상이나 여행기적 후기가 아니다. 그것은 ‘배설’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인간 행위에 대해 품위 있는 언어로 사유를 촘촘히 직조한 문화비평의 정수다. 그의 필치는 일상의 불편함을 고발하는 데 머물지 않고, 이를 인권의 기반이자 도시문명의 품격을 가늠하는 지표로 끌어올린다.
글의 시발점은 김보일 선생의 체험적 에세이에 대한 따뜻한 공감이다. “소변을 참아야 하는 심정을 이토록 생생하게…”라는 첫 문장은 독자와의 정서적 동행을 유도하며, 문학이 사소한 불편 속에서도 인간 존재의 진실을 드러낼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한 교수는 단순히 글의 내용을 요약하거나 동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유럽 체험과 과거 ‘화장실시민연대’의 활동을 소환함으로써 이 문제를 구조적 시각에서 입체화시킨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서울의 공공화장실이 얼마나 편리하고도 관대한 공간인지 절로 실감하게 되었다”는 대목이다. 그는 비판과 함께 성찰을 병치하며, 단지 ‘불만’의 제기로 글을 마무리하지 않는다. 25년 전의 연대운동과 전국을 자전거로 돌며 화장실을 청소하던 청년들의 이야기까지 언급함으로써, 이 글은 ‘변기’라는 소재 안에 시민정신과 공동체 윤리를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한 교수는 관광개발학의 선구자이자 문화공간의 창의적 기획자로서, 관광이 단지 소비의 풍경이 아닌 ‘삶의 질을 결정짓는 조건’ 임을 일찌감치 간파한 이다. 그렇기에 이번 글에서 ‘화장실’이라는 기표는 단순한 시설물이 아니라, 도시의 윤리와 철학, 더 나아가 인간 존엄의 상징으로 변환된다.
가장 인상 깊은 문장은 다음과 같다.
“생리적 현상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기본적인 인권이다.”
이 문장은 배설의 물리성을 넘어서, 존재의 철학적 토대를 환기시키며, 매슬로의 욕구단계이론까지 끌어들여 설득력을 더한다. 한 교수는 이처럼 철학과 도시문화, 생리적 경험과 사회 구조를 잇는 드문 글쓰기의 미학을 보여준다.
요컨대, 이 글은 단순한 감상의 차원을 넘어서, ‘도시가 품어야 할 최소한의 존엄’에 대한 선언문이다. 고령화 사회, 고속화 도시에서 ‘행복한 배설’이란 곧 ‘행복한 존엄’의 시작이며, 이는 오늘날 도시계획과 복지 행정이 반드시 주목해야 할 철학적 이정표임을 일깨워준다.
한범수 교수의 이번 문장은, 사소한 불편 속에서 문명을 사유하고, 문명의 끝에서 다시 인간을 복원하는 지성의 정수였다. 이는 감히 말하건대, ‘배설의 인문학’을 정식으로 선언한 최초의 고전적 문장으로 기록될 자격이 있다.
ㅡ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김철삼 교수
김보일 선생
한범수 교수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김철삼 교수
김왕식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