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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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의 첩경은 관조觀照와 느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마음공부는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다.
산을 오르거나 바다를 건너지 않아도, 성전을 찾지 않아도 된다.
가장 가까운 곳, 바로 지금 이 자리, 이 순간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수행자다.
마음공부란 소용돌이치는 내면의 파동을 조용히 바라보고, 그 흐름을 조절하는 일이다.
무엇을 더 배우기 이전에, 이미 내 안에 있는 것을 제대로 보는 것이 먼저다.
마음은 고요할 때 가장 깊이 자신을 드러낸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은 대체로 그 고요와 멀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 요동치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급격히 휘말린다.
그러므로 마음공부의 첫걸음은 관조(觀照)다.
지금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억지로 없애려 하지 말고, 마치 다른 사람을 보듯 조용히 바라보는 것이다.
화가 날 때는 “내가 지금 화가 나고 있구나”, 불안할 때는 “내 마음에 불안이 올라오고 있구나” 하고 스스로를 관찰한다.
이렇게 내면에 또 하나의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 그것이 마음공부의 시작이자 핵심이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다스리는 데 있어 가장 흔히 빠지는 오류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마음조차 또 다른 욕심이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다.
화를 빨리 없애야겠다는 다급함, 두려움을 덮으려는 억지, 불편함을 모면하려는 회피— 그것들조차 마음을 더 어지럽히는 부유물일 뿐이다.
마음은 억지로 가라앉히려 할수록 더 요동친다.
그러니 결코 다급해하지 말 것.
차라리 한 걸음 물러서서, 그저 고요히 지켜보는 것, 그게 마음공부의 올바른 태도다.
천천히 말하라.
천천히 행동하라.
그 속도 안에 마음이 비로소 숨 쉴 공간이 생긴다.
말은 생각의 표면을 드러내는 파문이고, 행동은 마음의 속살이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다.
말이 빠르면 생각이 따라잡지 못하고, 행동이 서두르면 마음이 미처 준비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천천히 말하고, 천천히 움직이는 삶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마음의 질서를 회복하는 방법이다.
속도를 늦추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내면의 미세한 떨림을 느끼고, 그것이 나를 어디로 이끌고 있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다.
마음공부에는 특효약도, 지름길도 없다.
그러나 관조와 느림, 이 두 가지는 가장 오래된 정석이자 가장 검증된 길이다.
매 순간의 마음을 비판 없이 바라보는 연습, 모든 반응을 천천히 이어가는 습관, 그 꾸준한 반복 속에서 마음은 서서히 스스로를 다듬는다.
혼탁했던 물이 시간이 지나며 바닥을 드러내듯, 요동치던 감정도 고요한 관찰 앞에서는 그 본래의 빛을 드러내게 된다.
마음은 상대가 아니다.
이겨야 할 대상도, 정복해야 할 영역도 아니다.
그저 나와 함께 있는, 또 하나의 나일뿐이다.
그 마음과 손을 잡는 순간, 삶은 달라진다.
세상은 그대로인데도, 내면은 잔잔한 호수처럼 평화롭다.
그 평화는 외부가 만들어주지 않는다.
오직 내가 내 마음을 바로 바라볼 때, 처음으로 시작된다.
마음공부의 정석은 결국,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태도와, 서두르지 않는 걸음에 있다.
이 두 가지가 깊이 뿌리내린 사람은 세상 속에서 흔들릴지언정 무너지지 않는다.
그의 눈빛은 부드럽고, 걸음은 단단하며, 말에는 온기가 깃든다.
그것이 마음공부가 주는 가장 아름다운 결과다.
아는 것을 넘어, 그렇게 사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마음공부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