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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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글씨 위에 핀 한 송이 생명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지하철 출근길, 빽빽이 눌린 몸과 침묵으로 얼룩진 얼굴들 사이를 헤집고 앉는다. 하품처럼 열리는 문, 삐걱이는 선로, 고단한 하루가 미리부터 무겁다. 그러나 그 모든 일상의 회색 틈 사이로 언제나 선홍빛 문장이 떠오른다. 좌석의 가장자리, 마치 작은 깃발처럼 말없이 펄럭이는 문구 하나.
“이 자리는 임산부를 위한 자리입니다. 양보해 주세요.”
붉은 잉크로 찍힌 그 문장은 오랜 시간 비어 있었다. 아무도 앉지 않지만, 아무도 눈을 돌리지 않는다. 마치 의례적 예의를 벗 삼아, 자리의 존재는 공기처럼 흐릿해지고, 목적 없는 문장은 벽화처럼 바래간다. 때로는 생명을 잉태한 이가 아닌, 중년의 무심한 어른이, 혹은 다리에 힘 빠진 노인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그래도 우리는 묻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가 잊은 건, 자리보다도 '자리의 의미'였는지 모른다.
그런데 오늘 아침, 마치 오랫동안 기다린 봄처럼, 그 자리에 진짜 봄이 앉았다. 봉긋한 생명의 곡선을 감싼 코트 아래, 한 여인이 조심스럽게 그 자리에 몸을 싣는다. 하얀 얼굴, 미소도 긴장도 머금지 않은 눈꺼풀, 그러나 그 무엇보다 눈부신 건 그녀의 배 안에서 조용히 자라고 있을 또 하나의 우주였다.
그 순간, 객실 안의 공기는 미세하게 떨렸다. 누군가는 눈길을 떨구었고, 누군가는 휴대폰의 화면을 더는 들여다보지 못했다. 파문처럼 퍼지는 묵언의 경외. 좌석은 그제야 제 정체성을 회복했다. 단순한 공간이 아닌, 생명을 맞이하는 성소처럼.
그 붉은 글씨는 오늘, 처음으로 자신의 문장을 완성했다. 잉크로 쓰인 문장이 아니라, 현실의 장면으로 살아난 하나의 이야기. 마치 오래 닫혀 있던 악보의 첫 음이 울린 듯, 작고도 큰 울림이었다. 단지 한 사람이 앉았을 뿐인데, 이토록 마음이 따뜻해질 줄은 몰랐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 안에 아직 ‘존재의 경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남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우리는 저출산이라는 시대의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사라진 골목, 유모차 대신 전동킥보드가 달리는 아스팔트. 그런 세상 속에서, 오늘 그 좌석 하나는 우리 모두의 목마른 희망에 물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누군가는 말할지 모른다. 그저 임산부가 자리에 앉은 것뿐이라고. 그러나 우리가 진정 목격한 것은, 자리가 자리를 다한 순간이고, 말이 의미로 피어난 순간이며, 무심한 도시의 풍경 속에서 생명이 조용히 자기 이름을 부른 순간이었다.
오늘, 그 한 자리는 붉은 문장이 아니라 붉은 꽃이었다. 가시 많은 현실 속에서 피어난 한 송이 생명. 그 꽃은 말없이 우리를 일깨웠다. 우리가 비워야 할 자리는 어쩌면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마음의 여백임을. 우리 각자의 하루 속에서, 우리는 다시 묻는다.
“나는 오늘, 어떤 생명을 위해 무엇을 비워주었는가?”
오늘, 그 좌석은 단지 자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이 생명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는, 한 송이 붉은 선언이었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