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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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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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부는 핑크빛
시인 변희자
진달래 꽃빛
동그란 분홍 배지가
깜빡이며 신호등
응석을 부린다
머지않아
세상 소풍 나올
아이
머리부터 쑤욱
온몸으로 문 열겠지
둥근 해를 품고
어머니 발끝은
한 걸음, 두 걸음
조심조심 발디딤
동그란 숨결
새 생명의 지킴이
분홍빛 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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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빛 배지에 담긴 생명의 시학
― 변희자 시인의 「임산부는 핑크빛」을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변희자 시인의 시 「임산부는 핑크빛」은 단정한 언어 속에 생명의 경외를 핑크빛 이미지로 함축해 낸 아름다운 찬가이다. 단순한 배려의 상징에 머무르지 않고, 배지 하나에 담긴 생명의 노정을 시적 메타포로 승화시킨 점에서, 시인은 ‘작은 것에서 우주의 빛을 건져 올리는’ 감각을 지닌 이라 하겠다.
첫 연 “진달래 꽃빛 / 동그란 분홍 배지가 / 깜빡이며 신호등 / 응석을 부린다”는 여성성과 봄의 기운, 그리고 생명의 신호를 하나의 색으로 집약하여 제시한다. 진달래는 ‘먼저 핀 꽃’으로 새로운 생명의 예고이며, 분홍 배지는 단지 표식이 아니라, 자신과 아기를 함께 지키고 싶은 조심스러운 요청, 즉 ‘깜빡이는 응석’으로 표현된다. 이 응석은 철없는 요구가 아니라, 가장 순결하고도 절실한 ‘존재의 표명’이다.
이어지는 “세상 소풍 나올 아이 / 머리부터 쑤욱 / 온몸으로 문 열겠지”는 생명의 탄생을 시인의 특유의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아이의 출산을 단지 생리적 과정이 아닌, ‘세상으로 나가는 소풍’이라 명명함으로써, 고통을 감싸는 은유적 시선과 생에 대한 긍정의 미학을 선명히 드러낸다. 문을 여는 것은 어머니이지만, 동시에 ‘아기 자신이 문을 연다’는 표현은 주체적 존재로서의 태아를 시적으로 복원한다.
셋째 연에서 시인은 “둥근 해를 품고 / 어머니 발끝은 / 한 걸음, 두 걸음 / 조심조심 발디딤”이라 하였다. 여기서 둥근 해는 곧 배 속의 생명이며, 어머니는 자신의 중심을 중심으로 다시 걷는다. 생명을 품는다는 것은 단지 육체의 변화만이 아니라, 삶 전체의 리듬을 바꾸는 과정임을, 조심스러운 발디딤 속에 함축하였다. 어머니의 한 걸음은 곧 생명을 향한 두 겹의 사랑이며, 이 걸음은 묵묵하되 가장 숭고하다.
마지막 연 “동그란 숨결 / 새 생명의 지킴이 / 분홍빛 배지”는 시의 주제를 다시 한번 집약한다. 분홍빛 배지는 단지 교통 공간 속의 배려 신호가 아니다. 그것은 생명의 숨결을 품고 있는 ‘작은 우주’이며, 세상이 그 배지를 알아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인은 이 짧은 시 속에서 배려의 상징을 넘어, 존재에 대한 예의와 감동을 이끌어내는 미의식을 완성해 낸다.
변희자 시인의 삶은 늘 ‘숨은 존재’에 대한 따뜻한 응시로 채워져 있다.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에서 가장 드러나지 않는 존재의 무게를 발견하고, 그것을 품격 있는 언어로 옮겨내는 그의 시 세계는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존재’를 향한 시적 정의感의 발현이다. 그에게 시란, 제 자리를 다하지 못한 어떤 것들에게 다시 이름을 돌려주는 일이며, 이 작품 역시 그 철학의 아름다운 결실이라 할 수 있다.
「임산부는 핑크빛」은 한 편의 시를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와 사회를 향한 부드럽고 단호한 요청이며, 동시에 잊힌 배려의 자리에 생명의 온기를 되찾아주는 시인의 작고 큰 선언이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