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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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 난 양심과 수명을 연장하는 사람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거리는 무심한 듯 발걸음을 삼키고, 사람들은 구두 끝에 묻은 하루의 피로를 닦으러 조용히 구둣방 문을 연다. 좁은 공간, 닳은 가죽 냄새, 삐걱이는 의자 하나.
삶의 가장자리에서 구두를 닦는 손길이야말로 우리의 일상을 다시 걷게 해주는 예술이다. 그러나 요즘 이 구둣방에서조차 ‘양심’이라는 말이 슬며시 사라지고 있다.
구두를 닦으려 내밀면, 아저씨는 곧장 밑창을 뒤집어 본다. 마치 판결문을 검토하는 판사처럼 인상을 찌푸리며 말한다.
“이건 안 돼요. 바꿔야 해요. 당장 교체해야 해요.”
나는 단지 광만 좀 내고 싶었을 뿐인데, 그 말 앞에 무기력해진다.
결국 나는 ‘수명을 다한 구두’라는 선고를 받고 말없이 지갑을 꺼낸다. 오늘도 구두가 아니라 내 신념이 닦여버린다.
문제는 구둣방에만 있지 않다. 자동차 정비소에 들어가면 엔진오일은 기본, 타이어, 브레이크 패드, 와이퍼 고무까지 전방위적 교체가 시급하단다. “이거 그냥 타시면 위험합니다.” 그 말 한마디에 우리는 생명까지 걸린 듯 불안해진다. 정작 차는 멀쩡한데, 사람의 심리를 흔드는 기술은 엔진보다 정교하다.
치과에 가면 더한 진단이 기다린다. “이 어금니도 곧 문제가 생깁니다. 지금 안 하면 나중에 더 큰돈 듭니다.” 치료받으러 갔다가 건강한 이까지 치료 대상이 된다. 잇몸은 멀쩡한데, 영수증이 붓는다. 우리는 병이 아니라 숫자에 치료당한다. 의술이 아니라 장사술 앞에 고개 숙이는 이 시대의 환자들.
이쯤 되면 묻게 된다.
“진짜로 고장이 난 건 무엇일까?” 우리의 구두일까, 자동차일까, 치아일까. 아니면 그걸 점검한다고 나선 이들의 양심일까. 밑창이 닳아도 신발은 걸을 수 있다. 와이퍼가 조금 덜 닦여도 풍경은 보인다. 이 하나쯤 아파도 사람은 웃을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이 닳고, 신뢰가 금 가면 삶은 미끄러지고 만다.
그런데 희귀한 장면도 있다. 가끔, 정말 가끔. 어떤 구둣방 아저씨는 밑창을 뒤적이다가 말한다.
“이건 아직 쓸만해요. 다음에 바꾸죠.” 그 한마디에 무너진다. 눈물이 난다. 그 말이 이 시대에서 얼마나 희귀하고도 사치스러운 배려인지 알기 때문이다. 진실은 ‘지금 당장 바꾸자’보다 ‘조금 더 괜찮습니다’라는 따뜻한 진단 속에 있다.
자동차 정비사도, 치과의사도, 드물지만 있다.
“괜찮습니다. 다음에 오세요.”
그 말은 마치 오랜만에 듣는 자장가처럼 가슴을 적신다. 믿을 수 있는 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은 견딜 만해진다.
이제는 소비보다 존중이, 이익보다 신뢰가 절실한 시대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고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먼저 고쳐야 할 것은 도구가 아니라 ‘과잉의 욕심’이며, 먼저 닦아야 할 것은 구두보다 우리의 양심일지 모른다.
다 닳아 없어질 것 같은 이 시대 속에서, 단 하나의 덜 닳은 마음이 있다면, 그 한 사람이 이 세상을 다시 걷게 한다. 광택 없는 시대에 반짝이는 것은 결국 기술이 아니라 진심이다.
“조금 더 사용할 수 있어요”라는 말은, 돈을 벌지 못할지라도, 사람을 얻는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또다시, 오늘의 구둣방을 지난다. 광택보다 값진 건, 그 속에 숨어 있는 사람 냄새라는 것을, 이제는 누구나 조금쯤은 알게 되었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