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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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철 풍경도(風景圖)
― 몸은 붙고 마음은 멀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퇴근길 오후 6시, 서울 지하철 3호선 대화행은 오늘도 '대화'가 끊긴 대열차처럼 사람들을 조용히 삼킨다. 열차 문이 열리자마자, 흡사 공기마저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사람들은 서로의 틈을 밀치고 비집고 억지로 들어선다. 발끝 하나 댈 공간조차 없건만, 우리는 무언의 합의처럼 다시금 밀어 넣고, 밀려든다. 이것이 일상이고, 또 하나의 전쟁이다.
차 안의 공기는 이미 공기가 아니다. 에어컨은 돌아가지만, 찬바람은 도중에 길을 잃고, 사람들의 체온이 만든 장벽 앞에서 뜨거운 숨결로 되돌아온다. 차라리 온풍기다. 남녀노소 구분 없는 밀착. 땀과 옷깃과 가방 끈이 서로의 살결과 어깨를 침범한다. 평소 같으면 도망치거나 민망해할 거리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조차 없다. 모든 인간관계가 해체되고, 오직 생존만 남는다.
그 와중에도 사람들은 신체의 자유를 포기한 채, 한 손은 공중에 고정된다. 손잡이를 쥔 게 아니라, 스마트폰을 든 손이다. 이 기이한 균형. 몸은 구겨져도 화면은 곧게 펴져야 한다. 이어폰을 낀 채, 무표정한 얼굴로 웃긴 영상에 혼자 씩 웃는 이도 있고, 주식 그래프를 올려다보는 이도 있다. 어떤 이는 누가 밀건 말건, SNS 속 타인의 일상에 ‘좋아요’를 누른다. 이 불편한 공간에서 유일하게 ‘개인적 공간’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은 손바닥 속 6인치 네모뿐이다.
이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건 몸이 아니라 손이다. 아니, 그 손이 쥔 기기다. 몸은 부딪히고 밀리고 땀에 젖어도, 휴대폰은 마치 성배처럼 지켜진다. 허리를 비틀고 팔을 치켜들어가며라도 화면은 눈높이를 유지한다. 그 열의와 집중력은 감탄을 자아낼 정도다. 옆 사람이 숨이 막혀도, 오늘의 댓글 반응은 포기할 수 없다.
아이러니하다. 이토록 밀착되어 있으면서도, 이토록 멀다. 같은 공간, 같은 온도, 같은 고단함 속에서도 누구 하나 말하지 않고, 눈조차 마주치지 않는다. 인간은 가까워질수록 더 멀어진다는 진실이, 이 지하철 안에서 살아 숨 쉰다. 몸은 닿아도 마음은 닿지 않는, 첨단과 고립의 혼재된 풍경. 이것이 지금 이 도시의 풍속도다.
가끔 눈을 들어보면, 누군가 눈을 감고 선 채 조용히 균형을 잡는다. 피로함에, 혹은 무의식의 안식처로 향하는 눈꺼풀. 하지만 그 옆엔 여전히 눈을 부릅뜨고 영상을 넘기는 손가락들이 바쁘다. 그 모든 손길의 끝에는 하나의 결핍이 있다. 바쁜 사람들, 붐비는 공간, 그러나 결국 텅 빈 시간.
지하철은 움직이지만, 우리는 정체되어 있다. 어쩌면 한참을 달리고 있지만,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퇴근길이라 쓰고, '일상의 자각 상실 구간'이라 읽는 지금 이 시간. 지옥철은 오늘도 제 역할을 한다. 사람을 실어 나르고, 고독을 던지고, 무감각을 태운 채 또 다음 역을 향해 달린다.
문이 닫힌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다. 이 풍경은 곧 이 시대의 자화상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너무 가까워졌고, 그래서 더 이상 가까워질 수 없게 되었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