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길리우스 ㅡ로마의 혼을 짓던 시인

김왕식




베르길리우스,

로마의 혼을 짓던 시인의 불멸의 붓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세상의 모든 문명이 그러하듯, 로마에도 심장을 뛰게 하는 노래가 필요했다. 그 심장을 노래한 이는, 이름보다 조용한 사람이었다. 기원전 70년, 북이탈리아의 흙 내음 가득한 들판에서 태어난 베르길리우스는 가난한 농부 혹은 옹기장이의 아들로 세상에 나왔다. 신분도 세력도 없이, 그는 다만 말의 뿌리를 알고자 했다. 이윽고 로마의 대도시로 향해 수사학과 법률을 배우며 세속의 정치를 흡수했지만, 한 차례 법정에 섰던 일이 그의 인생을 문학으로 꺾는 결절점이 되었다. 수줍음 많은 이 청년은 그날 이후 칼이 아닌 시로, 전쟁이 아닌 노래로 제 제국을 짓겠노라 다짐했다.

그가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은 〈전원시〉였다. 목자들의 노래에 세속의 슬픔을 끼얹고, 이상과 현실의 경계에 빛나는 문장으로 천막을 쳤다. 그것은 단순한 목가가 아니었다. 정복의 이면에서 삶터를 잃은 자들의 울음이었고, 신탁처럼 울려 퍼지는 아기의 탄생은 시대를 넘어선 예언처럼 읽혔다. 훗날 그 아기는 예수로 읽히며, 베르길리우스는 그리스도교 문명의 숨겨진 예언자로 불리게 된다.

〈농경시〉는 더욱 현실에 밀착되었다. 땅을 일구는 손, 전쟁의 폐허를 딛고 다시 곡식을 피워내는 인간의 의지를 그는 시로 불러냈다. ‘열심히 노력하면 땅이 보답한다’는 믿음은 단순한 농부의 노래가 아니었다. 그것은 삶의 윤리요, 공동체의 회복이요, 로마가 나아갈 새로운 길에 대한 선언이었다. 이 시는 베르길리우스 개인의 토지 상실과 회복의 경험이 이중적으로 각인되어 있어, 개인의 서사가 곧 국가의 신화가 되는 묘한 층위를 이룬다. 그리하여 그는 최고의 시인이 되었고, 아우구스투스는 그에게 로마를 노래해 달라 청한다.

〈아이네이스〉는 그 요청에 대한 응답이었다. 트로이의 영웅 아이네아스를 주인공으로, 새로운 로마의 건국을 서사로 짜낸 대서사시는 단순한 민족 신화가 아니었다. 신의 뜻 앞에 운명을 순명하되, 그 순명이 인간의 고통과 번민 위에 놓였다는 점에서, 그것은 인간 내면의 기록이기도 하다. 베르길리우스는 이 위대한 작업에 생을 걸었다. 마치 벽돌 하나하나 쌓아 거대한 신전을 올리듯, 단어 하나에도 수십 번 퇴고하며 작품을 다듬었다.

그러나 그의 생은 그 신전을 끝내 완성하지 못했다. 그리스로의 답사 여정에서 열병에 쓰러지고, 귀국 길에 생을 마감한 그는, 죽기 전 마지막으로 ‘이 시를 불태워 달라’ 부탁했다. 그는 자신의 문장이 여전히 미완이라 여겼다. 그러나 아우구스투스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로마의 운명이 그 시 안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의 시는 죽음 뒤에도 살아남아 로마의 교과서가 되었고, 라틴어가 도달할 수 있는 미학의 최정점으로 기록되었다. 그가 노래한 세계는 보수적 윤리와 인간의 순명, 신의 섭리에 대한 겸허한 복종으로 엮여 있었기에, 기독교 문명이 로마를 삼킨 이후에도 그의 시는 ‘빛의 전언’처럼 애송되었다.

베르길리우스는 말하자면, 전쟁을 끝내는 노래를 쓴 시인이다. 피로 물든 역사를 노래의 잉크로 씻고, 상처 위에 문장을 새겨 희망을 돌려준 자다. 그의 시는 로마가 스스로를 신화로 만들기 위한, 가장 정결하고 장엄한 의식이었다. 신탁의 혀끝은 그렇게, 시인의 손끝에서 피어났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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