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 시인 ㅡ 김왕식 문학평론가
□ 고두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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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온 소포
*시인 고두현
밤에 온 소포를 받고 문 닫지 못한다.
서투른 글씨로 동여맨 겹겹의 매듭마다
주름진 손마디 한데 묶여 도착한
어머니 겨울 안부, 남쪽 섬 먼 길을
해풍도 마르지 않고 바삐 왔구나.
울타리 없는 곳에 혼자 남아
빈 지붕만 지키는 쓸쓸함
두터운 마분지에 싸고 또 싸서
속엣것보다 포장 더 무겁게 담아 보낸
소포 끈 찬찬히 풀다 보면 낯선 서울살이
찌든 생활의 겉꺼풀들도 하나씩 벗겨지고
오래된 장갑 버선 한 짝
해진 내의까지 감기고 얽힌 무명실 줄 따라
펼쳐지더니 드디어 한지더미 속에서 놀란 듯
얼굴 내미는 남해산 유자 아홉 개.
「큰 집 뒤따메 올 유자가 잘 댔다고 몃 개 따서
너어 보내니 춥을 때 다려 먹거라. 고생 만앗지야
봄 볕치 풀리믄 또 조흔 일도 안 잇것나. 사람이
다 지 아래를 보고 사는 거라 어렵더라도 참고
반다시 몸만 성키 추스리라」
헤쳐 놓았던 몇 겹의 종이
다시 접었다 펼쳤다 밤새
남향의 문 닫지 못하고
무연히 콧등 시큰거려 내다본 밖으로
새벽 눈발이 하얗게 손 흔들며
글썽글썽 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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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시인은 1963년 경상남도 남해에서 태어났다. 그는 경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문학에 대한 열정을 품은 채 시인의 길에 들어섰다.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면서 문단에 이름을 알렸으며, 그의 섬세한 언어 감각과 깊이 있는 정서는 독자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2005년에는 제10회 '시와 시학 젊은 시인상'을 수상하며, 문단 안팎에서 그의 시 세계가 더욱 주목받기 시작했다. 고 시인은 시인의 정체성을 지키는 동시에 오랜 시간 언론인으로서도 활동해왔다. 그는 한국경제신문에서 문화에디터로 일했으며, 2010년부터는 편집국 문화부장을 맡아 문화계 전반에 대한 통찰력 있는 시선과 필력으로 많은 글을 남겼다. 2013년 4월부터 2023년 4월까지는 같은 신문사의 논설위원으로 재직하며 우리 사회의 문화적 담론을 이끌어온 인물이다.
문학과 언론이라는 두 세계를 넘나들며 깊이 있는 통찰과 품격 있는 언어로 시대를 기록해온 고두현 시인은, 오늘날 한국 현대시의 한 축을 단단히 떠받치고 있는 중견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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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 아홉 개가 전하는 삶의 온도”
― 고두현 시인의 '늦게 온 소포'를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 시는 우연히 시 낭송가 소엽 박경숙 선생의 낭송을 통해 처음 만났다. 처음엔 시보다 목소리에 먼저 젖었고, 이후 시를 찾아 읽고 또 낭송을 반복해 들었다. 고두현 시인의 시 자체도 충분히 아름다웠지만, 소엽 선생의 목소리는 마치 고운 비단옷을 입히듯, 시의 정서를 한 겹 더 곱고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그 낭송을 통해 시가 단어의 나열이 아니라 ‘살아 있는 안부’로 다가왔던 순간, 시인의 세계와 독자의 마음은 조용히 포개졌다.
고두현 시인은 평생 ‘삶의 본향’이라 할 수 있는 고향과 어머니, 그리고 사람의 따뜻한 체온을 시심으로 길어 올려 온 서정시인이다. 경상남도 남해 출신인 그는 해풍 짙은 섬의 언어를 고요하게 빚어, 일상의 사소한 풍경 속에서 인간 존재의 근원을 꺼내 보여주는 시적 감식안을 지녔다. '늦게 온 소포'는 시인의 이러한 시 세계를 가장 섬세하고 절절하게 펼쳐 보이는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이 시는 단순한 물리적 전달물인 소포를 통해, 삶의 가장 진실한 감정인 그리움과 위로, 정(情)의 무게를 시적으로 직조해 낸다.
고두현 시인은 평생 시의 포장지를 벗겨내며 인간 존재의 본질, 그 속의 사랑과 눈물, 정(情)과 기다림의 결을 더듬어온 시인이다. 그는 화려한 기교보다는 소박한 진실을 선택했고, 말보다 침묵이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아는 이다.
그런 그의 시 '늦게 온 소포'는 곧 어머니의 손때 묻은 삶이자, 고향이라는 뿌리의 서늘하고도 따뜻한 체온이다. 이 시에는 존재의 본향을 잊지 않으려는 시인의 가치철학과, 사물 너머 사람을 보려는 깊은 미의식이 그대로 녹아 있다.
첫 행 “밤에 온 소포를 받고 문 닫지 못한다”는 단순한 현실의 장면을 시적 현상학으로 확장한다. 문을 닫지 못한다는 것은 곧 마음을 닫지 못한다는 의미이며, 동시에 삶의 균열 속으로 밀려온 '그리움'의 문틈을 시인이 고요히 응시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 소포는 단순한 물건의 집합이 아니라, 어머니의 ‘주름진 손마디’가 눌러쓴 무언의 편지다. '겹겹의 매듭'과 '포장'은 그저 포장이 아니라, 세월과 사랑의 결락 없는 증거다.
특히 “울타리 없는 곳에 혼자 남아 / 빈 지붕만 지키는 쓸쓸함”이라는 구절은 시인의 어머니를 넘어 이 시대 모든 노모들의 상징적 형상이다. 삶의 경계선에서 울타리 하나 없이 외풍을 맞으며 자식만을 바라보는 존재. 시인은 이 쓸쓸함을 마분지와 소포끈이라는 사물의 은유로 절묘하게 포착한다. 그것은 마치 “속엣것보다 포장이 더 무겁게 담긴” 어머니의 생이기도 하다. 속보다 겉이 무거운 인생, 그 인생을 고스란히 안은 채 그는 소포를 푼다.
시의 중반부로 가면, 소포의 포장을 푸는 행위가 곧 서울살이의 때를 벗기는 의식으로 전환된다. 단순한 동작에 불과한 '끈을 푼다'는 행위가 시인의 감각을 통해 ‘삶의 겉껍질을 벗기는’ 정화의 의미로 변모하는 순간이다. 해진 내의와 무명실은 다만 낡은 물건이 아니라, 물질에 담긴 마음의 시간이며, 기억의 질감이다. 그 실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유자 아홉 개’라는 황금빛 중심에 도달한다.
이 ‘유자’는 단지 과일이 아니다. 아홉 개라는 숫자는 상징적 완결성과 어머니의 세심함을 동시에 담고 있다. 시인은 이 과일들을 “놀란 듯 얼굴 내미는” 존재로 묘사하며, 무생물을 생물처럼 살아 있게 만든다. 이것이 고두현 시인의 미의식이다. 대상은 살아 있고, 사물은 감정을 품는다. 유자 하나하나가 어머니의 눈동자요, 바다 건너온 시간의 결정체인 것이다.
시의 말미에 이르러 우리는 더 이상 ‘시’가 아니라 ‘삶’을 읽는다. “큰 집 뒤따메 올 유자가 잘 댔다고…”로 시작되는 이 토막글은 활자라기보다, 눈물로 번진 어머니의 체온 그 자체다. 비표준어, 불완전한 철자, 사투리가 뒤섞인 문장은 그 자체로 어머니의 삶의 문장이고, 문학을 넘어선 진실이다.
문학이 지닌 최고의 품격은 진정성일 때, 고두현 시인은 이 가장 덜 다듬어진 말을 가장 눈부신 시어로 세워 놓았다. 이 말은 곧, 자식을 향해 일평생을 보내고 있는 한 사람의 인생 그 자체다.
“너어 보내니 춥을 때 다려 먹거라”는 단순한 문장이 뼛속 깊이 와닿는 건, 거기 담긴 배려와 정성의 무게 때문이다. 이 말은 음식이 아니라 마음을 다려 먹으라는 당부로 들리고, “반다시 몸만 성키 추스리라”는 문장은 의사의 처방보다도 깊고 절실한 어머니의 축언祝言처럼 다가온다. 단어 하나하나에 인생이 매달리고, 기도의 숨결이 실려 있다.
“헤쳐 놓았던 몇 겹의 종이 / 다시 접었다 펼쳤다 밤새”는 단순한 동작을 넘어, 감정의 겹을 덧대고 걷어내는 내면의 행위다. 쪽지를 접었다 펴는 일은 과거를 꺼내 읽고, 또 도로 집어넣는 애틋한 반복이다. 그렇게 시인은 밤새 이 편지를 가슴에 넣었다 꺼내며 울고, 그 울음의 무게를 시 속에 눌러 담았다.
“남향의 문 닫지 못하고”라는 구절은 단순한 공간의 묘사를 넘는다. 그것은 삶의 어느 한 방향을 향해 열려 있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그리움의 출입구다. ‘무연히 콧등 시큰거려 내다본 밖’은 시인의 무방비한 감정 상태를 드러낸다. 그는 해답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그저 감정을 그대로 들여다보며, 사랑이란 말보다 더 오래 남는 침묵을 시의 언어로 번역해낼 뿐이다.
결정적 장면, “새벽 눈발이 하얗게 손 흔들며 / 글썽글썽 녹고 있다.” 시인이 창밖에서 본 것은 단지 눈이 아니다. 그것은 어머니의 손짓이고, 하늘에서 사라지는 마지막 인사이며, 삶의 끝에서도 결코 말라버리지 않는 눈물의 언어다.
‘녹는다’는 동사는 단순한 물리적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얼어 있던 마음이 풀리는 순간, 비로소 우리가 타인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감정의 해빙기다.
이 한 편의 시가 전해주는 울림은 시를 넘어 인간학이다. 고두현 시인은 화려한 은유 없이도, 진정한 은유가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어머니의 투박한 말은 시의 본령이 무엇인지를 되묻게 한다. 시는 반드시 고운 말로 쓰일 필요가 없다는 것, 가장 낡고 서툰 문장 안에 가장 빛나는 진실이 깃들 수 있다는 것을 이 시는 증명한다.
그는 기자이자 문화부장이자 언론인이지만, 동시에 가장 섬세한 인간학자로서의 시인이다. 그의 시에는 계산된 수사가 없다. 대신 삶의 손때가 묻은 문장들이 있다. 유자는 향이 아니라 사연이고, 눈은 풍경이 아니라 서사다. 어머니는 존재가 아니라 기도의 다른 이름이다.
'늦게 온 소포'는 결국, '늦게' 왔기에 더 오래 머무는 사랑의 기록이다. 사랑은 종종 말이 아닌 물건으로, 그 물건은 다시 손글씨 한 줄로, 그 손글씨는 끝내 눈물 한 방울로 바뀌어 가슴에 남는다.
고두현 시인은 그 모든 전이를 조용히 기록한 시인이다. 그리고 독자는 시인이 남겨놓은 그 말 없는 향기 속에서, 각자의 어머니와 각자의 새벽을 마주하게 된다.
시가 여기서 끝났어도, 그 눈발은 지금도 천천히 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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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시인 고두현의 내력과도 깊이 맞닿아 있다. 신문기자로서 사회를, 논설위원으로서 현실을 보았던 시인은, 시 안에서는 늘 ‘낡고 오래된 것’을 품는다. 말보다 마음, 빛보다 그림자, 주목받는 것보다 버려진 것에 시선을 둔다. 그렇기에 고두현의 시는 감동을 주는 동시에 위안이 된다. 유자가 그리웠던 겨울밤, 어머니가 보고 싶은 순간, 문득 이 시를 다시 꺼내 읽고 싶게 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시 한 편이 이토록 삶의 눈물샘을 건드릴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고두현 시인의 시가 가진 품격이며 위대함이다. 그리고 소엽 박경숙 선생의 낭송은 그 시를 비단처럼 감싸, 우리에게 오랫동안 남는 온기 한 겹으로 녹아든다. 유자 아홉 개는 먹는 것이 아니라, 듣고 읽고 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향은 아직도 문 밖 새벽 공기 속에 가만히 머물러 있다.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