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봉근 시인의 「낫 두 자루」를 읽고

김왕식








낫 두 자루


시인 안 봉근




지난해 낫 두 자루를 구입했다
한 자루는 나중에
쓰려고 포장 그대로
보관했다
다른 하나는 잔디와 잡초를 제거하고
무뎌지면 숫돌아 갈아
사용하니 이제 닳아서
다른 낫으로 교체하게
되었다
아뿔싸!
1년 전 보관한 낫이 빨갛게 녹이
슬어 사용할 수가 없다

마음으로 다짐한다
남은 인생
닳아 없어지더라도
녹슬지는 말자




닳을지언정 녹슬지 않으리
ㅡ안봉근 시인의 「낫 두 자루」를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안봉근 시인은 모든 것 내려놓고 귀향하여 소박한 삶을 영위하는 겸손한 작가이다.
그의 이번 시 '낫 두 자루', 역시 그 연장선 상에 있으며, 생활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삶의 본질을 끌어올리는 시인의 미학이 담긴 작품이다.
이 시는 단지 '낫'이라는 사물을 소재로 삼고 있지만, 그 너머에는 인생의 태도와 존재의 의미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자리 잡고 있다.
시인은 두 자루의 낫을 통해 ‘쓰이는 삶’과 ‘아껴둔 삶’의 대비를 설정하고, 그 속에서 한 인간의 생애와 철학, 그리고 후회와 다짐을 절제된 언어로 그려낸다.

첫 연에서는 낫 두 자루를 구입한 일상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하나는 지금 사용하기 위해 개봉하고, 다른 하나는 훗날을 대비하여 포장을 뜯지 않은 채 보관한다.
이 간단한 설정이 곧 인생의 두 방향을 상징한다. 현실을 부딪으며 살아가는 적극적인 삶과, 언젠가를 위해 미루는 유보적 삶. 이 두 가지 삶의 태도는 낫이라는 도구를 통해 구체화되며, 독자는 그 상징성에 자연스럽게 이끌린다.

둘째 연에서 시인은 사용한 낫의 운명을 묘사한다. 잡초를 베고 잔디를 다듬으며, 무뎌질 때마다 숫돌에 갈아가며 묵묵히 사용했던 낫은 마침내 닳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다.
이는 인간이 맡은 역할을 감당하고 자신의 시간을 소모하며 살아간 존재의 아름다움을 암시한다. 닳아 없어지는 존재는, 외려 가장 충실히 제 기능을 다한 삶이다. 여기에는 시인의 삶에 대한 겸허한 수긍과, 소모되어 가는 존재로서의 자기 긍정이 담겨 있다.

극적인 전환은 그다음 연에서 이뤄진다. “아뿔싸!”라는 감탄사는 일상적 언어 속에서 문득 터져 나온 뉘우침의 소리이며, 독자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기능을 한다.
1년간 고이 모셔 두었던 낫이 빨갛게 녹슬어 버렸다는 사실은 단순한 실수의 기록이 아니라, 삶을 미루고 아껴두었던 결과가 오히려 무용해졌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이 순간 시는 생활의 보고에서 철학의 영역으로 비약한다. 사용하지 않아 새것으로 남겨졌던 낫이 가장 쓸모없는 것이 되었다는 사실은, 생이란 결국 ‘어떻게 닳아가느냐’의 문제임을 강하게 일깨운다.

결미에서 시인은 짧고 단호한 결심을 선언한다. “남은 인생 / 닳아 없어지더라도 / 녹슬지는 말자.” 이 세 줄은 시의 핵심이며, 시인의 철학을 온전히 드러내는 구절이다. 닳는다는 것은 쓰였다는 것이며, 쓰였다는 것은 살아 있었고 누군가에게 쓰임 받았다는 증거이다.
반면 녹슨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세월의 습기에 잠식당한 존재의 비극이다. 시인은 이 구절을 통해 삶의 윤리를 제시하며, 독자에게 진실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닳는 쪽의 삶을 살 것인가, 녹슬지 않기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시의 문장은 일상적이고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그 안에 시인의 정직한 감성과 철학이 응축되어 있다.
다만 몇몇 표현은 시의 리듬과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세심하게 다듬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쓰려고”는 “위해”로, “이제 닳아서 / 다른 낫으로 교체하게 되었다”는 “닳아 더는 쓸 수 없게 되어 / 마침내 새 낫을 꺼내려했는데”로, 그리고 “녹이 슬어 사용할 수가 없다”는 “녹슬어 쓸 수 없게 되었다”로 바꾸면 운율과 전달력이 한층 강화된다.
이는 작가의 시정신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표현을 더 설득력 있게 다듬는 작업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안봉근 시인의 작품 세계는 과장 없이, 허세 없이, 삶을 있는 그대로 응시하고 담아내는 데에 있다. 그에게 시는 문학적 장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도구요, 체험의 집적이다.
'낫 두 자루'는 그가 살아낸 삶, 실천한 철학, 그리고 남겨진 시간에 대한 결단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것은 누군가의 이야기이면서도, 결국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닳아 없어질지언정, 녹슬지는 말자. 시인의 마지막 다짐은 한 줄 문장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삶의 좌표이며, 우리 각자의 일상 속에 깊이 새겨두어야 할 진심 어린 경구다.
이 시는 그런 점에서 단순한 생활 시를 넘어, 우리 모두의 ‘오늘’을 반추 反芻하게 하는 철학 시로 높게 평가받는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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