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규 시 〈저 고개 넘으면 고향집〉 ㅡ청람 김왕식

김왕식









저 고개 넘으면 고향집

시인 강문규





저 고개 넘으면 냇물이 흐르고 징검다리 지나
우리 어머님 계신 고향집

얼마나 애타게 그리웠던가
우리 어머님 계신 고향집

사립문 열면 돌담장에 초가지붕
채송화꽃 봉선화꽃 피어 있는 작은 마당

뒷마당 장독대는 유난히 반짝거렸는데
여기가 꿈속에서도 보고 싶던 고향집

황토 아궁이 장작불 지펴
가마솥에 보리밥 지어주시던 어머님

이제는 아궁이에 시커먼 잿빛만 남겨놓고 거미줄만
걸려있구나

고개 넘어온 옛 고향집은
새소리만 지즐대고
냇물은 변함없이 흐른다

부지깽이 들고 바쁘게 왔다 갔다 하신 어머님은 보이질 않고

아무 말 없는 휜 뭉게구름만 쉬엄쉬엄 쉬었다 간다





고갯마루 위의 시간과 어머님의 자취
― 강문규 시 〈저 고개 넘으면 고향집〉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강문규 시인 가슴에는 초가집 봉당이 자리하고 있다.

시인은 늘 그 봉당을 빗자루질을 한다.

이 시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그의 시 〈저 고개 넘으면 고향집〉은 유년의 기억과 어머니에 대한 회귀적 그리움이 애틋하게 녹아든 시이다. 시인은 ‘고개’라는 공간을 경계로 과거와 현재, 삶과 부재, 현실과 기억의 층위를 나누며, 독자에게 심연의 회귀를 유도한다.
이 시에는 단순한 고향 회상이 아닌, 존재의 뿌리를 되새기며 삶의 본질을 되묻는 깊은 철학이 배어 있다.

시의 첫 연은 "저 고개 넘으면 냇물이 흐르고 징검다리 지나 / 우리 어머님 계신 고향집"이라는 노래하듯 구어체로 시작된다. 이때 ‘고개’는 물리적 장소인 동시에 정서적 경계이며, 시간의 문턱이다. 고개를 넘는 행위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상실된 유년과 어머니의 품속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내면의 순례다.

이어지는 연들에서는 사립문, 돌담장, 초가, 채송화와 봉선화, 장독대 등 민속적 이미지가 한 편의 풍속화처럼 펼쳐진다. 이러한 장면들은 단순한 수사가 아닌, 시인의 유년기 체험을 바탕으로 한 실감의 언어로, 보는 이의 가슴에도 오래도록 맺힌 ‘어머니의 자리’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황토 아궁이 장작불 지펴 / 가마솥에 보리밥 지어주시던 어머님"의 구절은 한국 농촌의 삶과 어머니의 손맛, 그리고 따뜻한 살림의 기운을 그대로 살려내며 향토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시의 후반부에 이르면 이 모든 풍경은 급격히 사그라든다. "시커먼 잿빛"과 "거미줄", "보이지 않는 어머님", "지졸대는 새소리"는 시간의 흐름과 상실의 현장을 실감나게 대비시키며, 현재가 얼마나 공허한가를 말없이 웅변한다.
특히 마지막 구절 “아무 말 없는 휜 뭉게구름만 쉬엄쉬엄 쉬었다 간다”는 시 전체의 정서를 묵직하게 마감하며, 죽음과 그 너머의 영원을 암시한다. 하늘로 승화된 어머니의 형상은 바로 그 뭉게구름 속에 있고, 이는 곧 시인의 깊은 내면기도와 통한다.

작품의 미의식은 ‘단순함의 품격’에 있다. 복잡한 수식 없이도 시인은 풍경과 감정을 농밀하게 직조해 냈고, 비애와 따뜻함이 절묘하게 교차되며 감동의 밀도를 높였다.
다만 후반부의 전개에서 "시커먼 잿빛만 남겨놓고"와 "거미줄만 걸려있구나" 사이에 약간의 어조의 꺾임이 아쉬움을 남긴다.
이 부분은 ‘잿빛만 쌓이고 / 아무도 손대지 않은 거미줄만’처럼 리듬과 긴장을 부드럽게 조율한다면, 정서의 연결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강문규 시인은 이 시를 통해 고향을 단지 공간이 아니라 기억과 정서, 삶의 윤리와 영혼이 깃든 장소로 승화시켰다. 이 시는 독자에게 단지 고향의 회상을 넘어, ‘삶이란 결국 어머니가 있던 곳을 향한 끝없는 귀향의 여정’ 임을 말해준다.
시인의 삶의 철학은 여기에 있다. 소멸 앞에서 더욱 빛나는 정情, 그것을 품은 이 시는 누구나의 마음속 ‘고향집’으로 이어지는 따뜻한 길이 된다.



ㅡ 청람 김왕식

□ 강문규 시인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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