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조 작가의 소설 '고도방 구두'를 읽고

김왕식




□ 김유조 교수




고도방 구두

김 유 조 교수



"고도방 구두를 아시나요?"

그룹투어에 나선 열댓 명 일행 중에서도 며칠 같이 다니며 특별히 가깝게 느낀 한 가족에게 내가 던진 말이었다. 스페인 코르도바에서의 저녁식탁 자리였다. 여행에 앞서 안내책자와 인터넷 등을 뒤져 미리 공부를 좀 하던 중 특별히 코르도바는 내게 흥미를 던지는 내용이 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지방의 꽤 큰 도시에서 지낸 내가 항상 부러워한 것이 있었다면 고도방 구두였다.

그때만 해도 비싼 운동화 시절이 아니었기에 싼 운동화의 위쪽 등급으로는 목을 자른 군화, 그 위에 단화, 또 그 위에 고도방 구두가 있었다. 그러니 고도방 구두란 구경의 대상일 뿐 내 차례에는 결코 닿지 않았고 부잣집 친구들 몇 명이 그걸로 폼을 잡는 분위기였다. 말 엉덩이 가죽을 한 뜸 한 뜸 수작업으로 신발창에 붙인다던가.

그런데 여행에 앞서 공부를 해보니 그 고도방의 어원이 바로 이 코르도바라는 게 아닌가. 아랍어에 따르면 피혁을 일컫는 말이었단다. 8세기부터 이베리아 반도에 진출한 이슬람 세력은 남부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넘어서 지금의 코르도바로 진출하였다. 이들은 여기에서 아랍의 선진 기술인 피혁과 금은 세공업을 발달시켰다. 아울러 배후 세력으로 유태인과 집시들도 끌어들였다. 문명과 문화 발전의 기폭제는 항상 다원주의와 변화를 수용하는 마음자세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유럽 일부와 동남아시아까지 넘보았던 이슬람은 대제국 건설 이후에 원리주의와 불변원칙을 고수하면서 변화를 수용하기 시작한 서구 문명에 역전되기 시작하였다. 영광의 정점에서 불변이란 얼마나 달콤한 미망인가---.

하여간 당시로는 굉장한 선진 기술인 가죽 무두질, 즉 코르도반 기술을 개화시킨 이곳은 지명 자체도 "코르도바(Cordoba)"가 되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식탁화제가 별것인가. 사전에 습득한 이런 이야기로 저녁 식사시간을 이끌려던 것이 내 생각이었다.

"내가 그런 걸 알게 뭐요!?"

놀랍게도 청년의 대답은 몹시 거칠고 무례하였다. 부모의 나이가 우리 부부와 같은 또래이고 그때까지 청년은 내내 매우 착하게 보였는데 의외의 일격을 가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식사시간에 구두 이야기도 못한단 말이오?"

나도 언성을 좀 높였다. 무안하고 화가 났다.

"아저씨, 참 잘났어요. 구두 방이 그래서 어떻단 말이오?"

그가 혼자서 점점 격앙되더니 얼굴을 붉히며 대들었다.

"구두 방이 아니라 고도방 말이오. 그리고 구두 방이라면 또 어떻소?"

총각의 거친 말과 나의 당황한 답이 오고 갔다. 화장실에 갔던 아버지가 나타난 것은 이때였다.

"얘야, 무례하구나. 사과드려라. 죄송합니다. 뜻밖의 오해가 생겼나 봅니다."

그분은 나에게 다가와서 조용히 말을 이었다.

"우리는 T시에서 고도방 구두점을 크게 했지요. 이름은 은성제화라고---."

"아이고 저도 고향이 그곳입니다, 은성 제화, 정말 반가운 이름이네요. 제가 고향을 떠난 건 30년도 넘지만 은성 제화를 어찌 잊겠습니까---."

"하지만 그걸 그만둔 것도 10여 년 이상 되는군요. 우리는 지금 T시에서 금융업을 한답니다. 은성 상호 신용 금고가 발전된 은성 저축 은행이라고---."

"아, 들은풍월이 있군요. 적절한 변신을 하셨습니다."

"제화점이 원래 현금 장사 아닙니까. 그래서 금융업이 차세대 사업이 되자마자 우리는 갖고 있던 현찰로 즉각 변신을 했답니다."

"네, 서양의 유대인들이 그런 변신에 빨랐지요. 대표적인 것이 골드만 삭스라든지, 모건 스탠리라든지---. 그런데 자제분은 왜 저렇게 흥분했습니까---?"

"모두 갖바치라는 말 때문이랍니다. 가죽 일을 하는 사람들을 우리나라에서는 가죽바치, 혹은 갖바치라고 했지요. 우리야 그런 전통적 계층과는 거리가 멀고 해방 후에 미군의 진주와 함께 이 일을 시작했지요. 사업이 잘 되니까 중앙통으로 나아갔고---. 그런데도 사람들은 샘이 나는지 우리를 갖바치라고 부르면서 예전에 광주리를 짜면서 평생을 살아간 고리 귀신하고 같은 족보를 적용하더라고요. 우리가 돈을 벌수록 뒷전에서는 더 그러는 것 같아요."

그때 아들이 미안한 얼굴을 하고 아버지의 말을 이었다.

"어르신 죄송합니다. 지금 제가 T시에서는 제일 큰 가방장사 딸하고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그러자 뒷말들이 더 많아진 겁니다. 고리귀신 집과 갖바치 집의 혼사랍니다."

청년의 격앙되었던 감정은 아직도 조금 남은 상태였다.

"사돈 될 분이 T시의 K백화점에서 큰 가방 집을 경영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된 것이지요---."

아들의 목소리가 큰데 비해서 아버지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작고 낮았다.

"아, 자제분이 결혼식을 앞두고 있군요?"

내가 물었다.

"네, 그렇답니다. 총각 때 한번 부모를 모시고 혼수품도 장만할 겸 따라나서겠다고 해서 왔지요. 유명한 S가방 대리점 집의 딸과 연애를 하다가 이제 결혼을 앞두고 있답니다. 우린 지금 금융업으로 변신을 했는데도 T시라는 보수 사회가 그러고들 있답니다. 이 녀석의 형도 몇 년 전 성혼을 할 때 그런 보수 사회에서 여간 힘들지 않았지요---."

“아이구, 요즘의 운동화 시대 이전까지는 제 평생 꿈이 고도방 구두였고 이번 여행에 큰맘 먹고 장만한 이 가방은 바로 S가방 제품인데요. 하하하---.”

코르도바의 특별한 저녁은 깊어갔다.






김유조 작가

건국대 명예교수(부총장 역임),

국제 PEN 한국본부 부이사장,

미국소설학회

헤밍웨이 학회

경맥문학회

서초문인협회 회장 역임,

문학의식 공동대표,

여행문화 주간,

학술원 우수도서상 헤밍웨이 문학상,

문학마을 문학대상

서초문학상

김태길 수필문학상 등 수상,

장편 소설:반포사람들,

소설집 :세종대왕 밀릉 등 다수,

시집 :여행자의 잠언 등,

수필집 :열두 달 풍경 외,

평론집 ㆍ번역서ㆍ 학술 저서 다수




고도방 구두를 통해 본 문명과 신분의 문학적 교차점
― 김유조 작가의 '고도방 구두'를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김유조 작가의 소설 '고도방 구두'는 겉보기엔 한 장의 여행 수필처럼 단출하게 다가오나, 속으로는 복잡한 신분 구조와 문명사적 전환, 그리고 인간 내면의 자의식과 기억이 정교하게 얽힌 상징적 서사다. 작가는 일상적 대화를 바탕으로,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신분의 상처와 계급의 반전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독자에게 ‘정체성’이라는 질문을 던진다.

작품의 중심에는 고도방 구두가 있다. 이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기억의 매개이자 문명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작중 화자는 유년 시절의 결핍과 동경을 ‘고도방 구두’라는 사물에 투영하고, 그것이 지닌 역사적 어원까지 탐색하며 하나의 문화적 기원을 발견한다. 코르도바라는 지명에서 출발한 ‘Cordovan’ 가죽은 스페인의 고도에서 무두질이라는 문명의 정수를 꽃피웠고, 이슬람의 진출과 융합, 그리고 쇠퇴의 서사까지 안고 있다. 고도방은 단지 구두가 아니다. 작가에게 그것은 과거를 품은 문명의 궤적이며, 현재를 가늠하는 거울이다.

그러나 식탁 위의 단순한 이야기로 풀어내려던 ‘고도방 구두’는 젊은 청년의 격앙된 반응으로 돌연 신분과 계층의 민감한 문제로 치환된다. 청년의 분노는 곧, 전통적 직업에 얽힌 사회적 편견에 대한 항의이며, ‘갖바치’로 낙인찍힌 이름 없는 노동의 역사에 대한 분노이자 슬픔이다. 작가는 이를 통해 계급이 유전되고, 존엄이 왜곡되는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을 담담히 드러낸다. 여기서 김유조 작가의 문학적 미의식은 단연 빛난다. 문장은 유려하지만, 내용은 묵직하며, 유머 속에 고통을 감추는 방식으로 사회비판을 완성한다.

가죽에서 시작된 구두의 서사가 가방과 금융으로 이어지며, 노동의 손끝이 자본의 중심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드러낸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은성제화에서 은성금고로, 손으로 만든 제화에서 현금이 흐르는 금융업으로의 전환은 단순한 업종의 변경이 아니라, 시대정신의 재배치다. 이는 마치 코르도바 문명이 원리주의에 갇혀 쇠퇴하고, 변화의 물결을 주도한 서구에 역전된 것처럼, 변화에 민감한 이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작가의 철학이기도 하다.

김유조 작가는 문학을 ‘여행자의 잠언’이라 일컫는 듯하다.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 속에 무수한 이동과 충돌, 화해와 화법이 숨어 있다. 「고도방 구두」는 결국 기억과 사물, 인간과 문명, 신분과 정체성이 조우하는 장소이며, 한 편의 우화로 완성된 현대판 문명 교양기이다. 작가의 유려한 시선과 날카로운 통찰, 그 너머의 따뜻한 인간애는 문학이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한 이유를 증명한다.

김유조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그가 단지 소설가가 아니라 역사의 뒤안길과 인간의 내면을 통합적으로 조망하는 문명적 성찰자임을 다시금 확인시켜 준다. 「고도방 구두」는 한 사람의 발자취를 넘어, 우리가 모두 어떤 구두를 신고 이 세상을 걸어왔고, 또 걸어가고 있는지를 되묻게 만드는 빛나는 메타포다.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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