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 강문규 시인
□ 난로 위 양은 도시락
□ 계란 푸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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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 도시락
시인 강문규
추억의 노란 양은 도시락
보리밥 꾹꾹 눌러
한 켠엔 멸치볶음
가끔은 계란 푸라이가 별식
유리병에 깍두기
양은 도시락
합체가 이루어진다
추운 겨울
화목 난로 위에
차곡차곡 쌓은 양은 도시락
따뜻하게 데워먹는 재미
솔솔하다
수업하는 사이
아래 양은 도시락
누룽지밥 되기 일쑤다
빈 양은 도시락
젓가락 달그락거리면
집으로 달려가는 소리다
노란 양은 도시락
이제 언제 먹어볼 수 있을는지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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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규 시인의 '양은 도시락 '을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청수 강문규 시인의 시 「양은 도시락'은 단순한 사물의 회상이 아니라, 한국인의 근현대사를 관통한 민중의 밥상이자, 따뜻한 공동체 기억의 저장고다. 노란빛의 양은 도시락은 그저 식기의 기능을 넘어서, 삶의 애환과 사랑, 가난과 기쁨이 함께 눌려 담긴 존재였다. 시인은 이 작은 그릇 안에, 시대의 온기와 유년의 그리움을 눌러 담는다.
첫 연 “추억의 노란 양은 도시락”은 시작부터 사물에 정서적 가치를 부여한다. ‘노란’이라는 색채는 단지 도시락의 겉모습을 넘어서, 햇살 같은 추억과 어머니의 손길, 어린 시절의 따스한 오후를 연상케 한다. “보리밥 꾹꾹 눌러”는 한술의 절실함이자 생존의 경제학이다. 당시의 밥상은 풍요보다는 절약과 인내의 상징이었고, 그것을 꾹꾹 눌러 담는 행위에는 ‘채움’보다 ‘비우지 않음’의 지혜가 있었다.
“한 켠엔 멸치볶음 / 가끔은 계란 프라이가 별식”이라는 표현은 시인의 삶의 미의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사소한 것의 귀함, 소박함 속의 풍요, 그리고 그날따라 우연히 얹힌 계란 하나에 느꼈던 감격은, 도시락 안에서 피어난 인생의 잔잔한 시학이다. 이 도시락은 단순한 점심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을 싸들고 온 엄마의 침묵이었고, 계란 하나에 담긴 가족의 사정과 행복의 경제학이었다.
“유리병에 깍두기 / 양은 도시락 / 합체가 이루어진다”는 구절은 음식이 아닌 감정의 혼합을 그려낸다. 그 합체는 육체의 허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정서의 텅 빈 공간을 따뜻하게 메우는 ‘의례’였다. 도시락은 혼자 먹는 것이 아니라, 친구와 마주 앉아 나눠 먹고, 서로의 밥 위에 반찬을 얹어주던 유년의 우정이 머물던 자리다.
“화목 난로 위에 / 차곡차곡 쌓은 양은 도시락”의 장면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시대적 풍경이다. 농촌 초등학교, 혹은 산간 지방의 중학교에서, 난로의 열기로 도시락을 데우던 장면은 단지 한 끼 식사의 묘사가 아니라, 당시의 교육 현실과 공동체 문화, 그리고 계절의 냄새를 복합적으로 전달한다. “솔솔 하다”라는 구절은 후각적 기억의 회복이자, 삶의 향기를 되살리는 시인의 언어다.
하이라이트는 “아래 양은 도시락 / 누룽지밥 되기 일쑤다”이다. 이것은 음식의 변질이 아닌, 시간이 빚은 기적이다. 누룽지는 곧 기다림의 보상이며, 바닥까지 꾹꾹 눌려진 사랑의 흔적이다. 시인은 이 구절을 통해 삶의 가장자리에서 얻어진 달콤한 기쁨을 찬미한다.
결말부에서 “젓가락 달그락 거리면 / 집으로 달려가는 소리다”는 시구는 탁월한 감성적 메타포다. 달그락 거림은 단지 식기의 소리가 아니라, 고요한 학습의 시간 후 밀려오는 해방감, 그리고 집에서 기다리는 따뜻한 품으로의 귀향을 상징한다. ‘소리’가 ‘소망’이 되는 순간이며, 언어가 삶을 안아주는 시점이다.
마지막 연의 “이제 언제 먹어볼 수 있을는지 /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는 말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과 효율에 의해 잊힌 공동체적 감성, 천천히 데워 먹던 삶의 리듬, 그리고 따뜻했던 인간관계의 실종에 대한 애도이자 묵상이다. 시인은 잃어버린 한 시대를 단지 복원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살아내야 할 온기’로 우리 앞에 건네준다.
요컨대, 강문규 시인의 '양은 도시락'은 낡은 도시락 하나로 시대와 정서, 철학과 삶을 아우르는 문학적 기념비이다. 사소한 일상을 통찰력 있는 언어로 승화시킨 그의 미의식은, 시를 통해 인간을 회복하고, 공동체를 다시 되살리려는 의연한 문학적 자세에서 비롯된다. 양은 도시락은 이제 다시 싸서 들고 다니지는 않지만, 그 안에 담긴 따뜻한 온기는 지금도 우리 마음의 ‘화목난로’ 위에서 여전히 솔솔 피어오르고 있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