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광일 시인의 '밤바다'의 문학적 미의식에 대한 고찰

김왕식


□ 주광일 시인






밤바다


시인 주광일



밤바다여

그대는 밤새도록

잠 못 이루며

새벽종소리를 기다리는

늙은 수도자처럼

그렇게 눈 뜨고 있구나

애증愛憎이 얽힌 긴 밤을

잠시도 쉬지 못하고

흔들리는 몸으로 태우며

저 수평선 너머로부터의

해돋이를

눈을 부릅뜨고

기다리고 있구나




주광일 시인의 시 '밤바다'의 문학적 미의식에 대한 고찰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주광일 시인의 시 '밤바다'는 노년의 관조에서 비롯된 내면의 울림이자, 혼란한 시대의 도덕적 회복을 염원하는 영혼의 기도문이다.

공직자로서의 반세기 삶을 정의롭고 단단하게 살아온 시인은, 이제 시의 언어로 세상을 다시 견고히 세우려 한다.

시는 단순한 자연 묘사를 넘어, 시대와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과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다.


첫 행 “밤바다여”는 마치 인간에게 말을 거는 듯한 시인의 태도를 드러낸다. 대상을 단순히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교감하려는 존재론적 접근이다. 이어지는 “그대는 밤새도록 잠 못 이루며”는 시인이 자신을 투영한 바다의 초상이기도 하다. 한평생을 정의와 도덕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온 이의 근심은, 어둠 속에서도 깨어 있는 바다의 이미지로 형상화된다.


“늙은 수도자처럼 / 그렇게 눈 뜨고 있구나”라는 구절은 시 전체의 상징성을 견인하는 핵심 메타포다. 이 바다는 현실을 초탈한 채, 묵언 수행하듯 자신의 자리에서 무언의 의무를 다한다. 수도자란 세속의 소란을 끊고 고요 속에서 진리를 갈구하는 존재다. 이처럼 시인은 세상의 부조리와 무질서 속에서 정의와 진실의 새벽을 기다리는 시대적 양심으로서의 바다를 노래하고 있다.


“애증愛憎이 얽힌 긴 밤”은 시인이 살아온 시대를 응축한 표현이다. 냉전과 분단, 발전과 왜곡이 교차했던 현대사의 곡선 속에서, 시인은 그 어느 누구보다 치열하게 ‘공직자로서의 도덕’을 지키려 애써 왔고, 그 내면의 갈등은 밤의 파도로 일렁인다. 그 고통은 쉬지 않고 흔들리는 “몸으로 태우며”에서 드러난다. 이는 단순한 육체의 고통이 아닌, 사회와의 상호 진동 속에서 생긴 정신적 피로와 도덕적 고민의 결과다.


마지막 “저 수평선 너머로부터의 / 해돋이를 / 눈을 부릅뜨고 기다리고 있구나”는, 시인이 일생을 통해 간직한 희망의 본질이다.

해는 반드시 떠오른다는 믿음, 그리고 그 해를 보기 위해 밤새 눈을 감지 않는 이의 자세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절실한 기다림이자 신념이다. 시인은 그 기다림의 자세마저도 ‘버티는 것이 아닌 사랑하는 일’로 승화시킨다.


이 작품은 단지 자연에 대한 감상이 아니다. 시인은 밤바다를 통해 ‘이 시대가 지켜야 할 윤리’와 ‘다가올 새벽에 대한 확신’을 노래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시인의 삶의 궤적에서 비롯된 실존적 고백이며, 정의로운 삶이 결코 허망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진혼곡이자 찬미가다.

언어는 담백하고 묘사는 절제되어 있으나, 그 안에 응축된 정신의 깊이는 누구도 함부로 넘볼 수 없는 무게를 지닌다.


이렇듯 주광일 시인의 시 '밤바다'는 그의 삶의 도덕성과 시대의식, 그리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미학적 성찰이 하나로 어우러진, 고요하고 단단한 등불이다.

어두운 시대를 지나며 문학이 가야 할 길을 묻는 모든 이에게 이 시는, 한 줄기 바닷빛처럼 명징한 길을 비춰줄 것이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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