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여윤동 선생을 기리며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김왕식



□ 여운동 시인






말 없는 강, 그 깊은 여운

― 시인 여윤동 선생을 기리며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시대를 지나면서도 휘어지지 않는 선이 있다.
바람결에 따라 흔들리는 풀잎의 유연함은 아름답지만,
그 중심 어딘가에 단 한 줄 곧은결이 있어야 숲은 쓰러지지 않는다.
여윤동 시인은 그런 곧은 선을 지닌 사람이다.
그의 이름은 이미 하나의 문장이다.
말없이 흐르고, 말없이 품고, 말없이 남는 이름.

그는 말보다 먼저 ‘들었다’.
들어야 할 말과 들어선 안 될 말의 경계를 아는 사람,
침묵을 단련시켜 언어로 완성시키는 사람.
경청이 몸에 밴 이는, 스스로를 무게 있게 다룬다.
그래서 그의 말은 조용하나 결코 가볍지 않고,
그의 시는 짧지만 늘 길게 남는다.
여운이 있다.
정말, 여운이 있다.

그는 문학을 ‘사는 일’이라 여긴다.
시를 잘 쓰기 전에,
먼저 ‘잘 살아야 한다’는 철학이
그의 구절 하나하나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행간의 고요한 침묵은
그가 걸어온 삶의 단단한 결이다.
그의 시를 읽다 보면,
마치 수묵화 속 고목 앞에 선 듯한 정적이 감돈다.
그 고요 속엔
허튼 말없이 살아낸 사람만이 품을 수 있는 깊이가 있다.

여윤동 시인은 선비다.
글을 통해 세상을 밝히고,
말보다 실천으로 가치를 증명하며,
혼탁한 세상 속에서 조용히 곧은 선 하나를 세우는 사람.
누군가는 흐리게 살며 눈치를 보지만
그는 늘 명료한 등불처럼,
스스로를 태워 길을 밝혀왔다.

그의 곁에 있으면 누구든 정돈된다.
허투루 말을 아끼고,
상대의 말에 침묵으로 화답할 줄 아는 사람 앞에선
나 또한 조심스레 말의 품위를 생각하게 된다.
그는 타인의 시를 소중히 여긴다.
작은 신인의 작품도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친구의 문장처럼
귀하게 대해준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를 믿고,
그의 한 마디에 깊은 신뢰를 건다.

그는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지만
그 자리에 있을 때 공간은 단단해진다.
그의 침묵은 공허가 아니라 충만이다.
그의 시는 외침이 아니라 속삭임이다.
그러나 그 속삭임은 메아리 되어
오래도록 독자의 마음에 머문다.
그의 언어는 잎이 아니라 뿌리다.
그의 시는 소리가 아니라 향이다.

이 시대, 여윤동이라는 이름은
소리 없는 품격이고,
말 없는 중심이다.
나는 여윤동 선생을 시인이라 부르기 전에,
한 사람의 사표로 여긴다.
그의 삶이 이미
하나의 시이며,
그의 시는
결국 삶을 품은 문장이다.

그는 말없이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의 시는 말없이 머문다.
그러나 오래도록, 깊게 남는다.




여운처럼 머무는 사람, 여윤동 시인




말보다 깊은 마음,
글보다 먼저 살아낸 삶
올곧음 한 줄로 세월을 써 내렸네

묵언의 빛 그윽하여
여운처럼 머무는 분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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