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 이안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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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 누드 비치에서의 하루
Ray & Monica's [en route]_378 | "왜 행복한 선택을 내일로 미루어야 하나요. 지금 당장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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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ᐧ강민지
#1
절벽의 거대한 노거수들, 큰 파도가 밀려와 포말이 발아래에서 부서지는 바다, 바다 건너의 장엄한 산맥, 산봉우리에 이불처럼 덮인 만년설, 그 사이 백사장에 사람이 있어야 한다면 옷을 겹겹이 차려입은 모습이 아니라 갓 태어날 때의 모습 그대로야 하지 않겠나 싶다. 정말 그곳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밴쿠버의 누드 비치, 렉비치(Wreck Beach)이다. 8월 둘째 주 일요일인 10일의 밴쿠버 하늘은 투명하다 못해 푸르렀고 빌딩 신축 현장들 공사도 일을 멈춘 고요하고 한적한 밴쿠버 도심을 가로질러 당도한 곳이었다.
그동안 많은 벗은 몸을 보아왔다. 남자의 몸은 공중목욕탕이 보편적이던 시절부터 군 훈련소에서 집단으로 사용하는 샤워장까지... 여자의 몸은 사진가로서 누드모델 사진을 찍으면서 다양한 포즈로 접했다. 그러나 감정이 개입되지 않은 집단생활의 한 부분으로, 혹은 일로서의 대면이었다.
오래전 유럽이나 북미의 다른 누드 비치를 몇 번 방문하기도 했지만 해변을 즐기기 위해서라기보다 호기심 차원이었다. 이번 렉비치 방문은 달랐다. 지나친 햇살을 차단할 파라솔과 비치 텐트와 매트, 수영 후 허기를 채워줄 간식까지 챙겼다.
바나바스 초이(Barnabas Choi) 님을 앞세웠다. 그는 매년 렉비치에서의 자유를 누려온 것은 물론 자전거 장려 누드 이벤트인 세계 누드 자전거 타기 밴쿠버 대회(World Naked Bike Ride Vancouver)에도 참여해 누드로 밴쿠버 시를 달렸었다.
#2
UBC(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는 세계적 명문의 연구 중심 공립 대학이다. 이 대학의 메인 캠퍼스는 밴쿠버 서쪽,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포인트 그레이(Point Grey) 반도의 넓은 자연환경 속에 펼쳐져 있다. 이 대학은 거대한 대규모 자연공원인 퍼시픽 스피리트 리저널 공원(Pacific Spirit Regional Park)으로 둘러싸여 있고 서쪽 해안의 렉비치는 이 대학에 속한 약 8km에 달하는 모래사장 위주의 세계에서 손꼽히는 누드 비치이다. 숲과 닿은 비치 여기저기에 누워있는 거대한 통나무들과 절벽, 늪지, 갈대밭, 자갈밭이 공존해서 다양한 풍경과 정서를 제공한다.
해변 진입은 UBC 캠퍼스를 통한다. 시내에서 들어가는 버스 터미널인 'UBC 버스 루프(UBC Bus Loop)'가 캠퍼스의 중앙 근처에 있어 비치를 오가는 사람들 중 어떤 이는 비키니 차림으로 캠퍼스를 걷기도 한다.
이 일대는 퍼스트 네이션(First Nations, 캐나다 원주민 ; 미국과 캐나다에서 원주민을 통칭하던 '인디언(Indian)'이라는 단어가 가진 인종 차별적 뉘앙스를 배제하고 캐나다 원주민을 존중하고 그들의 독특한 정체성과 권리를 인정하기 위해 사용되는 공식 용어)인 '무스캄 부족(Musqueam Nation)'의 땅으로 밴쿠버 지역을 비롯한 브리티시컬럼비아 남서부 해안 일대에서 수천 년 동안 어업, 사냥, 재배를 하며 거주해 왔다.
500여 개 가까운 계단을 내려와 대면한 렉비치의 모습은 마치 수천 년 전, 무스캄 부족의 광장을 방문한 인상이었다. 모래사장에 널브러진 거대한 통나무들 사이에서 벗거나 입은 사람들이 각자의 취향에 따라 연출하고 있는 자연스러운 모습이 때문이었다.
#3
바나바스 초이 님은 비치 매트 위에 모든 옷을 벗어던지고 바로 물비늘 가득한 바닷물 속으로 사라졌다. 아직 그럴 용기는 나지 않은 아내와 나는 수영복 차림으로 그를 뒤따랐다. 주위에 펼쳐진 남녀의 알몸을 피해 시선을 둘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속에서 자맥질을 몇 번 되풀이하는 동안 시선을 허공에 두는 대신 상대와 아이컨택할 수 있을 만큼 적응이 되었을 때 물 밖으로 나왔다, 문제는 비치 매트에 앉아 몸을 말리고 있는 바로 앞에서 키 큰 남녀 한 쌍이 서서 긴 대화를 이어갔다. 얼굴을 들면 바로 그들의 허리춤이었다. 남성은 뒷모습이었지만 여성은 정면이었다. 그들을 시야 밖으로 비켜설 수 있도록 유도해 볼 속셈으로 바나나를 꺼내 먹을지를 물었다. 그것은 오히려 악수였다. 더 가까이 다가와 감사 인사와 더불어 우리와의 대화로 국면이 전환되었다. 어쩔 수 없이 그 커플의 태닝이 잘 된 몸에 시선을 두고 대화를 하다 보니 시선 처리에 한층 자유로워졌다.
렉비치의 편의 시설과 비치의 특징을 파악하기 위해 긴 비치를 걸었다. 독서 삼매경에 빠진 사람, 태닝을 하고 있는 사람은 물론 비치 옷을 팔고 있는 여성도 벗은 채로였고, 핫도그를 파는 여성도 마찬가지였다. 맨살에 뜨거운 기름이 튀면 위험하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다.
동쪽 해변에는 정체성과 지향성을 나타내는 다양한 무지개 깃발과 상징들로 표식을 한 지역에서 남성들이, 또 다른 지역에서는 여성들이 소통을 즐기고 있었다.
서쪽 해변에서는 시니어 그룹과 어린아이를 포함한 가족이 대화와 악기 연주,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옷을 입을 필요가 없었던 때의 퍼스트 네이션 공동체와 대면한 기쁨이었다.
누드비치로 들어오는 계단의 문구, 'Clothing optional' 표현이 생각났다. 이성애자,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가 뒤섞인 렉비치에서 옷을 입거나 벗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다. 그러므로 모두가 누드일 필요는 없다.
"Clothing optional beach ahead. Please respect people's pravacy"
옷을 입거나 입지 않을 선택권이 주어진 곳, 그 취향과 선택이 존중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무엇일까? 그러나 이 해변에서 존재감이 두드려 보였던 사람은 벗은 사람이 아니라 긴치마에 긴 팔 셔츠를 잘 챙겨 입고 셀카를 찍고 있던 20대 초반의 동양인 여성 두 명과 필드 재킷 왼쪽 가슴에 액션 카메라를 달고 엄숙한 표정으로 태닝 중인 사람들 사이를 걷는 동양인 청년이었다. 그들은 백사장의 긴 통나무들보다도 두드러져 보였다.
긴 해변을 돌았을 때 의도와 관계없이 사람이 가진 몸의 온갖 양태를 접할 수밖에 없었다. 생후 3개월 된 아기, 7살 여자아이와 9살 남자아이의 몸, 청년과 장년, 팔순이 지난 어르신의 몸, 온갖 피부색의 몸, 갖은 털을 가진 몸, 태어나면서 주어진 대로의 몸, 정체성의 변화로 변형시킨 다양한 몸... 남과 여를 구분하는 일이 쉽다고 여겼던 그간의 생각은 착각이었다.
식량으로서 도축된 동물의 살과 뼈에 익숙한 만큼 예의와 존중, 케어 대상으로서의 사람의 몸에 얼마나 익숙한지를 뒤돌아보게 되었다. 나의 몸도 나와 반대성의 몸에 대해서도 거의 아는 바가 없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특히 몸을 단지 영혼의 그릇으로만 치부한 나머지 너무나 하찮게 대해온 사실을 반성했다. 내 몸의 노고와 기능, 충실함, 복원력에 대해 처음으로 칭찬했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수영복 차림이었다. 'Free Shy Therapy(수줍음 무료치료)'라고 쓴 손팻말을 든 어르신이 다가왔다. 조언을 청했다. 수줍어하지 않아도 될 만큼 친절했다.
"이곳 비치는 옷을 입거나 벗는 것은 온전히 자신의 선택입니다. 이곳의 누디스트는 나체주의(Naturism ; 옷을 벗고 자연 상태로 생활하는 라이프스타일이자 문화적·사회적 운동)와 비성적(non-sexual ; 나체 상태를 단순히 성적이거나 은밀한 것이 아닌, 자연과 조화롭게 어우러지고 환경을 존중하는 사회적 나체)인 나체 생활을 추구합니다. 샤이 테러피는 몸에 손을 대지 않고 대화로 이곳에서 옷을 벗을지, 아니면 벗지 않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판단과 그것을 실천에 옮기도록 도움을 드립니다."
이 설명에 동의하자 질문으로 이어졌다.
"당신이 누드가 되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 그리고 그 상태에서 당신의 느낌을 말해보세요."
"바람이 온몸을 스치는 상쾌함이 원시로 돌아간 것 같은 해방감을 줍니다."
"기분이 좋게 느껴지는군요. 네, 좋아요. 이제 당신은 누드가 되면 행복을 느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핵심이에요. 하지만 반대로 기분이 나쁘고 고통스럽게 느껴진다면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않아야 됩니다."
"옷을 벗어버리면 기분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더라도 실제로 옷을 벗는 것과는 별개잖아요?"
"하지만 기분이 좋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쉽게 용기를 낼 수 있어요. 이 해변은 모든 사람들이 상대의 의사를 서로 존중하는 곳이거든요. 마찬가지로 당신이 누드가 아니라도 여전히 당신을 존중합니다. 일부의 사람들이 부러워할 수는 있습니다."
"누가 누구를 부러워합니까?"
"누드가 되고 싶지만 벗는 것이 두려워서 용기를 내지 못한 사람들이지요. 당신이 나처럼 벗는다면 그들은 당신을 부러워할 거예요."
"저처럼 누드가 되는 것에 긍정적인 감정을 확인한 사람들은 당신과 대화 후 바로 벗게 되나요?"
"그럴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죠. 용기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기다려주면서 격려를 합니다. 좋다는 것을 알았는데 왜 내일까지, 혹은 다음 주까지 실행하는 것을 미루어야 하는지 물어보죠. 그리고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은 지금 바로 실행하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당신의 가족들도 누디스트인가요?"
"내 여자친구는 주로 나와 함께 이곳에 옵니다. 이런 샤이 세러피 활동에도 함께 참여하고요."
"이 해변에 함께 즐기는 행사 같은 것도 있나요?"
"어제 저 너머 해변에서 Kokoro Dance 공연이 있었어요. 모래성 쌓기 경연도 해요. 1년에 한 번은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누드 그룹 포토를 찍기도 합니다. 희망자들이 모여서 함께 사진을 찍는데 보통 200여 명 정도가 참여하죠."
"당신은 몇 년 전부터 누디스트가 되셨나요?"
"55년 전이요. 지금 77세이니 그때가 22살이었을 때죠."
"어디에서 어떤 계기로 벗을 결심을 하게 되었나요?
"그때 처음 이곳에 왔었어요. 이곳에서는 벗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바로 벗어버렸죠."
"그때의 느낌을 기억하시나요?"
"물론이죠. 정말 행복했어요. 전 항상 벗을 수 있는 장소를 찾았었어요. 이곳이 바로 내가 원하던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거예요."
"얼마나 자주 이 해변에 오시나요?"
"해마다 사정이 다르긴 하지만 매년 여름 20~45번쯤 옵니다."
"이렇게 '무료 샤이 테러피'를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15년 전부터입니다."
코키(Korky) 어르신은 렉비치의 자연환경을 보존하고 해변에서의 나체주의자(naturist) 문화를 고양하고 사람들에게 몸에 대한 수용과 자연 속에서의 자유로운 생활을 장려하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 단체, WBPS(Wreck Beach Preservation Society)의 일원이었다.
#4
어르신의 세러피가 끝나고 긴 렉비치를 양분하고 있는 반도의 서단, 눈브랙랙퍼서트포인트(Noon Breakfast Point)로 갔다. 통나무 위에서 버라드만(Burrard Inlet) 너머의 코스트산맥 산군들을 조망했다. 그 아래로 알래스카로 향하는 크루즈선이 종이배처럼 작게 떠가고 있다. 발아래로 빠르게 바닷물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밀물시간이었다. 벗은 사람들의 자유를 지키고 있는 두 파크 레인저(Park Rangers)에게로 갔다.
"저 멀리 눈을 이고 있는 산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로트슬리 산(Mount Wrottesley)이에요. 약 1,000마일(1,600킬로미터) 길이와 190마일(300킬로미터) 너비를 가진 코스트산맥의 봉우리들 중의 하나이죠. 예전에는 주위의 거의 모든 봉우리들이 1년 내내 눈으로 덮여있었지만 이제는 저 봉우리에만 눈을 볼 수 있군요."
"기후변화 때문이겠죠?"
"분명히..."
"이곳의 개장과 폐장시간은요?"
"아침 7시에 문을 열고 일몰시간이 폐장을 합니다. 그러므로 8월 10일 오늘은 8시 35분까지 이 해변에 계실 수 있습니다."
"겨울에도 개방됩니까?"
"그렇습니다. 연중 문을 엽니다."
옆구리 작은 가방에서 접어 비닐에 싼 퍼시픽 스피리트 리저널 공원의 지도를 펴서 비치뿐만 아니라 트레일까지 상세하게 안내해 준 두 레이저가 지도를 내게 주면서 트레일 산책에 참고하라고 한다.
우리 자리로 돌아오니 초이 님과 아내는 떠날 채비를 이미 끝냈다.
이 비치를 향해 500 계단을 내려올 때는 도덕의 경계 밖으로 나아가는 듯했다. 다시 벗었던 옷을 챙겨 입고 그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을 뒤따르면서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옷을 벗는 자유를 누리라는 '샤이 세러피' 어르신이 왜 그렇게 자청해 15년간이나 옷에 갇힌 사람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계신지 조금은 이해가 되는 듯했다. 어르신의 말씀이 귓전에 맴돌았다.
"왜 행복한 선택을 내일 혹은 다음 주로 미루어야 하나요. 지금 당장 행복을 누리세요."
왜 그 많은 금기를 만들어 혐오와 차별, 억압의 도구로 사용할까?
도시와 서쪽 곶(串)을 편리하게 연결하는 래피드버스(RapidBus), R4를 타고 퍼시픽 스피릿 지역 공원의 긴 숲을 다시 돌아 나왔다. 음주 금지 구역인 렉비치에서 참았던 맥주 한 모금의 갈증을 집 앞의 펍에서 풀었다. 벌컥벌컥 들이켠 잔을 내려놓고 보니 조금 전 우리가 있었던 곳은 천국과 현실의 어디쯤, 도시와 자연 어디쯤에 전설로만 존재하던 퍼스트 네이션들의 자유지대를 다녀온 것 같은 환영이 잔에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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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수 작가의 '밴쿠버 누드 비치에서의 하루'
— 삶의 가치철학과 미의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안수 작가의 여행기는 단순한 ‘풍경 묘사’가 아니라, 그가 살아온 삶의 가치철학과 미의식을 집약한 한 편의 기록이다. 그의 글에는 언제나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깔려 있다. 이번 렉비치 체험은 그 질문에 대한 실천적 답변처럼 읽힌다. 그는 여행을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다른 가치와 다른 미의식’을 몸과 마음으로 시험하는 과정으로 삼는다.
이 작가의 가치철학은 분명하다. 삶은 유한하며, 행복은 미루지 말아야 한다. 렉비치의 샤이 테라피 어르신이 던진 “왜 행복한 선택을 내일로 미루어야 하나요”라는 물음은, 작가가 오래도록 붙잡아온 삶의 원칙과 정확히 맞닿는다. 그는 낯선 문화와 관습 앞에서도 두려움보다 호기심을 앞세우고, 자신의 선택이 가져올 해방과 충만을 시험해 본다. 그에게 자유란 ‘무조건 벗는 것’이 아니라 ‘벗을 수도, 입을 수도 있는 권리를 존중받는 상태’다. 이 상호 존중의 철학은 그의 여행 전반에 흐르는 핵심 가치다.
그의 미의식 또한 이 철학과 맞물려 있다. 그는 아름다움을 외양이나 형식에서 찾지 않는다. 대신 ‘다양성이 한 풍경 안에 공존하는 상태’를 미로 본다. 렉비치에서 마주한 다양한 연령, 피부색, 성 정체성의 몸들은 그에게 하나의 ‘살아있는 인체 미술관’이었다. 그 속에서 작가는 남과 여, 젊음과 노년, 변화와 그대로의 몸이 지닌 고유한 이야기를 포착한다. 그리고 그 모든 차이가 한 해변 안에서 어울려 있는 장면 속에서, 조화와 포용의 미를 발견한다.
이안수 작가가 기록하는 렉비치는 단순한 누드 비치가 아니다. 그것은 금기의 껍질을 벗기고, 인간 본래의 상태와 마주하는 ‘자유의 실험장’이다. 그는 이를 ‘도시와 자연의 경계이자, 현실과 천국의 중간 지대’로 비유한다. 이는 그가 가진 미의식의 특징—대립과 경계를 오히려 미적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시선—을 잘 보여준다. 그는 이중성을 피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그 경계에 서서 양쪽의 숨결을 동시에 느끼며 글로 옮긴다.
무엇보다 이 여행기에서 드러나는 그의 철학적 미의식은 ‘존재에 대한 존중’이다. 그는 자신의 몸뿐 아니라 타인의 몸에도 존중과 예의를 기울인다. 몸을 단지 영혼의 그릇으로만 보아왔던 과거를 반성하며, 몸이 감당해 온 기능과 회복력, 그리고 그것이 지닌 고유한 아름다움에 새삼 경의를 표한다. 이 관점은 그가 추구하는 삶의 미학—사람과 자연, 시간과 경험이 깎아낸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인정하는 태도—와 일치한다.
결국 이 여행기는, 이안수 작가가 지닌 ‘현재학(現在學)’의 선언이다. 그는 삶의 무게를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보고, 듣고, 느끼는 순간을 최대치로 끌어안는다. 그의 눈에 렉비치는 단순한 목적지가 아니라, 스스로의 가치철학을 검증하고 미의식을 확장시키는 ‘실험 무대’다. 그곳에서 그는 행복을 미루지 않는 법, 다양성을 미로 받아들이는 법, 그리고 서로 다른 존재가 한 장면 속에서 공존하는 아름다움을 배운다.
이안수 작가는 렉비치의 바람과 파도 속에서 삶의 본질을 다시금 확인한다. 천국은 멀리 있는 이상향이 아니라, 존중과 선택,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향유하는 태도 속에 존재한다는 것. 그가 이 노정에서 길어 올린 보물은, 결국 그가 평생 지켜온 가치철학과 미의식이 한 장면 속에 응축된, ‘현재를 사는 자유의 미학’이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