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비탕 국물에 우린 인연의 시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김왕식



배건수 총경님







갈비탕 국물에 우린 인연의 시



청람 김왕식




종로 3가 골목 안, 1984년부터 제 자리를 지켜온 한일옥의 문을 열자, 국물 속에 세월을 우려낸 갈비탕 향이 먼저 달려왔다. 허태기 시인은 오늘도 그 향을 따라왔다. 소주 한 잔 곁들여 마주 앉으면, 시인의 얼굴에는 마치 오래 묵은 달빛이 잔잔히 번지는 듯한 온기가 번진다. 옆자리에는 죽마고우인, 한평생 경찰 서장을 역임한 포도대장 배건수 총장님이 계셨다. 경상도 사나이 특유의 강직한 기개와, 큰 항아리처럼 넉넉한 품이 테이블 위를 감싸 안았다.

이어령 교수가 마지막 순간 “내 인생은 실패였다”라고 했던 이유—탁주 한 잔 기울이며 속을 터놓을 친구가 없었다는 그 고백—는 이 자리에서는 결코 통하지 않는다. 허태기 시인은 이미 그 벼랑을 건너 성공한 사람이다. 그 곁엔 소주잔에 마음을 붓는 벗들이 있고, 그 벗들의 말은 국물처럼 뜨겁고, 웃음처럼 시원하다.

이날의 대화는 시종 마른 가슴에 비를 뿌렸다. 배 총장님의 이야기는 강물처럼 흘렀고, 허 시인의 눈빛은 그 강 위를 부드럽게 떠다니는 배 같았다. 소주잔이 비워질수록 서로의 마음은 채워졌고, 갈비탕 속 고기는 마치 지난 세월의 수고를 위로하듯 부드럽게 풀어졌다.

광복절이다. 이 날 이 만남은 마치 억눌렸던 마음이 풀려나는 순간 같았다. 일제의 압제 속에서 해방을 맞이한 듯, 대화는 자유로웠고, 웃음은 경계가 없었다. 종로 3가 한일옥의 낡은 간판은 세월의 주름 속에서도 여전히 반듯했고, 그 아래서 우리는 시와 인생, 그리고 벗의 의미를 다시 확인했다.

허태기 시인과 나, 그리고 배건수 총장님. 이 셋의 인연은 오늘만의 것이 아니다. 책 한 권의 서문처럼,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를 예고하는 서곡이다. 시인의 문장과 평론가의 해석이 한 권의 책으로 숨결을 나눌 날이 머지않았다. 그 책은 단순한 활자가 아니라, 이렇게 국물처럼 뜨겁고, 소주처럼 속 깊은 대화의 기록이 될 것이다.

오늘 밤, 한일옥의 간판은 여전히 빛나고, 우리 셋의 웃음은 종로 골목 어딘가에 작은 별처럼 떠 있을 것이다.







갈비탕 국물에 우린 인연의 시



청람




종로 3가 한일옥,
1984년부터 끓고 있는
국물 속에 세월이 풀려 있다.

허태기 시인,
갈비탕 김 사이로 번지는 웃음,
소주 한 잔에
달빛을 조금씩 덜어내어 우리에게 나눠 준다.

옆자리 배건수 총장님,
진주고 동문이자 평생 포도대장,
강물 같은 이야기로
강철 같은 세월을 부드럽게 감싼다.

이어령 교수가
탁주 한 잔 나눌 벗이 없어
삶이 실패라 했던 그 고백,
이 자리에서는 닿지 못한다.

여기엔 벗이 있고,
잔이 있고,
국물 속에 숨은 온기가 있다.

광복절 전날,
압제에서 풀려난 마음처럼
대화는 경계를 잊고
웃음은 골목 끝까지 번진다.

이 인연,
책의 첫 장처럼 오늘을 적시고,
세월의 국물처럼
앞날에도 끓어오르리.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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