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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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 보는 순간
청람 김왕식
너를 좋아하는데
너의 눈빛은
먼 숲에 걸린 새벽안개 같다.
어느 시인은
그래도 괜찮다 했다.
사랑은 스스로 피어나는 꽃이라
향기를 바라는 일이 아니라고.
또 다른 시인은
내가 너를 바라보는 만큼
나를 바라봐 달라 했다.
그 눈 맞춤이
사랑의 가장 완전한 순간이라 했다.
나는 안다.
마주 보는 찰나에
세상 모든 빛이 모여든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너를 향해 마음을 보낸다.
비록 네 창가에 닿지 못해도
바람에 실려
저녁 하늘로 피어오르는
한 송이 들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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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람 김왕식 시인의 '마주 보는 순간'
문학평론가 김준현
김왕식 시인의 '마주 보는 순간'은 사랑의 방향성과 그 본질에 대한 섬세한 성찰을 시적 메타포로 풀어낸 작품이다. 시 전체는 단순한 구애나 일방적 감정 표현을 넘어, 사랑이란 무엇으로 성립되고 지속되는가에 대한 철학적 응시를 담고 있다. ‘너를 좋아하는데 / 너의 눈빛은 / 먼 숲에 걸린 새벽안개 같다’는 첫머리는 사랑의 거리감을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먼 숲’과 ‘새벽안개’는 다가가고 싶으나 쉽게 닿지 못하는 존재의 이미지를 만들며, 상대의 무심함이나 닿을 수 없는 마음을 안개처럼 부드럽게, 그러나 분명하게 제시한다. 시인은 거부나 단절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자연물의 이미지를 통해 그 거리를 은근하게 감싸 안는다.
이어지는 대목에서 시인은 두 명의 ‘어느 시인’을 불러낸다. 첫 번째 시인은 사랑의 자족성을 말한다. ‘사랑은 스스로 피어나는 꽃’이라는 구절은, 사랑의 완성은 상대의 반응이 아니라 그 감정을 품는 행위 자체에 있음을 은유한다. 꽃이 스스로 피어나 향기를 내듯, 사랑도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가진다는 것이다. 두 번째 시인은 사랑의 상호성, 즉 마주 바라봄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이 대비는 작품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첫 번째가 ‘일방향의 사랑’을 미덕으로 삼는다면, 두 번째는 ‘마주침’을 사랑의 완성으로 본다. 시인은 이 두 극단을 모두 끌어와 사랑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며, 사랑이 반드시 한 가지 모양만을 지니지 않음을 암시한다.
시적 화자는 ‘나는 안다. / 마주 보는 찰나에 / 세상 모든 빛이 모여든다는 것을’이라 고백한다. 여기서 ‘빛’은 단순히 시각적 요소를 넘어, 기쁨·희망·환희의 총체를 뜻한다. 한 순간의 시선 교환이 모든 시간을 압축해 주는, 사랑의 절정이라는 인식이 드러난다. 그러나 이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사랑은 여전히 일방향일 수 있다. 그렇기에 마지막 연에서 화자는 ‘비록 네 창가에 닿지 못해도 / 바람에 실려 / 저녁 하늘로 피어오르는 / 한 송이 들꽃’이 된다. 들꽃은 누구의 손길도 거치지 않고, 스스로 피어나고 스스로 시드는 존재다. 그럼에도 바람을 타고 향기를 전하고, 하늘로 피어오르는 생명력은 꺾이지 않는다. 이는 사랑을 향한 체념이 아니라, 사랑을 지켜내는 자기 완결적 힘이다.
이 시는 언어의 절제가 빛난다. 감정을 직설로 토해내지 않고, ‘먼 숲’, ‘새벽안개’, ‘빛’, ‘들꽃’ 같은 이미지들이 감정을 대신한다. 그 덕분에 시어는 감정에 압도되지 않고, 오히려 담백한 울림을 남긴다. 또한 시인은 사랑을 소유하려 하지 않고, 사랑을 통해 자기 존재의 깊이를 확장시키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는 나태주 시인의 미학과도 맞닿아 있으면서, 김왕식 시인만의 절제된 언어와 은근한 정조가 어우러진 지점이다.
결국 '마주 보는 순간'은 사랑을 하나의 ‘관계의 결과’가 아닌 ‘존재의 방식’으로 바라본다. 마주 보지 못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들꽃, 빛을 모으는 찰나, 안갯속의 거리감이 모두 사랑의 일부라는 인식은, 독자로 하여금 사랑의 모양을 다시 묻게 한다. 감정의 결핍이 아니라 감정의 자족을 노래하는 이 시는, 사랑의 고전적인 서정성과 현대적인 자기 성찰이 절묘하게 결합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시를 읽고 난 독자는, 사랑의 대상이 꼭 자신을 바라보지 않아도, 그 마음이 헛되지 않음을 믿게 된다. 마주 보는 순간은 잠깐이지만, 그 찰나가 평생의 빛으로 남을 수 있다는 시인의 믿음이, 이 시의 가장 큰 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