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
가락시영
시인 서강석
오 층짜리 아파트
백삼십 사개 동 육천
육백 가구
열 평에서 열여덟 평
한가락하지 못하는
서민들이
삼십 년 넘게 살아왔다
단지 내 나무는 보기 좋게 무성한데
금값이 된 아파트엔
빨간색 가위표가 그려진다
사람들 모두 나가고 삼 년 만 지나면
삼십오 층짜리 팔십 사 개 동
구천 오백 열 가구 아파트
도시의 명품이 되어 짝 서고
한 가락하는 사람들이
한 오십 년 들어와 살겠네.
□
다음은 서강석 시인의 자작시 해설이다.
*가락시영
허허벌판에 뜨거운 물 펑펑 나오는 아파트가 육천육
백가구나 들어서서 상전벽해라고 했습니다.
삼십 년 만에 그 자리에 그 아파트보다 키가 여덟 배나 크고 넓이는 네 배나 넓은 아파트가 구천오백가구가 넘게 들어서니 또다시 상전벽해입니다.
다만 거기 사는 사람들이 한가락하지 못하던 서민들에서 한가락하는 사람들로 바뀌겠지요.
■
가락시영
― 도시 변모의 이중 초상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서강석 시인의 '가락시영'은 한 지역 공동체의 변모를 압축적으로 기록한 도시시(都市詩)다. 작품은 특정 아파트 단지의 건축 구조와 세대교체 과정을 묘사하는 데서 출발하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는 주거 환경 변화에 국한되지 않는다.
시는 재개발이라는 구조적 변화를 매개로, 도시의 사회적 구성과 계층 이동, 그리고 그 속에서 발생하는 가치관의 변화를 드러낸다.
첫 연의 ‘오 층짜리 아파트 / 백삼십 사 개 동 육천육백 가구 / 열 평에서 열여덟 평’은 단순한 수치 나열이 아니다. 그것은 도시개발 초기 서울의 주거 환경을 상징하는 구체적 데이터이자, 서민 주거의 물리적 한계를 상징하는 시어다.
‘한가락하지 못하는 서민들’이라는 표현은 거주민의 사회경제적 위치를 명확히 하면서도, 비하나 과도한 연민 없이 사실적으로 제시된다. 이 객관성은 시 전반에 걸쳐 유지되며, 독자에게 판단을 맡기는 열린 구조를 형성한다.
둘째 연에서 제시되는 ‘단지 내 나무’와 ‘빨간색 가위표’의 대비는 작품의 핵심 메타포다. 무성한 나무는 세월과 정주의 흔적을, 빨간 가위표는 철거와 재편의 기호를 나타낸다. 시인은 이를 통해 시간의 축적과 단절의 순간을 한 화면 안에 병치한다.
이는 단순한 풍경 묘사를 넘어, 도시개발 과정에서 드러나는 가치 판단의 충돌을 함축한다.
종결부에서 예고되는 미래—‘삼십오 층짜리 팔십사 개 동 / 구천오백 열 가구 아파트’—는 재개발 이후의 화려한 외형을 보여준다. 그 외형의 주인공이 ‘한가락하는 사람들’로 바뀐다는 결말은, 개발의 결과가 거주민의 지속적 삶이 아니라 사회 계층의 교체로 귀결됨을 드러낸다. 여기서 시인은 개발 담론의 이면에 존재하는 구조적 불평등을 간결하게 지적한다.
서강석 시인의 작품 미의식은 사실성, 압축성, 균형성에 있다. 그는 개발이라는 주제를 미화하거나 과도하게 비판하지 않는다. 대신 행정가로서의 관찰력과 시인으로서의 언어 절제를 결합시켜, 현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이로써 독자는 현상을 바라보되, 감정적 편향 없이 스스로의 해석을 도출하게 된다.
'가락시영'은 도시 변모의 이중 초상을 제시한다. 하나는 물리적 환경의 비약적 변화라는 긍정적 상전벽해이고, 다른 하나는 거주민 구성의 급격한 변화라는 사회적 상전벽해다. 시인은 두 상전벽해를 병렬적으로 제시함으로써, 개발 담론이 흔히 간과하는 사회문화적 함의를 부각한다.
객관성과 절제된 어휘, 구체적 디테일, 그리고 구조적 메시지가 어우러진 이 작품은 단편적 개발 비판시를 넘어 도시사회학적 문학 텍스트로 평가될 수 있다. 행정학과 문학이라는 두 영역을 모두 경험한 시인의 이력은 작품의 밀도를 높이며, 이러한 교차 지점은 '가락시영'을 도시시의 모범적 사례로 만들고 있다. 이 시는 향후 도시 재개발, 주거정책, 공동체 해체 등의 문제를 문학적으로 탐구하는 데 있어 유용한 참조점이 될 것이다.
ㅡ 청람
□ 서강석 시인
□ 서강석
시인. 행정학 박사
서강석 시인은 2013년 '열린 시학'에서 '제3회
한국예술작가상'을 수상하여 등단하였다. 대광고와
서울시립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와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서울시립대학교 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제25회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청와대 행정관
성동구부구청장, 서울시 뉴욕주재관, 행정과장.
재무국장, 인재개발원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서울시
1급 공무원(관리관)으로 퇴직하고 현재 경복대학교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통령표창과 녹조근정훈장을 수상하였으며 저서
로는 [서강석 주재관의 뉴욕보고서]. [인재의 조건].
[서강석 시인의 등단시선]과 논문으로는 [조직
역량이 조직효과성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가 있다.
□서강석 시인의 시집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