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다 쓰는 편지' ㅡ 시인 송귀순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송귀순 시인 육필 원고




□ 송귀순 시인






하늘에다 쓰는 편지



송귀순



하늘에다 쓰네 하늘에다 쓰네
온 세상 어디서든 다 불 수 있게
목 길게 빼고 팔 느려서 하늘에다 쓰네
어디에 계신지 알 수 없어
그리운 정 보고픈 마음 애달픈 속
참아 온 그리움을 하늘에다 쓰네
그리운 어머님 어디서든 보옵소서

어머님 어머님 뵙고 싶어요
제 나이 팔십인데 철부지 아이처럼
어머님이 너무너무 뵙고 싶어요
오십이 넘어서는 딸의 모습 속에
언뜻 스쳐 가는 어머니의 모습
세월이 가면 만물이 낡아지던데
어머님은 그립고 더 보고 싶어요

꿈에라도 뵙고 싶어 잠을 청하면
풋잠은 생각에 쫓겨 새벽으로 달아나고
어쩌다 깜빡 잠에 꿈길 통해 고향집 가면
어머님은 언제든지 만나지를 못했어요
꿈속에서 만난 사람 붙잡고 물어보면
공산당에 끌려가신 아버님 따라
그 길로 나가셔서 안 오셨대요

콩나물밥 김치밥 녹두 부침 만듯국을
계절 따라 때를 따라 딸과 함께 만들면서
어머님 그 손맛을 흉내 내려 애쓰지만
어머님 그 솜씨와 고향 맛은 안 납니다
어머니 그 손맛은 어찌 그리 맛난 지요
어머니 그 솜씨는 어찌 그리 예쁜 지요
명절날에 제 옷은 동네 제일 예뻤어요







하늘에 띄운 눈물의 서간
― 송귀순 '하늘에다 쓰는 편지'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종이에 쓰는 편지가 아니라, 하늘에다 쓰는 편지다. 누구에게나 전해질 수 있는 편지, 그러나 단 한 사람만이 읽기를 바라는 편지. 송귀순 시인의 '하늘에다 쓰는 편지'는 그리움의 수신처를 저 하늘로 정한다. 목을 길게 빼고, 팔을 느리게 뻗어, 보이지 않는 하늘이라는 종이에 글자를 새긴다. 이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다. 보낼 길 없는 마음을 우주의 서판에 새겨두는, 절절한 행위다.

시인은 황해도에서 태어나, 분단과 전쟁의 격랑 속에 어머니와의 영영한 이별을 겪었다. 그 이후 80 평생, 그리움은 한 번도 퇴색하지 않았다. 시 속에서 “팔십인데 철부지 아이처럼”이라는 고백은 나이를 초월한 모성 그리움의 본질을 보여준다. 인간은 나이를 먹어도, 어머니 앞에서는 영원히 아이로 남는다. 세월이 가면 만물이 낡아진다지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만은 오히려 더 깊고, 더 선명해진다. 시인은 이 역설을 진실한 목소리로 담아낸다.

그리움의 결핍은 꿈속에서도 채워지지 않는다. 어머니를 만나려 애써 잠을 청하지만, 꿈길에서조차 만날 수 없다. “공산당에 끌려가신 아버님 따라 그 길로 나가셔서 안 오셨대요”라는 대목은 개인의 비극이면서 동시에 한 민족의 상흔이다. 이 한 줄은, 전쟁이 남긴 수백만 이산가족의 사연을 응축한 울음이다. 이 장면에서 어머니는 한 사람의 어머니를 넘어, 고향과 집, 잃어버린 세월을 상징한다.

시의 후반부로 가면, 그리움은 구체적인 기억과 결합한다. 콩나물밥, 김치밥, 녹두부침, 만둣국… 계절마다 어머니가 차려주던 음식들이 불려 나온다. 시인은 그 손맛을 흉내 내보려 애쓰지만, 그 맛은 결코 재현되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음식의 비결이 조리법에 있지 않고, 그 손길에 깃든 마음과 시절, 냄새와 온기에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솜씨와 고향의 맛은 단순한 미각의 기억이 아니라, 삶 전체를 감싸던 포근한 배경이었다.

여기서 송귀순 시인의 미의식이 드러난다. 그는 어머니를 추억할 때, 그리움의 막연함 속에 머물지 않는다. 음식의 질감, 옷의 색감, 손길의 온기 같은 생활의 결을 구체적으로 불러낸다. 명절날 자신의 옷이 동네에서 제일 예쁘던 기억은 단순한 자랑이 아니라,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자식을 빛나게 하고자 했던 어머니의 마음을 증언한다. 작은 바늘땀 하나에도 사랑과 자존심을 꿰매던 어머니의 숨결이 느껴진다.

이 시를 관통하는 삶의 가치철학은 ‘그리움의 지속’과 ‘기억의 구체성’이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잊히지 않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생생하게 되살려내는 기억의 힘. 송귀순 시인은 그리움을 피하거나 잊으려 하지 않는다. 외려 그것을 가슴 한가운데 모셔두고, 매일같이 하늘을 향해 말을 건다. 이 집요한 지속성은 단순한 감상에 머물지 않고, 하나의 생애 태도로 자리 잡는다.

'하늘에다 쓰는 편지'는 개인의 사모곡을 넘어, 이 땅 모든 이산자들의 공명대가 된다. 읽는 이로 하여금 저마다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고, 누구나 한 번쯤 가슴속에서 쓴 적 있는 편지를 불러낸다. 하늘에다 쓴 글자는 지워지지 않는다. 그것은 눈물로 새겨져, 별빛 속에서 반짝인다.

이 시를 읽고 나면, 우리는 알게 된다.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은 결코 과거형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것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세상 끝날까지 이어질 생의 노래다. 송귀순 시인은 그 노래를 담담히, 그러나 절절하게 부른다. 그래서 이 시는 조용히 읽어도, 마음속에서는 울음처럼 번져간다.

하늘에다 쓰는 편지. 그 편지는 구름을 넘어, 별 사이를 지나, 결국 어머니가 계신 곳에 닿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여인의 미소가 이 세상 모든 그리움에게 답장을 보낼 것이다.


하늘로 띄우는 마지막 편지

청람



하늘에다 쓴 글씨는
비에 젖어도 지워지지 않고
바람에 흔들려도 사라지지 않는다

어머니
당신의 이름을 부르면
가슴속 등잔불이 다시 켜집니다

콩나물밥 김치밥
그 소박한 밥상 위에
세상의 온기가 다 모여 있었지요

명절날
저를 가장 빛나게 하던 손길이
이제는 별빛이 되어
밤마다 창가를 두드립니다

만나지 못해도
이 편지만은 꼭 받으소서
제 눈물 속에 번진 글자가
구름 사이로 번져
당신 품에 안기기를


ㅡ 청람 김왕식

keyword
작가의 이전글황성옛터', 잊힌 왕성 아래 흘러든 애수의 선율.